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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7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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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미소’를 만나러 갑니다

정장열  편집장 

아침 출근길 대로변에 각 정당이 내건 현수막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집 앞 지하철역 사거리를 올려다보니 민주당과 한국당의 현수막이 대각선 방향으로 으르렁거리듯이 마주보고 있더군요.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현수막에 뭐가 쓰여 있나 한번 유심히 봤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야당은 없었다. 색깔론, 막말, 거짓말’ vs ‘문 정권 경제파탄 독재연장 막아내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은 드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현수막 아래를 바삐 지나갑니다. 현수막이 내뿜는 상대방에 대한 적의(敵意) 못지않게 출근 길 사람들의 표정들도 뭔가에 화난 듯하고 지쳐보입니다. 정당의 현수막과 구호가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곱씹어 보게 되더군요.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 역사에 얼마 전부터 색다른 포스터 하나가 나붙었습니다. 포스터 속 돌이 웃고 있는데, 그 미소가 너무 은근해 단박 눈길이 갑니다. 며칠 전 출근 길에도 예의 그 미소와 마주치자 전날 음주로 욱씬거리는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미소에 취해 포스터를 들여다보는 제 옆으로 바쁜 출근길을 멈추고 함께 음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포스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제가 감탄한 미소의 주인공은 6월 13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선보이는 나한상입니다. 2001년 강원도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한 나한상 88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네요. 500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이 나한상들은 발굴 직후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나한상마다 짓고 있는 표정들이 너무 다채롭고 생생해 신비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조각이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평범한 돌에 새겨진 단순한 선이 어떻게 저런 깊고 미묘한 표정을 만들어내는지 까마득한 옛날 석공의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나한상들은 지난해 춘천 국립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이미 일반인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작년에 이 전시를 3만명이 보고 갔다는데 나한상에 빠져 여러 차례 관람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올해 용산으로 옮겨온 나한상들은 더 근사한 모습으로 일반인들 앞에 서는 것 같습니다. 32점은 독립적인 좌대에 각기 모셔지고, 나머지 29점은 탑처럼 쌓아올린 스피커 700여개 사이사이에 들어앉아 신비감을 더한다고 합니다. 스피커와 나한상의 조합은 설치작가 김승영씨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불교에서 나한(羅漢)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깨닫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입니다. 중생들과 마찬가지로 괴롭고 슬픈 표정도 짓고 있지만 나한상 표정의 백미는 역시 미소입니다. 달관의 미소라 할 만한데 증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괴로운 중생들이 오랜만에 푸근함을 느낄 만큼 깊고 오묘합니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젊은이들을 ‘달관 세대’라고 한다죠. 절망이 달관으로 읽히는 역설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특히 미소 짓는 나한상을 만나면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사진 속 나한상이 아닌 진짜 나한상의 미소를 마주하러 이번 주말 용산으로 가려고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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