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단속으로 6개월 영업정지를 받은 중국 베이징의 ‘천상인간’룸살롱(KTV).
경찰 단속으로 6개월 영업정지를 받은 중국 베이징의 ‘천상인간’룸살롱(KTV).

지난 5월 11일 밤 10시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쉐라톤창청(長城) 호텔. 호텔 서쪽 부속건물에 있는 룸살롱 ‘천상인간(天上人間)’에 시 공안국 소속 경찰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이날 밤 공안국 소속 경찰들이 들이닥친 룸살롱은 이곳 하나만이 아니었다. 명문야연(名門夜宴), 화도(花都), 개부국제(凱富國際) 등 베이징 4대 룸살롱으로 꼽히는 곳에 모두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날 경찰서로 연행된 여종업원들만 557명에 달했다. 베이징 공안국은 이날 단속 후 “유상접대(돈받고 접대)와 소방안전법상의 법규 위반 등으로 이들 업소에 영업정지 6개월을 내린다”고 밝혔다.

부자들 놀이터 8호공관도

베이징 밤거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베이징시 공안국이 지난 4월 11일을 시작으로 관내 퇴폐 유흥업소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이면서부터다. 5월 한 달 동안만 35개의 크고작은 룸살롱이 문을 닫았다. 이 밖에 베이징 공안국은 매매춘 혐의를 받고 있는 149개 조직과 퇴폐이발소 등 256개 업소를 적발했고, 관련자 1132명을 사법처리했다. 특히 천상인간 등 그동안 단속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던 초호화 룸살롱에까지 이례적으로 경찰이 단속을 실시하자 파장이 급속도로 커지는 분위기다.

‘베이징 부자들의 놀이터’로 평가받는 ‘8호공관(8號公館)’(5월 17일자 주간조선 참조)도 단속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천상인간과 같은 날 단속에 걸린 8호공관 역시 6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샤오제(小姐·아가씨) 모집’ 등의 배너광고가 뜨던 8호공관의 공식 홈페이지는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인터넷을 통해 여종업원들을 모집하던 매니저들의 메신저 말머리에도 ‘영업정지, 잠시 모집중단’이란 글이 떠오른다. 베이징의 한 현지 언론은 “며칠만 기다리면 다시 영업을 재개할 것”이란 8호공관 관계자의 말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이번에 문을 닫은 천상인간은 베이징의 4대 룸살롱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업소로 손꼽히는 곳. 지난 2003년 8월 재단장하고 새로 문을 연 5성급 외국계 호텔 부속 룸살롱이다. 연면적 1만2000㎡에 디스코텍으로 사용하는 대형 플로어를 비롯해 52개의 크고작은 룸을 갖추고 있다. 린메이펑(林美風)이란 사람이 법인대표로 돼 있고, 미국 국적의 화교 친(秦)모씨가 전체 지분의 51%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기업인들 “팁·술값 너무 비싸”

베이징의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들도 천상인간 단속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따황(打黃·황색(섹스)산업을 척결한다)’이라 부르며 경찰 단속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은 천상인간 단속에 관한 각종 블로그와 여종업원 사진으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다. 천상인간의 여종업원들은 18~28세의 나이에 신장 168~175㎝의 모델 출신들로 채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 나돌고 있는 모델 출신의 한 20세 여종업원은 국내 모 기업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4대 룸살롱 여종업원 가운데는 4년제 대학이나 예술학원(예술전문대) 등을 다니는 여대생과 대학원생, 직장인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준어는 물론 각 지역 방언도 구사할 만큼 ‘전국구’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현지 언론이 전하는 4대 룸살롱 여종업원들의 기본급은 최소 3000위안(약 54만원).

1인당 최소 500위안으로 알려진 샤오페이(小費·팁)까지 합하면 베이징의 웬만한 직장인 월급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인센티브제로 운영돼 여종업원은 개별 룸에서 소비되는 술과 안주 매출의 8~10%를 따로 부수입으로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 피살된 천상인간의 ‘1대 명기(名妓)’ 량하이링(梁海玲)이 남긴 재산은 1000만위안(약 17억원)에 달했다.

