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올림픽의 권투선수
고대올림픽의 권투선수

런던올림픽 경기 종목은 크게 볼 때 26개다. 26개 종목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는 302개다. 금메달이 302개란 말이다. 유도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처럼, 올림픽 종목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고 있다. 야구와 소프트볼이 런던올림픽에선 사라졌지만,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 보통 계속해서 자리를 지킨다.

고대올림픽 종목은 9개였다. 권투, 원반던지기, 말경주, 투창, 높이뛰기, 격투기, 5종경기, 달리기, 레슬링이다. 9개 종목에서 우승은 대략 25개였다. 전부 야외에서 열렸다. 흔히 착각하지만, 42.195㎞를 뛰는 마라톤은 고대올림픽 종목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고대올림픽 챔피언은 기록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권투, 격투기, 레슬링의 챔피언 이름은 당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인기였다. 올림픽 챔피언은 헤라클레스처럼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이 창조해낸 최고의 이상적인 인간이 고대올림픽 챔피언이었다. ‘눈부신’ 그리스 태양 아래서 연출된 ‘원조(元祖)’ 올림픽 경기의 흔적을 살펴보자.

권투

군사훈련용 운동 활용… 쓰러져도 공격 계속

권투는 그리스 청동기 문명인 미노스 문명(기원전 3650~1175년) 때부터 볼 수 있는 경기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의 친구로, 트로이전쟁에서 적장 헥토르에게 죽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기리는 의식이 권투의 기원이라고 한다. 도시국가 스파르타가 권투를 군사훈련용 운동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설도 있다. 스파르타는 복싱 경기에서 패하는 것을 전쟁터에서의 죽음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올림픽 권투 경기에는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리스 권투 경기 규칙은 오늘날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선수 보호라는 개념이 없었다. 상대가 경기 중 숨진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신을 경배하는 의식 도중에 숨진다는 것은 오히려 영광으로 받아들여졌다. 머리 보호용 헬멧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손에는 얇은 가죽을 감았을 뿐이었다. 상대방이 아닌, 선수 자신의 손을 보호하는 것이 전부였다. 경기는 벌거벗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경기장은 따로 없었고 야외에서 이뤄졌다. 상대방이 넘어져 쓰러진다 해도 공격은 계속됐다. 이하 7개 내외의 규칙 외에는 모든 것이 허용됐다. 권투를 포함해 고대올림픽 경기 규칙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 레슬링처럼 몸을 잡아서는 안 된다.

2. 손바닥과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허용되지만,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눈을 찌르거나 얼굴을 긁는 행위는 금지된다.

3. 손가락에 반지를 껴서는 안 된다.

4. 상대방이 졌다고 말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된다.

5. 체중 구별 없이 임의로 이뤄진 추첨에 의해 상대가 결정된다.

6. 반칙자에 대해서는 심판이 나뭇가지로 때리면서 조정해 나간다.

7. 경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면 서로가 무방비 상태의 상대를 한 대씩 번갈아 때리면서 승부를 결정한다.

원반던지기

역대 최고 스타는 디스카벌러스

르네상스 때 상상한 제우스 신.
르네상스 때 상상한 제우스 신.

고대올림픽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us)’일 것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조각가 미론(Myron)이 만든 입상 청동 조각품이다. 무거운 원반이 만들어주는 원심력으로 인해 원반던지기 선수의 허리가 꺾여 돌아가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원반 던지는 사람의 동작은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없는 모습이다. 무거운 원반을 이용한 원심력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는, 인체의 ‘숨겨진 비밀’이다.

원반 던지는 사람은 로마시대 때 수많은 복제품으로 재탄생된다. 그리스 조각품의 대부분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로마는 청동을 대신해 대리석으로 미론의 짝퉁을 부지런히 찍어냈다. 현재 런던 대영박물관이 자랑하는 원반 던지는 사람도 로마 당시의 작품 중 하나다. 다른 조각에서 떼어 온 머리를 이어 붙여 만든 합성품이기 때문에, 원조 원반 던지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미론의 청동 원반 던지는 사람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른 그리스 청동 조각처럼 무기나 그릇을 만들기 위해 불가마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올림픽에 사용된 원반의 무게나 크기는 하나로 통일돼 있지 않았다. 도시국가에 따라 재료나 크기, 무게가 달랐다. 재료는 돌, 청동, 납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됐다. 무게는 1.3~6.6㎏, 크기는 지름 17~31㎝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추첨을 통해 다양한 원반 중 하나를 선택한 뒤 경기에 임했다. 경기 규칙의 경우 근대올림픽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던지기에 앞서 원반을 돌리는 횟수를 제한한 것이 크게 다르다. 근대올림픽의 경우 선을 넘어서지 않을 경우 몸을 몇 번 회전해도 상관없지만 고대올림픽에서는 반 바퀴 돌리는 것만이 허용됐다. 왼손에 잡은 원반을 오른손에 옮기는 즉시 허리를 틀면서 곧바로 던져야 했다. 허리를 활용한 원심력 이용이 제한됐기 때문에, 던지는 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근대올림픽에서의 기록은 76m에 달하지만, 고대올림픽 기록은 30m 선에 머물렀다.

