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충남 서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인근 안견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를 실물 크기로 볼 수 있을까 싶어 찾아갔었는데 기대대로 ‘몽유도원도’가 소박한 기념관을 장식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실망도 컸습니다. 기념관 입구를 실물 크기의 ‘몽유도원도’도 부조가 장식하고 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부에 걸려 있는 그림이 누가 봐도 모조품이 분명해 보일 만큼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설명을 보니 한 민속화가가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직접 보고 와서 모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약탈당한 것으로 알려진 ‘몽유도원도’ 실물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덴리 대학(天理大學)에 소장돼 있습니다. 조선의 위대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우리는 모사품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더군요.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 때인 1447년 안평대군의 꿈을 듣고 안견이 3일 만에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의 전해진 것이 없는 조선 초기 그림으로, 우리 손에 있었으면 당연히 우리의 국보로 지정될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존재조차 몰랐다가 1930년 전후 일본에서 발표된 논문과 잡지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와집 서른 채 값을 치르더라도’ 일본 수장가로부터 사오려고 시도하다가 무산된 일도 있었습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 탄생 600주년(2018년)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일본에 반환을 요구해 왔지만 언제쯤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번호에 실린 독일 베를린기술대학 베네딕테 사보이 교수의 인터뷰를 읽다가 ‘몽유도원도’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사보이 교수는 현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이른바 ‘약탈 문화재’ 반환 정책의 교과서가 되다시피 한 ‘사르 사보이 리포트’의 핵심 저자 중 한 명입니다. 이 제안서가 권고한 대로 마크롱 대통령은 제국주의 시절 아프리카 등지에서 약탈해온 문화재를 고향으로 되돌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베냉공화국의 문화재 26점이 그 첫 대상으로, 최근 프랑스에서 마지막 전시회를 끝낸 후 1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사보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번 문화재 반환이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관련된 역사는 물론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1세기는 ‘문화재 반환(Restitution)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하더군요. 프랑스는 앞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낼 약탈 문화재들의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프랑스에도 ‘몽유도원도’에 비견될 만한 우리의 보물이 있습니다. 역시 우리가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해온 ‘직지심체요절’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이 서적을 포함해 프랑스에만 한국 문화재가 약 2900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정부가 약탈 문화재의 ‘무조건 반환’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지심체요절’이 당장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측이 “직지는 약탈이 아니라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초대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가 구매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명백한 약탈’이라는 걸 입증해야 할 관문이 버티고 있는 셈입니다. 어쨌든 프랑스가 문을 열어젖힌 약탈 문화재 반환이 진짜 21세기의 뉴노멀로 자리 잡아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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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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