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원자력청(UKAEA) 컬햄핵융합에너지센터에 있는 핵융합연구 장치 제트(JET). 최근 제트에서 5초 동안 59MJ의 열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photo UKAEA
영국원자력청(UKAEA) 컬햄핵융합에너지센터에 있는 핵융합연구 장치 제트(JET). 최근 제트에서 5초 동안 59MJ의 열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photo UKAEA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핵융합에너지 실험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영국원자력청(UKAEA) 컬햄핵융합에너지센터에 있는 핵융합연구 장치 ‘제트(JET·Joint European Torus)’가 단 5초 동안 59MJ(메가줄)의 열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제트의 과학적 운용은 ‘유로퓨전(EUROfusion)’으로 불리는 유럽 내 협력으로 이뤄진다. 유로퓨전은 유럽연합(EU) 28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핵융합 프로젝트로, 유럽의 핵융합 전문가 약 4800명이 참여 중이다.

영국의 59MJ는 핵융합 에너지 최대량

유럽 연구진이 제트를 활용한 핵융합 반응 실험에서 만들어낸 59MJ을 전력량으로 환산하면 11㎿(메가와트)에 달한다. 이는 주전자 60여개 정도의 물을 끓일 수 있는 에너지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핵융합으로 얻은 에너지로는 최대량이다. 기존 최고 기록은 1997년 약 4초간 생성한 21.7MJ이다. 24년 만에 2배 이상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현존하는 핵융합연구 장치 중 최대 규모인 제트는 실제로 상용 핵융합 반응을 위한 실험이 가능한 기계다. 영국 정부는 제트를 구축하는 데 1억8400만파운드(약 2800억원)를 투자했다.

연구진이 구축한 5초의 발전 시간은 제트의 자기장이 과열되기 전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이다. 5초 동안 섭씨 1억도의 핵융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더 첨단화한 장치를 통해 5분, 5시간으로 확장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유로퓨전 프로젝트 관리자 토니 도네는 말한다. 도네는 40년간 제트를 연구해온 과학자다.

핵융합 장치는 땅 위의 ‘인공태양’으로도 불린다. 태양 내부에서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주성분인 수소원자가 초고온에서 융합해 헬륨을 만들 때 엄청난 빛과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런 태양을 모방해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하려는 방식이 핵융합 기술이다.

태양은 99% 이상이 플라스마 상태다. 플라스마는 한마디로 기체가 고도로 이온화한, 기체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태다. 흔히들 고체·액체·기체에 이어 물질의 제4 상태라고 말한다. 태양 중심에 항상 초고온의 플라스마가 있기에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원자력발전처럼 핵융합도 핵에너지를 사용한다. 원자력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 무거운 원자핵을 사용해 핵분열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든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을 생성한다는 게 단점이다. 핵융합은 무거운 원소를 쪼개는 원자력발전 작동 방식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핵융합은 2개의 가벼운 원자핵, 즉 중수소(2H·중성자 1개, 양성자 1개)와 삼중수소(3H·중성자 2개, 양성자 1개)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에서 부딪쳐 융합할 때 하나의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면서 에너지를 내놓는 현상이다. 융합 과정에서 일부 줄어든 질량만큼 중성자가 튀어나오는데, 이때 중성자가 갖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 터빈으로 돌려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게 핵융합 발전이다.

태양에서는 자체 질량과 중력으로 핵융합 반응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하지만 이 반응을 지상에서 인위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는 토카막이라는 거대 핵융합 장치가 필요하다. 토카막에 강력한 자기장을 내는 초전도 자석을 설치해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이온 상태)의 수소와 삼중수소를 가둬 둘을 충돌시킨다. 플라스마 이온온도 1억도 이상은 중수소-삼중수소 간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온도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지구상에서 실현하려고 온 힘을 쏟아왔다. 하지만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한 ‘초고온 플라스마 환경’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핵융합으로 얻는 에너지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유럽 연구진이 이뤄낸 실험은 청정에너지의 실현이 허황한 먼 미래의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흥미로운 결과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화석연료나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가능성을 핵융합 기술이 입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는 것이다.

이언 채프먼 영국 원자력청장은 이번 실험이 과학계의 가장 큰 도전인 ‘꿈의 에너지원’을 정복하는 데 기술적 징검다리를 하나 건넜다고 자평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유럽 연구진은 미래 세대를 위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저탄소,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만드는 새로운 핵융합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전문가들은 2050년쯤 핵융합에너지가 실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영국 정부는 2040년 세계 최초로 핵융합발전소를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대량 생산 실증할 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

한편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 지역에는 영국원자력청의 제트보다 규모가 10배나 큰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건설 중이다. ITER 프로젝트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 과학 강국들이 나선 대표적인 국제협력의 사례다. 유럽연합,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등 7개국이 공동으로 개발·건설·운영하는 프로젝트다. 1988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원 아래 설계가 시작됐고 2007년부터 건설돼 현재 80%쯤 진행되었다. 2025년 완공이 목표다.

ITER는 핵융합에너지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한 실험로다. 제트의 목표가 핵융합이 생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면, ITER의 목표는 50㎿의 연료를 투입하여 500㎿의 핵융합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제트는 ITER에서 사용할 핵융합 연료와 재처리 원격 로봇 운전기술 등도 개발하고 있다. ITER 건설에는 약 220억달러가 투입되었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장치(KSTAR)’가 있다. 2007년 완공한 뒤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규모는 제트보다 10배쯤 작다. KSTAR는 2019년 2월 플라스마 중심 이온온도를 1.5초 동안 1억도 이상 올리는 성과를 이뤘고, 지난해 12월에는 세계 최초로 30초 동안 유지해 최장시간 운전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2026년까지 300초 유지에 도전할 예정이다.

핵융합 반응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초고온 플라스마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핵심기술이다. 단 한국은 플라스마 상태를 오래 유지만 했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은 아직 못했다. 2023년 전력 생산까지 가능한 ‘실증로’ 설계에 착수해 2050년대에 핵융합 전력 생산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다. 깨끗한 전기를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세계의 핵융합 발전 시대가 하루빨리 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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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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