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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감을 하며
[2524호] 2018.09.10

매질의 기억

정장열  편집장 

사람을 둘로 나누는 기준은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기혼과 미혼 같은 것들이죠. 가장 최근에 들은 참신한 기준은 ‘턱걸이’입니다. 제가 다니던 헬스클럽 코치가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세상은 자기 무게를 이겨내며 턱걸이를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럴듯하면서도 귀에 솔깃하게 와닿은 것이, 저도 그 무렵 살을 빼고 근력을 키워 거의 40년 만에 턱걸이 세계로 복귀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젊은 트레이너에게는 중력을 이겨내는 턱걸이가 사람을 구분하는 심각한 기준일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제 나름의 심각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아이를 때려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언제부턴가 좀 친해졌다 싶으면 아이를 둔 기혼자들에게는 넌지시 ‘매질의 기억’을 물어보곤 합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때려본 쪽입니다. 딸과 아들 둘 다인데 아무래도 딸 쪽의 기억이 더 아픕니다. 딸아이는 이른바 사춘기병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전두엽 이상으로 생긴다는 그 증상을 확 드러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가면서 하다시피 했습니다. 규칙과 도덕을 가르치면 “내가 왜 그런 것들을 지켜야 하느냐”며 대들기 일쑤였습니다.
   
   갈등을 키워가던 중학생 딸이 어느날 가출 비슷한 걸 했습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12시가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에도 답이 없는 딸에게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더니 자꾸 불안해지고, 새벽이 되니까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침에 경찰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딸이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다시 폭발해 매를 들고 말았습니다. 매를 받아내던 딸아이는 처음에는 ‘더 때리라’는 식으로 당돌하게 대들더군요. 그 말에 더 폭발해 마지막 자제심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딸아이가 “아빠, 아프니까 그만 때리라”며 울먹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자괴감이 그때만큼 강하게 든 적이 없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출근 전 잠자는 딸아이의 이불을 들춰보니까 매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매질의 흔적은 제 자괴감에 인두질을 하듯 상처로 남아버렸습니다.
   
   딸아이는 성격이 무던해서인지 그 이후로도 아무렇지 않게 저를 대하면서 계속 말썽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반항기 어린 눈 속에 뭔가 달라진 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 역시 매질의 흔적이 어딘가에 평생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그 이후 딸아이가 어떻게 됐냐고요?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평범한 아이가 됐습니다. 지금은 재수 후 대학에 들어가 ‘공시족’으로 돌변한 상태입니다. 본인 얘기로는 “어릴 때 다 놀아봐서 공부밖에는 할 게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싸워대던 엄마와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그 일 이후 자식에게 가급적 매를 들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매질을 해본 사람이 안 해본 사람보다 더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세상의 또 다른 절반은 저처럼 다들 아픈 기억들이 있더군요. 아이를 키우면 다들 같은 심정이겠지만 교육은 참 어렵고도 힘든 길 같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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