취준생 딸과 대화를 나누다가 요즘 취준생들이 선호하는 ‘꿈의 직장’이 갖춰야 할 조건들을 물어봤습니다. 일단 연봉은 기본이랍니다. 창피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는데, 그 창피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취업 시험 낙방 횟수에 좌우된다네요. 그런데 연봉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칼퇴(근)’와 ‘자유로운 휴가’랍니다.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은 아무리 연봉이 높더라도 일단 제외라는 겁니다. 거기다가 ‘직장일에 무관심하고 부하 직원 간섭하지 않는 상사’가 있으면 금상첨화라는군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직장은 아무래도 공기업 쪽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취업 전문지들의 조사를 보더라도 취준생들이 원하는 ‘꿈의 직장’들은 공기업에 몰려 있습니다. ‘철밥통’이 보장되는 데다 적지 않은 연봉과 워라밸 등 요즘 취준생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을 다 갖춘 공기업들이 많습니다. 웬만한 공기업들의 취업 경쟁률이 수백 대 1을 넘어서는 것도 이런 배경일 겁니다. 딸아이가 ‘꿈의 직장’을 넘어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고 알려준 한 공기업은 “출근해서 넷플릭스 보는 것이 일”이라는 말이 취준생들 사이에서 돈다고 합니다. 이 공기업을 포털에서 검색해 보니 천문학적 부채와 채용비리로 얼룩져 있더군요.

공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호시절을 누렸다고 여겨집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겨우 시동을 건 ‘공기업 개혁’이 이 정부 들어서자마자 물건너가 버렸습니다. 공공 부문의 비대화를 막고 경영효율 차원에서 추진됐던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가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대로 폐지돼 버렸습니다. 반면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추진됐고, 만만한 공기업들을 상대로 인력채용 압박이 이어져왔습니다. LH 사태에서 보듯 권한과 사업영역이 자꾸 커진 공기업들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낙하산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입니다. 정치권과 노조의 눈치만 보는 공기업이 공룡처럼 비대해질수록 효율은 떨어지고 성과는 낙제점을 향하게 돼 있습니다. 실제 얼마 전 공개된 공기업 경영성적표를 보면, 2016년 공기업 경영 공시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공기업 36곳의 작년 당기순이익이 적자 6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16년만 해도 9조원에 달했던 당기순이익이 2017년 4조200억원 , 2018년 2조원 , 2019년 1조2000억원으로 계속 쪼그라들다가 결국 지난해에는 적자를 기록했다는 겁니다. 36곳 가운데 절반인 18곳이 적자였습니다. 공기업들의 부채 역시 작년 397조9000억원으로 2019년보다 10조원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번호 ‘런던 통신’은 1980년대 대처 영국 총리가 밀어붙였던 공기업 민영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40년 전 일이지만 ‘대처리즘’이란 말을 낳았던 개혁의 깊이와 폭이 다시 봐도 어마어마합니다. 개혁이 아니라 천천히 진행된 혁명이라는 평가가 와닿습니다. 대처가 권력을 내려놓기까지 종업원 60만명의 국영기업체 40개가 민영화되었고, 그 결과 국민 1500만명이 민영화된 회사의 주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방향이 옳았는지는 차치하고 이런 혁명 같은 개혁을 이뤄낸 리더십이 사실 부럽습니다.

우리도 이대로 가다가는 공기업 개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상황입니다. 다음 대선에선 복지 확대와 더불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부 인사들이 앵무새처럼 부르짖은 ‘검찰개혁’ 때문에 개혁의 의미가 퇴색했지만 진정한 개혁적 리더십을 우리가 택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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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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