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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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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호야 투병기

정장열  편집장 

진부하지만 강한 명제들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같은 말들이 그럴 겁니다. 이 말이 얼마나 강한 함의가 있는지 살면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밥 먹으면 배부르다’ 정도의 당연하고 익숙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삽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각이 자기와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확장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몇 주 전 11년째 키우고 있는 반려견 호야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뛰어놀다가 이상한 비명을 지른 후 갑자기 두 다리가 마비돼버렸습니다. 밤새 신음하던 개를 안고 병원을 찾았더니 중증 디스크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중풍인지 디스크인지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한다며 MRI를 찍는 데만 100만원 가까운 돈을 썼습니다. 아픈 개는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거리를 자꾸 던졌습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수술비는 둘째 치더라도 이미 척수가 손상돼 수술 후에도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게 수의사 얘기였습니다. 튀어나온 디스크를 깎아내 감압으로 통증을 덜어줄 뿐 결국 다시 일어서는 건 자신의 의지와 치유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수술을 포기하고 신음하는 앉은뱅이 개를 집에 데려오니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신경이 마비돼 똥오줌을 해결 못 하는 개를 데리고 매일 병원에 가야 하는 것부터 고역이었습니다. 약을 먹인 지 며칠 되던 날 자기 힘으로 똥오줌을 밀어내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족들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화장실에서 정확히 일을 보던 녀석이 아무 데나 싸지르는 것은 더 이상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녀석이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던 그 며칠 동안 눈은 자꾸 ‘안락사’를 더듬었습니다. 가족들한테는 말도 못 꺼내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슷한 고민이 쏟아지더군요. 특히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병든 반려견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안락사 고민을 털어놓은 사례가 흔하게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 안락사를 시킨 후 우울증과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고백도 많았습니다.
   
   원칙적으로 개도 안락사는 수의사가 결정해야 합니다. 극심한 통증 등으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판단을 해야 안락사를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우회로’들이 많더군요. 돈만 주면 키우던 반려견을 죽여주는 곳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취재 호기심이 발동해 직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더니 “데려오시면 안락사시킨 후 화장까지 해준다”고 안내하더군요. 돈을 내면 좋은 유골함을 마련해주고 그게 싫으면 업소 뒷마당에 뼛가루를 그냥 뿌린다는 겁니다. 상냥한 목소리의 안내원은 “7만원 더 내시면 기사와 차를 보내줄 테니 개만 건네주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에서 이런 말을 듣다가 침대 아래서 저를 올려다보는 호야와 눈이 마주치자 통증 같은 부끄러움이 속에서 차올랐습니다.
   
   호야는 낙천적인지 아픔을 견디며 밥도 잘 먹고 쓴 약도 꾸역꾸역 삼켰습니다. 그 의지가 대견해서 한방 등 다시 일어서 걷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치료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개한테 침을 놓고 뜸을 떠주는 한방 동물병원이 서울에도 많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마감 하루 전날, 딸아이가 동물병원에서 동영상 하나를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호야가 뒤뚱거리면서 몇 발자국 걷다가 넘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퇴근길 그 동영상을 자꾸 보면서 아픈 개가 저희 가족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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