실제 천상인간의 술값 등 유흥비는 현지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룸을 빌리는 값만 소형 2800위안, 중형 4800위안, 대형 6800위안, 총통방 1만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가세 15%와 술값, 안주값, ‘2차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사업상 천상인간을 3번가량 방문했다는 대만의 한 기업인은 “1년 전에 천상인간에 갔을 때 아가씨들 팁이 800위안 이상에 달했다”며 “술과 음료, 룸 사용료까지 합치면 아마 지금은 예전보다 가격이 3~4배는 될 것”이라고 홍콩의 봉황위성TV에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로 대륙에서 부동산 개발, 무기거래, 에너지, 광산 사업 등에 종사하는 업자들이 공무원들과 함께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 안다”며 “요즘 대만 기업인들은 가격이 비싸서 천상인간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가격 억제 위한 카드?

천상인간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가도 현지 언론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 천상인간의 실소유주로 거명되는 인물은 탄후이(覃輝·42).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 수십 개의 광고회사와 연예기획사를 거느리고 있는 중국 미디어업계의 거물이다. 2003년 888만위안을 들여 초호화 세단 ‘벤틀리728’을 구입하면서 유명세를 탔으며, 한때 홍콩배우 이가흔(李嘉欣)과 염문설을 뿌리기도 했다. 탄후이는 2006년과 2009년에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베이징 공안과 한 차례 악연을 맺은 적이 있다. 반면 탄후이 측은 “천상인간과 무관하다”란 입장을 현지언론에 밝힌 상태다.

이번 베이징 4대 룸살롱 전격 단속의 배경을 두고도 각종 설(說)들이 분분하다. 홍콩 봉황위성TV는 “왜 갑자기 이런 초호화 룸살롱에 단속의 손길을 뻗쳤겠느냐”며 “이번 단속이 부동산 정책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허가권을 가진 공무원들과 함께 초호화 룸살롱을 드나들고, 애첩들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면서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다 철퇴를 맞았다는 것이다. 베이징 시당국이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초호화 룸살롱 단속카드를 뽑았다는 설(說)이다.

현지 언론은 이번 전격 단속이 몰고올 정치적 후폭풍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태가 지난해 충칭(重慶)에서 진행된 조직폭력배 소탕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서기와 왕리쥔(王立軍) 시 공안국장이 주도한 충칭의 조직폭력배 소탕 작전에서는 3193명의 조폭과 67명의 두목을 잡아들이면서 12명의 고위관료도 함께 낙마했다. 이번 룸살롱 단속에서도 벌써 몇몇 공산당 최고위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단속에 모종의 정치적 배경이 깔린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단속 주역 푸정화

공산당원에 법학석사 출신의 엘리트 경찰… 스타로 떠올라

성역으로 여겨지던 베이징 4대 룸살롱 단속으로 베이징시 공안국장 푸정화(傅政華·55)는 스타로 떠올랐다. 1955년 허베이(河北)성 롼현에서 태어난 푸정화 국장은 정통 수사요원 출신으로 공안부 수사국 부국장, 베이징 공안국 부국장 등을 거쳤다. 공산당원이자 법학석사 학위를 가진 엘리트 경찰이다. 2003년 선양(沈陽)서 근무할 때 현금수송차량이 폭발하면서 220만위안(약 3억7000만원)이 털린 대형은행강도 사건을 단시일 내에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이징시 공안국 부국장 재직 시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건국 60주년 국경절 행사를 무사히 치른 바 있다. 그 공로로 지난 2월 말 인구 1700만명의 베이징 치안을 총책임지는 공안국장 자리에 올랐다. 과묵한 성격으로 말수가 적은 그는 이번 단속에서도 철통 보안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단속도 푸정화의 전격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란 것이 베이징 현지의 분위기다.

이동훈 기자 / 유마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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