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체 3사 노조와 MZ세대가 맞서는 모양입니다. 완성차 업체 노조가 “노동자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국회 청원을 올리자 여기에 반발한 MZ세대 직원이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는 글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렸다는 뉴스입니다. “평균수명 연장과 빠른 고령화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정년 연장하면 그만큼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이 맞서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세대 전쟁으로 비칩니다. 기사 댓글을 봐도 “정년 연장이 대세다. 국민연금 고갈 막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주장과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양보 좀 해라. 우리는 연금 구경도 못 할 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보는 대목은 이제 2030의 집단적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36세에 제1 야당 대표를 거머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30세대가 정치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 당선에 큰 역할을 하며 정치에 재미가 들린 2030들이 자기 또래까지 보수 정당 대표로 밀어 올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힘을 확인한 이들 젊은 세대가 이제 이해관계가 걸린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완성차 노조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입니다. 완성차 3사 노조가 속한 민주노총은 이 정권도 함부로 못 하는 파워집단이기도 합니다. 노동운동 1세대에 속하는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평소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전교조를 우리 사회 상위 10%에 속하는 기득권 집단이라고 공격합니다. 반면 이 기득권 집단 밑에 깔려 있는 중소기업 직원, 하도급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은 현대판 ‘소작농’이라는 겁니다. 이 정부가 주력한 최저임금 인상은 이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 소작료를 올려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가합니다. 결국 노동, 연금개혁으로 이 기득권층과 노동시장의 이중성을 깨는 신(新)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 대표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기득권층으로 공격받지만 대기업 노조와 그 구성원들은 우리 역사에 족적을 남기며 성장해왔습니다. 과거 ‘산업전사’로 불리던 데서 알 수 있듯이 1970년대 중화학공업 성장 정책의 밑거름이 되면서 수천년 농경국가를 단기간에 산업국가로 탈바꿈시킨 주역들입니다. 또 1980년대 들어서는 ‘골리앗 전사’로 불리던 이들의 노동운동이 민주화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됐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 기둥이라 할 만합니다. 호주국립대 김형아 교수는 ‘한국의 숙련 노동자: 노동귀족을 향하여’라는 영문 저서에서 산업전사에서 출발한 대기업 노조원들이 어떻게 골리앗 전사를 거쳐 귀족노조가 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합니다. 김 교수는 전투적 쟁의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해온 이들이 결국 이중적 노동시장을 만들어내고 우리 사회를 퇴행적 신분제 사회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사회의 철옹성과 다름없던 이들 노동귀족을 향해 2030세대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년 문제에서 비롯된 이들의 갈등을 세대 간 밥그릇 다툼으로 폄하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개혁은 밥그릇 다툼으로 귀결됩니다. 누가 자신의 철밥통을 얼마큼 내놓을 수 있는지에 따라 개혁의 성과가 판가름 납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선 철밥통을 깨려는 2030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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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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