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네 미장원에 갔더니 머리를 다듬어주던 원장이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곧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하더군요. “월세가 감당 안 돼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단골손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40대 원장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분명 우는 듯했습니다. 텅 빈 미장원 한쪽에서는 함께 미용사로 일하는 부인이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 가족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또 어디다 미장원을 여느냐”고 물었더니 “집사람은 다른 미장원에서 일자리를 찾고 당분간 배달로 먹고살 작정”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동네 사장님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비정규직 월급쟁이와 이른바 긱(gig) 노동자로 전락하는 셈입니다. 돈을 치르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겨울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문을 닫는 동네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버티다 버티다 못해 결국 일터를 접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가게 문을 열고 견디는 사람들도 매일 속은 까맣게 타들어갈 듯합니다. 얼마 전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부업을 하는 ‘투잡’ 자영업자가 1년 새 19.4%가 늘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버텨볼 요량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사람들일 겁니다.

한국에서 자영업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4.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 중 6번째로 높습니다. 한국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 멕시코, 그리스, 터키, 코스타리카에 불과합니다. 통상 한 나라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영업의 비중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한국은 예외적으로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합니다. G5 국가의 국민소득, 자영업자 비중과 견주어 보면 한국의 정상적인 자영업자 비중은 18.7%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자영업은 도소매, 숙박, 음식 등 생활밀접 업종이 전체의 40%가 넘습니다. 영세 자영업자가 몰려 있는 숙박·음식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1.24%에 불과하고, 5년 생존율이 20.5%로 전 산업 중 가장 낮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일터에서 10명 중 8명은 망한다’는 세간의 자영업 분석이 크게 틀리지 않은 셈입니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한국에서 이렇게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겁니다. “한국에서 모든 직업의 종착점은 치킨집”이라는 말처럼 가장 만만하고 진입 장벽이 낮은 일자리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노후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선진국과 달리 월급쟁이의 수명이 다해도 뭔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후진적인 상황도 무관치 않을 겁니다. 영세하니 뭐니 말들을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가족까지 합해 1000만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영업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영업자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법칙도 있습니다. 지난 모든 대선에서 자영업자의 지지가 높았던 후보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는 법칙입니다. 사회를 떠받치는 물밑 여론을 결국 자영업자들이 좌우하는 셈입니다.

이번호 주간조선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우리 동네 김 사장’입니다. 생계에다 코로나 방역까지 짊어진 우리 곁의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떠한 글로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위기를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은 응원을 보탰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키워드

#마감을 하며
정장열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