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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5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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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기생충과 스크린쿼터

정장열  편집장 

1990년대 중반 잠시 영화 담당 기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94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 뒤풀이 현장에서 이태원 ‘태원’ 영화사 대표 등 당시 영화계의 거물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한국 영화계의 숙원은 스크린쿼터 유지였습니다. 이대로 두면 한국 영화가 다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한국 영화 의무상영 비율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화수입 규제가 완전히 철폐된 1987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0~20%대에 불과했습니다. 이 비율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영화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놀라움을 안겨준 1998년 ‘쉬리’ 이후로 기억합니다. ‘쉬리’ 이전만 해도 극장들은 주말과 공휴일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걸고 평일에만 한국 영화를 트는 편법으로 스크린쿼터제를 피해나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크린쿼터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한국 영화계의 마지노선은 시장점유율 40%였습니다. 이를 방어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당초 의무상영 일수는 146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화의 수급 현황에 따라서 20일을, 또 문화부 장관의 재량으로 20일을 단축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실제적인 의무상영 일수는 106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할리우드 직배 영화 배급 초창기인 1989년 직배 영화가 상영되던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에 누군가 뱀을 풀어놓은 사건을 비롯해 스크린이 불타고, 극장 안에 최루탄이 터지는 등 할리우드 영화와의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영화의 이런 고난기를 떠올린 것은 짐작하시다시피 이번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움켜쥔 ‘기생충’의 믿기 힘든 쾌거 때문입니다. 생존을 걱정하던 한국 영화가 자신을 벼랑으로 내몰던 할리우드의 심장부에서 할리우드가 최고로 여기는 상을 받은 것은 엄청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 지면에 할리우드 통신을 보내오는 박흥진씨 같은 현지 전문가도 ‘기생충’과 경합했던 ‘1917’이 틀림없이 작품상을 탈 것이라고 호언했는데 이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기생충’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낸 한국 영화의 저력은 이제 대단합니다. 요즘 한국 영화의 연간 시장 점유율은 50%를 예사로 넘습니다. 할리우드에 맞서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 50%를 지켜내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크린쿼터제의 의미조차 잘 모를 듯합니다. 실제 대학생인 딸아이에게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틀어야 하는 비율이 있다는 걸 아느냐”고 물으니까 “그게 왜 필요하냐”고 되묻더군요. 요즘 젊은이들은 1순위 선택지가 할리우드가 아니라 한국 영화라면서요. 지금 스크린쿼터 일수는 1990년대의 절반에 불과한 73일에 불과한데도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실력으로 할리우드와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 우리 영화인들이 “교통사고 줄었다고 신호등을 없애느냐”는 논리로 철야농성도 불사하며 스크린쿼터 일수를 철벽방어하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입니다.
   
   제가 ‘기생충’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잘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떠나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 높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건 우리 밖에서도 그대로 통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의 눈높이와 기준이 세계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는 듯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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