말(馬)경주

기수가 아니라 말 주인에 월계관

말경주
말경주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지만, 고대 그리스에서의 말은 힘과 부의 상징이었다. 말을 키운다는 것은 큰 집과 노예, 말 사육에 필요한 부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말을 갖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말을 통한 이동은 자유를 상징했다. 따라서 말을 통한 경주는 주먹이나 힘을 통한 다른 올림픽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경주의 경우 기수가 아닌 말의 소유자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경기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월계수도 기수가 아닌 말 소유자에게 돌아갔다.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하는 평등한 민주주의 도시국가라고 하지만, 돈·신분·권력에서의 차이는 분명했다. 고대올림픽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말경주에 대한 인기가 가장 높았던 이유는 ‘특별한 높은 분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고대올림픽의 말경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트랙을 여섯 번 도는 말경주다. 혼자 출전하며 오늘날처럼 말 위에 앉아서 먼저 들어오는 쪽이 승리했다. 말 소유자가 기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고용된 기수가 경주에 나섰다. 둘째는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는 마차경주다. 말 두 마리 혹은 네 마리가 끄는 두 유형의 경주로 나뉜다. 2인용 마차는 원래 이집트에서 개발된 것으로 권력의 상징이었다. 농업용이 아닌 파라오의 힘이나 군사력을 과시하는 마차였다. 그리스는 마차를 왕이나 전쟁용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수송 수단으로도 이용했다.

투창

움직이는 말 위에서 목표 맞히기

다른 종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투창은 특히 군사용 목적을 가진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기용 창의 길이는 참가자의 키 높이를 기준으로 했다. 보통 재료는 나무였고, 창 끝은 군사용 창처럼 날카로운 철로 구성돼 있었다. 멀리 던지는 것과, 정확히 던지는 경기로 나뉘었다. 멀리 던지는 것은 근대올림픽 경기와 유사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투창은 중간에 가죽으로 된 끈을 묶어 사용했다. 창의 무게중심에 해당하는 곳에 끈을 이어 손가락에 건 뒤, 던질 때 풀어주는 식이었다. 가죽끈은 보통 군사용 창에는 없었다. 그리스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토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가죽끈을 가진 창이 발견된다면 경주용 창이라 볼 수 있다. 정확히 던지는 창 경기는 말을 탄 채 이뤄졌다. 장소는 말 경주장을 사용했다. 움직이는 말 위에서 목표를 맞히는 식이었다.

장대뛰기

피리연주·음악에 맞춰 뛰어넘기

장대뛰기는 적진으로의 공격이나,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군사용 호신용 경주이기도 했다. 근대올림픽과 거의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신발에 있다. 할테레스(Halteres)라 불리는 납이나 돌로 된 신발을 신고 경기에 임했다. 고대 그리스 당시의 나이키 신발인 셈이다. 신발의 무게는 1.6~4.6㎏으로 다양했다. 무게가 상당한 할테레스는 신전에서의 의식에 활용되기도 했다. 장대뛰기에 사용된 나무는 길이 8m 정도에 달했다. 장대뛰기는 경기장 안에 피리나 음악을 동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참가 선수가 멀리서부터 뛰어들어와, 장대 위로 몸을 솟구친 뒤, 선을 무사히 넘어서고 착지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음악적인 리듬과 박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곡의 피리 소리에 맞춰 뛰어넘는 식이었다. 올림픽은 운동인 동시에 예술의 발현이기도 했다.

격투기

항복하거나 쓰러져야 경기 끝나

격투기가 고대올림픽에 등장한 것은 제33회 올림픽이 열린 기원전 648년이다. 격투기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테네 출신 영웅 테세우스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 테세우스는 머리는 황소, 몸은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미노타우르를 죽인 아테네의 영웅이다. 격투기는 괴물과 싸우던 중 사용한 전방위 기술이다. 권투와 레슬링을 종합한 것이다.

경기 규칙은 물거나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것만 금지됐을 뿐 나머지는 전부 허용됐다. 권투처럼 가죽끈을 손에 묶지도 않았다. 발로 찰 수도 있고, 쓰러지는 즉시 레슬링처럼 목을 잡거나 허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 서서 싸우는 도중에 한 손으로는 상대방의 팔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싱의 경우처럼 서로 껴안거나 상대방 팔을 잡을 수는 없었다.

승리는 상대방이 졌다고 말하거나,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계속됐다. 경기 중 참가자가 숨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리스 철학자 필로스트라토스에 따르면 권투 선수 중 최강자와 레슬링 선수 중 최강자를 합친 것이 격투기의 왕자라고 한다.

5종경기

신화에 등장하는 이아손이 개발한 게임

원반던지기, 투창, 장대뛰기, 달리기, 레슬링으로 이뤄진 경기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황금 양의 모피를 구하러 가는 이아손(Iason)이 개발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이아손은 헤라클레스의 변형판으로, 영어 이름인 제이슨의 어원이기도 하다. 5종경기의 순서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다르게 설명한다. 5종경기가 크게 ‘가벼운 종목’과 ‘무거운 종목’ 두 개로 나뉘어 진행됐을 것으로 분석한다. 가벼운 종목은 장대뛰기·달리기·투창, 무거운 종목은 원반던지기와 레슬링이다. 분명한 것은 5종경기의 마지막이 레슬링이었다는 사실이다.

