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일본인 기자를 만났더니 “한국 대선은 진짜 흥미진진하다”는 말부터 꺼냅니다. 무미건조한 일본의 총리 선출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 얘긴데, 덕담인지 흉인지가 불분명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이 일본 기자의 말은 진실에 가깝습니다. 일본의 총리 선출은 예측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집권당 내에서 의원들이 선출하니 결과가 요동칠 이유도 많지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대선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합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기를 잡고 있던 불과 한 달 전을 떠올려보면 실감납니다. 지금과 같은 전세 역전이 벌어질지 그때는 상상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 작년 연말경 만났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대선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한 중진의원은 제게 “여론조사 결과가 조금씩 다른데 지난 4월 재보선 결과가 가장 정확한 여론 아니겠느냐”며 이번 대선도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후보 개인의 문제든, ‘원팀’을 이루지 못한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문제든 간에 분명 민심은 요동쳤고 이재명 후보가 승기를 잡아버렸습니다.

대선 투표일인 3월 9일까지 이재명 후보가 앞서는 판세가 그대로 유지될까요? 한 달 전을 떠올려보면 이 역시 장담하기 쉽지 않습니다. 변화무쌍한 K대선 일정표에서 두 달은 엄청 긴 시간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합의는 대선 불과 한 달 전에 이뤄졌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 ‘입단속’을 시키면서 부자 몸조심 하는 것도 사납기 짝이 없는 우리의 민심을 잘 알고 있어서일 겁니다.

지금으로선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야권 후보 단일화로 보입니다. 2012 대선의 데자뷔 같지만 이번에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듯합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대선에 처음 도전했던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룰 협상을 벌이다가 느닷없이 후보직 사퇴를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때도 12월 19일 투표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이뤄진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과 2012년 후보 단일화 협상을 취재한 경험으로는 단일화 협상은 지리하고 피말리는 싸움입니다. 수장들이 단일화에 합의한 이후에도 양 진영의 선수들이 나서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룰 싸움을 벌입니다. 2002년 단일화 협상 때도 노무현·정몽준 후보 측은 일반 국민 상대 여론조사 등 8개 항에 합의한 후에도 세세한 룰을 두고 엄청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여론조사에서 경쟁력을 묻느냐 선호도를 묻느냐, 조사를 평일에 하느냐 휴일에 하느냐, 상대 이회창 후보 진영의 역선택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 등 사사건건 대립을 했습니다. 합의에 이르러 이른바 원샷 여론조사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 기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2012년 문재인· 안철수 단일화 룰 협상은 2002년의 교훈 때문인지 더 치열한 싸움이었고, 협상 당사자들 모두 진절머리를 칠 정도였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에 비춰 보면 단일화 협상은 판이 벌어지더라도 깨지기가 더 쉽습니다. 역으로 난산 끝에 최종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면 그 자체가 또 다른 감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두 달 남은 K대선이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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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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