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사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이주연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사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대 동양사학과 이주연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두께를 보고 놀랐다. 1140쪽. 그는 14세기 후반 아시아 한복판의 패자였던 티무르(재위 1370~1405)의 역사서를 세계 최초로 전문 번역, 서울대에서 지난 2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7월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박사가 가방에서 꺼낸 묵직한 논문의 제목은 ‘티무르조(朝)의 사서(史書), 야즈디 찬(撰) ‘승전기(Zafar-nama)’의 역주(譯註)’였다.

논문 제목에 담긴 뜻을 찬찬히 보면 이렇다. 번역한 책 이름은 ‘승전기’이고, 저자 이름은 야즈디이며, 티무르 황제 시대를 다룬 역사서를 역주했다는 의미다. 즉 번역하고 각주를 달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역주 작업에 박사를 주는 시대가 되었구나 하는 점에 놀랐고, 이 박사가 해낸 작업의 방대함에 다시 놀랐다. 1424년에 나온 원전은 당시 궁중 언어인 페르시아어로 쓰였다. 논문 앞부분에는 ‘승전기’ 해제가 72쪽 분량으로 나온 후 ‘승전기’ 본문이 이어진다. 그가 붙인 각주가 3160개이다. 인내를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완역으로는 세계 최초인 걸로 보인다.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이 각각 1722년과 1723년에 나왔으나 내가 보니 축약본이다. 빠진 부분이 있다. 러시아본이 2007년에 나왔다는데, 완역은 아닌 듯하다. 일본어와 중국어 번역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는 석사 때(2007~2012)는 중국 신장의 이슬람 칸국을 연구했다. ‘모굴(Mogul) 칸(Khan)국의 정주화와 이슬람화’가 제목이다. 모굴 칸국(모굴리스탄 한국)은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다. 이 박사에 따르면, 준가르 초원에 자리 잡았던 모굴 칸국은 새로운 유목민(카자흐족·키르기스족·오이라트족)에 쫓겨 톈산산맥 남쪽의 오아시스로 내려오고, 그리고 더 밀려나서 타클라마칸사막 남부의 도시 야르칸트와 같은 성곽 도시로 들어간다. 초원에서 오아시스로, 오아시스에서 성채로 가는 14세기 후반부터 17세기의 이동경로와 이슬람을 믿게 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지도교수인 김호동 교수님이 신장과 몽골제국 연구자다. 그런데 페르시아어로 쓰인 자료가 신장 관련해서는 별로 없다. 내 연구는 페르시아어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데, 신장은 연구할 게 많지 않았다. 연구할 게 많은 티무르제국으로 관심을 바꾸었다. 티무르제국은 신장의 모굴 칸국에서 보면 서쪽의 파미르고원 저편에 있었다.”

2013년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2015년부터 티무르 시대 역사서 번역을 시작했다. “김호동 교수님이 아직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지역에 한해서는 사료를 번역하고 각주를 달면 그것도 박사논문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승전기’ 번역을 하기로 했다.”

티무르제국 수도는 사마르칸트.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도시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초원의 실크로드에서 번성했던 오아시스 도시다. 티무르 무덤이 이곳에 있다. 티무르제국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서남아시아, 캅카스 지역, 소아시아, 북인도, 중국 서부까지에 이른다. 이 박사는 “티무르조는 몽골제국과 근세 무슬림제국(오스만제국, 이란 사파비 왕조) 출현 사이의 중간기에 존재했다”고 했다. 초원의 지배자 몽골의 칭기즈칸 제국이 쇠퇴한 뒤 초원을 호령했던 인물이 티무르다. 그가 놀라운 건 창업주이면서 당대에 제국을 일궜다는 점이다. 칭기즈칸에 놀랐던 유럽의 왕들은, 어느 날 동쪽에서 나타난 초원의 새로운 지배자 티무르에 놀랐다.

‘승전기’에 나타난 티무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유럽인은 티무르를 절름발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절름발이였는지 궁금했다. “그는 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는 지략가이다.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는 기록은 ‘승전기’에는 없다. 다만 티무르는 자주 아팠다. 병치레 하는 대목이 ‘승전기’ 도처에 나온다. 가령 그는 북인도의 델리를 정복하고, 중앙아시아로 돌아갈 때 몸이 많이 아팠다. 침상에 누운 채로 인도를 떠나왔다. 아파서 중단된 정복전쟁도 많았다.”

책을 보니 티무르는 명나라를 치려고 계획했다. 명의 지도자 영락제가 1404년에 조공을 7년째 바치지 않는다고 티무르에게 사람을 보내 압박하는 대목이 있다. 이에 티무르는 “밀린 조공 7년치를 내가 직접 갖고 가겠다”라고 말한다. 군대를 끌고 쳐들어가겠다는 말이다. 티무르는 중국 원정을 위해 출전했지만 오늘날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다가 1405년 죽고 만다.

학살자냐 지략가냐

티무르는 정복민 학살로 악명 높다. 북인도의 델리 술탄 왕조를 멸망시키고 델리에 입성하기 전 10만명을 도륙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이 박사는 “2016년 말 이란 수도 테헤란에 가서 1년간 있었다. 페르시아어를 더 배우기 위해서다. 이란에 가니 티무르는 이스파한 학살자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스파한을 점령했을 때 그의 군대는 하루 사이 7만명을 죽였다”라고 말했다.

‘승전기’는 티무르의 손자인 이브라힘 술탄의 지시에 의해 1424년 편찬되었다. 집필자인 야즈디는 오늘날 이란 중부의 주요 도시인 야즈드 사람이다. 야즈드 사람이라고 해서 ‘야즈디’라고 불린다. 야즈디는 시라즈(오늘날 이란의 주요 도시)의 통치자인 이브라힘의 부름을 받고 야즈드에서 시라즈로 갔다. 시라즈는 야즈드보다 약간 남쪽에 있다.

중국이나 조선의 지도자는 ‘실록’을 편찬했다. ‘승전기’는 ‘실록’에 해당하는 것일까. 이 박사는 “한 국가의 공식 역사서인 실록과는 좀 개념이 다르다. 정사(正史)처럼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역사서 편찬에 관심이 있는 왕의 특별 지시와 후원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편찬되었다”라고 말했다.

야즈디가 쓴 ‘승전기’ 말고도 티무르 시대를 기록한 사서는 더 있다. 실제로 티무르제국의 역사 관련 최고의 학자로 얘기되는 러시아인 바실리 바르톨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티무르조 연구는 사료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사료가 많은 게 문제다.”

번역이 어려웠던 건 ‘승전기’에 페르시아어로 된 시가 무수히 나온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시가 등장한다. 이 박사는 “페르시아 문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시 번역이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특히 페르시아의 저명한 시인 페르도시와 하피즈의 시 구절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슬람 종교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코란 등에서 인용한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라시드사(史)’와 ‘추라스사(史)’도 초벌 번역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라시드사’는 중국 신장 지역에 있었던 모굴 칸국 역사서이고, ‘추라스사’는 후기 모굴 칸국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다. 앞으로 계속해서 그가 번역한 책이 나올 듯하다. 이번에 번역한 ‘승전기’는 국내 한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 박사는 서울대 물리교육과 출신. 물리를 잘해서 들어간 학과였는데,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의 수업을 교양과목으로 듣다가 역사 공부로 방향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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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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