5종경기의 승리자가 어떤 식으로 결정됐는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5종경기 중 세 개의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승리의 관건인지, 아니면 순위를 평균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승리자였는지 불분명하다. 네 경기를 치르고 순위를 정한 뒤, 일정 수의 우승 후보들끼리 레슬링으로 최종 결판을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5종경기를 찬미한 열혈팬이었다. “5종경기는 (올림픽 경기 가운데) 최고에 속한다. 힘과 스피드를 동시에 갖춰야만 하는 것이 5종경기이다.”

달리기

부정 출발 선수에겐 집단 폭행

달리기
달리기

달리기는 고대 그리스인의 일상적인 ‘교양’으로 받아들여졌다. 운동으로서만이 아니라, 철학·시·웅변·역사와 같은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문명으로서 달리기를 생활화했다. 달리기는 어릴 때부터 중요한 교육 커리큘럼으로 활용됐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리스 남자라면 모두가 달리기에 능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올림픽의 달리기 경주는 일직선으로 된 200m를 기준으로 했다. 오늘날과 같은 원형이 아니다. 따라서 400m의 경우 200m 경기장을 돌아오는 식으로 이뤄졌다. 크게 3개의 경기가 일반적이었다. 200m, 400m, 5㎞의 경주다. 200m 트랙을 24번 도는 5㎞ 경주는 오늘날의 마라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복장의 경우 처음에는 앞을 가리는 정도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전신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일상화됐다. 예외적으로 옷을 입고 뛰는 것은 헬멧과 보호장비·방패·창으로 무장한 채 달리는 군장(軍裝) 경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바 하프라이트(Hoplite)로 불린 군장 경주는 27㎏에 달하는 완전무장 차림으로 달렸다. 400m 경주다. 출발은 오늘날과 달리 대체로 똑바로 선 상태에서 출발했다. 왼쪽 다리를 조금 앞에 두고 거의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출발한다. 왼쪽 다리를 앞세우는 것은 이집트의 목조 조각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 시간이다. 간발의 차이로 앞서 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스의 지혜가 담긴 독특한 ‘스타트 라인’이 개발된다. 하이스플렉스(Hysplex)라 불리는 장비로,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 앞을 지키는 팽팽하게 조여진 출발선이다. 워낙 단단히 매어진 줄이기 때문에 심판의 사인에 앞서 출발할 수가 없다. 출발선의 접촉 여부도 심판이 금방 파악할 수가 있다. 출발 전에 선에 접촉한 반칙 선수의 경우 즉시 퇴장당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선수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반칙자에 대한 폭행은 합법화된 ‘신성한 의식’이기도 했다.

레슬링

승자의 오른손 들어주는 전통

힘의 상징인 레슬링은 고대 그리스인과 주변의 페르시아인들도 열광한 인기 스포츠 중 하나다. 레슬링 경기장은 보통 진흙투성이 공간이었다. 선수는 경기 전에 올리브 오일로 몸을 닦고, 이어 서로의 몸이 쉽게 잡힐 수 있도록 온몸에 파우더를 발랐다. 여러 유형의 레슬링이 있지만, 고대올림픽의 경우 상대방을 들었다가 집어 던지는 식의 경주가 대부분이었다. 세 번 바닥에 쓰러질 경우 승자를 결정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이거나, 스스로 패배를 선언할 때까지 싸우기도 했다. 승부는 심판이 승자의 오른손을 들어주면서 확정됐다. 오늘날 모든 운동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오른손을 통한 승자 확정은 고대 레슬링에서 따온 의식이다.

경기 규정을 보면 복싱에서처럼 시간 제한이 없었다. 서로 아무런 장비 없이 나체로 경기에 임하고, 몸무게에 근거한 체급별 경기도 없었다. 몸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모두 일률적인 조건하에 싸운 것이다. 다리를 걸면서 싸울 수는 있지만, 상대방을 물거나 주먹으로 치고, 손가락으로 찌르는 행위는 금지됐다.

고대올림픽 레슬링 선수로,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밀로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는 유명한 인물이다. 기원전 6세기 때 선수로, 당시 무려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다고 한다. 워낙 불패신화를 달렸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로부터의 질투가 많았다. 챔피언이 된 뒤 상을 받으러 나가던 도중 미끄러운 경기장 안에서 넘어지자, 곧바로 이의가 제기됐다. 레슬링 챔피언답지 않게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는 ‘억지 주장’이 주변에서 일었다. 챔피언 자격을 박탈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생떼에 맞서 밀로는 그리스인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다. “레슬링 경기 규칙상 세 번 넘어져야 패한다. 한 번 넘어졌기 때문에, 두 번 더 넘어져야 패배로 인정된다. 아직 챔피언이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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