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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2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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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호스피스 병동과 욜드족

정장열  편집장 

최근 한 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흥미롭고도 애잔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분이 난데없이 “우리나라 호스피스 병동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회한이 뭔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실제 이를 필드리서치하는 연구자들이 있다면서 그 내용을 소개해주는데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분의 전언에 따르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회한과 한탄은 “나는 내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강요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평생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뭔지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왔다는 고백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 됐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큰 회한으로 남는다는 점이 애틋합니다.
   
   그 다음에 꼽는 회한이 “평생 일만 했다”는 것이랍니다. 특히 병마에 시달리는 할머니들이 이런 한탄을 많이 남긴다고 하는데, 우리 세대 어머니들이 겪은 고된 인생이 떠올려집니다. 이어지는 회한들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족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말도 자주 들을 수 있고, “내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다” “나를 너무 억누르고 살았다”는 한탄도 자주 터져나온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말로 달리 표현되고 있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호스피스 병동에서 터져나오는 회한들은 어찌 보면 다 비슷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스스로 만족할 만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일 겁니다.
   
   이번 호 ‘런던통신’이 소개한 영국 ‘욜드(Yold)족’들의 삶을 읽어가다가 우리나라 호스피스 병동의 회한들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욜드족은 ‘젊은 노인(Young Old)’를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일본에서 만 65세부터 75세의 인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는데 선진 각국에서 나이를 뛰어넘는 건강과 남부럽지 않은 부를 갖추고 사회 전면에 등장한 새로운 노인층을 지칭합니다.
   
   런던통신에 소개된 영국 욜드족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는 듯이 보입니다. 65세 이상 인구 중 아직도 일을 하는 노인들이 12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집값과 주가 상승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영국의 욜드족들은 평균 자산이 영국 일반 국민들의 2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은퇴 후의 취미생활과 봉사활동 등 끝까지 만족할 만한 삶, 아쉬움이 남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욜드족들의 모토로 보입니다.
   
   ‘욜드’는 얼마 전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발간한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도 비중 있게 나옵니다. 매년 한 해의 주요 이슈와 전망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이 책 앞쪽에 ‘욜드의 시대’라는 글이 배치돼 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올해는 선진 각국에서 욜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전 세대 노인들보다 더 많고, 더 건강하고, 더 부유한 노인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얘깁니다. 선진국에서 2000년만 해도 9900만여명(전체 인구의 약 8%)을 차지했던 만 65~75세 사이의 인구 비중이 2020년에는 1억3400만명(약 11%)까지 증가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욜드족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다들 욜드족을 꿈꾸는 시대지만 누구나 욜드족이 될 수 없다는 데 인생의 쓰라림이 있을 겁니다. 독자님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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