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저건(위)과 음향무기
테이저건(위)과 음향무기

지난 2008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천하무적인 듯한 주인공 헐크를 한동안 꼼짝 못하게 한 무기가 등장했다. 미군 험비 차량 위에 레이더처럼 달린 장비에서 발사돼 헐크를 괴롭힌 것은 강력한 음파였다. 일종의 ‘음향 대포’다.

이렇게 공격 대상을 죽거나 크게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무력화하는 무기를 비살상 무기(Non-Lethal Weapon)라 한다. 적 병력이나 시설을 무조건 죽이거나 때려부수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점차 각광을 받고 있는 무기다. 소리, 전자파, 초강력 접착제, 섬광, 전기충격 등 비살상 무기는 다양하다. 시위진압에 오래전부터 사용돼온 고무탄도 비살상 무기라 할 수 있지만, 이보다 진화한 다양한 형태의 비살상 무기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로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음향무기는 이미 개발돼 실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군이 개발해 사용 중인 장거리 음향장치(LRAD·Long Range Acoustic Device)가 대표적이다. LRAD는 적군의 접근을 막거나 적대적인 군중 또는 위협세력을 효과적으로 해산시키기 위해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음을 낸다. 지난 2000년 10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콜’함이 예멘의 한 항구에서 소형 보트를 이용한 자살 테러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뒤 소형 보트 등의 함정 접근을 막기 위해 개발됐다. 이라크전에 시험 투입돼 최대 약 300m 밖에서 테러분자나 시위군중을 강제 해산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아덴만에서 작전 중인 미 해군 함정들이 해적 퇴치용으로도 운용하고 있다. 비록 비살상 무기이지만 오랫동안 이 무기의 소음에 노출되면 청각기관에 손상을 입거나 영원히 청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한다.

스컹크 폭탄 터지면 꼼짝 못해

마이크로웨이브로 적의 피부를 자극하는 ADS.
마이크로웨이브로 적의 피부를 자극하는 ADS.

일반적인 화재경보용 연기 탐지기는 80~90db(데시벨)의 소리밖에 낼 수 없지만, LRAD는 약 150db의 소리를 내 100m 거리 안에 있을 경우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음향무기를 개발 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개발 중인 국산 음향무기는 100m 떨어진 곳에서 120db 크기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미 공군이 개발한 ADS(Active Denial System)도 새로운 형태의 비살상 무기다. ‘능동거부 시스템’이라 불리는 ADS는 마치 전자레인지가 음식물을 데우듯 사람의 피부를 뜨겁게 자극해 제압한다. ADS는 전자파 발생장치와 지향성 안테나를 험비 등 차량 위에 탑재해 거대한 전자레인지처럼 약 100㎾ 출력, 95㎓ 주파수의 마이크로웨이브(극초단파)를 안테나로 쏘아내 500m 이내에 있는 적의 피부 신경을 자극한다. 표적의 피부 온도를 44~58도까지 높일 수 있다.

미국은 이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12년 동안 100명 이상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1만발 이상의 인체 방사시험을 통해 위력과 인체피해 여부를 검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크로웨이브가 인체 내부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고 피부로부터 0.4㎜ 정도까지만 투과돼 인체 내부 장기는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의 경우 2도화상을 입은 사례가 전체 1만건의 실험에서 0.1%도 안 되는 단 6건에 불과했다. 또 마이크로웨이브 빔(beam)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온도가 내려가고 고통도 사라진다고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처럼

테이저건
테이저건

공격 대상의 최루, 구토, 질식, 졸음을 유발하는 행동 불능제도 대표적 비살상 무기다. ‘고전적인’ 행동 불능제인 최루탄 외에 악취 폭탄이 새로운 행동 불능제로 주목받고 있다. 악취 폭탄은 말 그대로 악취를 발생시켜 적을 제압한다. 각종 악취로부터 화학적 성분을 채취, 압축해 폭탄 형태로 만든 것이다. 적을 육체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심리적으로 제압한다.

지난 2001년 미 국방부가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개발에 착수했으며, 2004년 초보적인 악취 폭탄인 ‘스컹크 폭탄’이 만들어졌다. 이 폭탄은 이스라엘에서 시험적으로 사용돼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효력 범위가 광범위하며 생산 비용이 싸다. 동굴이 많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비롯한 다양한 지형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처럼 일종의 거미줄을 발사하는 거미총도 있다. 거미총은 1.5m를 날아가서 터지는 캡슐을 발사하는데 이 캡슐에서 그물이 발사되면서 10m까지 날아간다. 이 그물은 1초에 30m를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물 끝에 작은 추가 달려 있어 목표물을 감싸버리기 때문에 그물에 걸린 사람은 꼼짝 못하게 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일본 경찰이 유럽의 훌리건 난동에 대처하기 위해 이 거미총을 개발 시험했다. 경찰은 진압 훈련 중 거미총을 사용해 훌리건 복장을 한 경찰들을 성공적으로 검거했다.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테이저건도 비살상 무기다. 테이저건은 종전 전기충격기와 달리 바늘이 달린 전극침을 발사해 6m 정도 떨어진 상대방을 고압 전류로 제압할 수 있다. 이밖에 언론에 많이 소개된 전자기펄스(EMP)탄, 탄소섬유탄도 비살상 무기에 포함된다.

강력한 전자기파로 컴퓨터, 전자장비 등을 무력화하는 EMP탄은 적 지휘부, 통신시설 교란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1발당 1000~2000달러의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만든 EMP탄 20발로 뉴욕 맨해튼을 한 달가량 마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EMP탄을 개발 중인데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62억여원이 투입됐다. 우리 EMP탄은 미국 등 선진국의 50~80% 수준이라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도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는 EMP탄 개발에 주력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첩보가 있다”며 “우리도 강력한 EMP탄을 201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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