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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00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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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군자(君子)와 철인(哲人)은 어떻게 다른가?

논어·국가

박종선  인문학 칼럼니스트 

▲ 죽간으로 만든 ‘논어’
어느 저명한 학자는 서양철학이 ‘플라톤의 각주(脚註)’라고 주장했다. 별다른 반론이 없다.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그런 평가조차 없다. 그것이 ‘공자의 각주’라는 점이 워낙 자명한 탓이다. 이렇듯 지난 2000여년 동안 동서양 철학에 대한 두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공자(BC 551~479)와 플라톤(BC 427~347)은 대략 동시대를 살았다. 그때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류사는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사회의 확대와 질적 변화로 인해 고래(古來)의 지적 대응방식은 유효성을 상실했다. 이때 저마다 다양한 해법을 들고나온 것이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그리스의 다양한 철학 유파이다. 그중에 우뚝한 위치를 점한 것이 공자와 플라톤이다.
   
   시대는 비슷해도 두 사람이 처한 사회환경은 사뭇 달랐다. 공자는 그 유명한 춘추전국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효의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끔찍한 전란 속으로 내몰렸다. 삶의 조건은 극도로 황폐했고, 인륜은 완전히 파탄났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가 인간의 도리를 부르짖은 것은 당연하다. 그의 생각은 ‘논어(論語)’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반면, 아테네는 자유민이 10만명 남짓한 도시국가였다. 그것은 어떤 정체(政體)라도 실험될 만한 규모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민주제, 과두제, 참주제, 귀족제 등이 앞다퉈 등장했지만, 정치적 혼란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일찍이 경험한 민주주의로 인해 개인의 권리는 비교적 확고한 편이었다. 이것이 플라톤이 개인보다 곧바로 국가에 관심을 쏟은 이유이다. 그의 구상은 ‘국가(Politeia)’에 상세히 피력되어 있다.
   
   이 두 책은 궁극적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한다. 공자는 ‘인(仁)’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고, 플라톤은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런 이상사회를 실현시킬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공자는 ‘군자(君子)’를 내세우고, 플라톤은 ‘철인(哲人·philosoper)’을 제시한다. 군자와 철인은 두 사람의 철학적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의 ‘군자’는 어떤 인간상일까. 군자에 대해 분명한 정의는 없다. 부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모아 보면, 군자란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仁)을 진심 어린 형식(禮)에 담아 힘써 실천하려는 사람이다. 그는 가족 안에서 효를 통해 이런 심성을 자연스럽게 함양하여 차츰 타인, 사회, 국가로 확대해 간다. 이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적 이상이다.
   
   이에 비해 플라톤의 ‘철인’은 애초부터 국가통치를 염두에 둔다. 그에게 정의, 곧 올바름이란, 각 부분이 각자 성향에 따라 맡은 일을 조화롭게 완수하는 것이다. 국가는 통치자, 수호자, 일반 시민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으로 운영된다. 무엇보다 통치자는 다른 계층과는 다른 특별한 지혜와 능력이 요구된다. 국가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이런 역할을 감당할 엘리트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 (왼쪽부터) 공자. / 플라톤. / ‘국가’의 사본.

   먼저 청소년에게 기초과목으로 시가(詩歌)와 체육을 가르친다. 이어서 수학이나 기하학 등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특히 수학 등은 감각적 지각을 뛰어넘어 추론적 사고를 길러준다. 이를 통해 불변의 실재, 곧 이데아를 포착할 수 있는 안목이 형성된다. 아카데미아 정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 또한 논리적 설득력을 키워주는 변증술(辯證術)도 주요 과목 중의 하나이다.
   
   이런 교육과정과 군복무 등을 마치고 서른 살 남짓할 때 최종적으로 엘리트를 추린다. 그 이후 약 15년 동안 관직이나 전쟁 등을 경험하게 해 풍부한 실무 능력을 쌓도록 한다. 대략 쉰 살쯤 되면 지혜, 경륜, 능력을 갖춘 성숙한 인간, 곧 ‘철인’이 된다. 그들은 오로지 철학에 매진하다가 일정한 선발과정을 거쳐 통치자가 된다. 그가 곧 ‘철인왕’이다.
   
   이처럼 공자와 플라톤은 특별한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특별함’이 무엇인가는 사뭇 다르다. 교육 방식이나 과목부터 확연히 구분된다. 한마디로 군자는 가족이나 개인의 일상으로부터 스스로 성장한 도덕적 인격체이다. 반면 철인은 처음부터 국가 시스템에 의해 체계적으로 육성된 지성적·인식론적 인격체이다. 공자가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했다면, 플라톤은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는 ‘능력’을 중시한 것이다.
   
   공자에게 ‘군자왕’이라는 개념은 없다. 중국에서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왕이 군자의 면모를 갖추도록 요구된다. 이런 요구를 모든 관료에게 확대하는 것이 유교적 이상이다. 이에 비해 플라톤에게는 철인이든 철인왕이든 모두 시스템의 일부이다. 요컨대 공자가 ‘인간’을 통한 접근에 초점을 맞췄다면, 플라톤은 ‘시스템’을 통한 접근에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군자의 통치 방식은 덕치(德治)이다. 덕치란 자신이 먼저 반성하고 솔선하며 상대를 너그러이 대해 스스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철인의 통치 방식은 법치(法治)이다. 그는 이상국가가 개인적 자질에만 의존하기보다 법률로써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구상은 ‘국가’의 자매편 격인 ‘법률’에 잘 드러나 있다.
   
   설사 비현실적일지라도 정체(政體)를 의도적으로 설계해 보려던 플라톤의 시도는 그 이후 서양의 사상과 학문에 다양한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서양의 여러 정체들은 모두 그의 이상국가론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에 비해 공자의 생각은 그 특성상 플라톤처럼 다양한 영역으로 구체화, 분화되기 어려웠다. 그 대신 모든 분야에 걸쳐 종교에 버금가는 윤리적 지침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공자와 플라톤의 사유(思惟)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그런 차이와 특징이 상징적으로 표상화된 인간상이 바로 군자와 철인이다. 그들을 품고 있는 ‘논어’와 ‘국가’야말로 동서양의 사유가 유래한 발원(發源)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먼지 묻은 책들을 자꾸 뒤적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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