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111호]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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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在日 한인 축구 선수들’ 책 낸 在日 스포츠 라이터 신무광씨

“일본 대표로 뛰면 더 대접 받을 텐데…
정대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최혜원  기자  

6월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북한과 브라질 경기에는 북한의 예상 밖 선전이란 점 외에 또 하나가 화제였다. 북한의 대표 공격수 정대세. ‘인민 루니’란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는 경기 시작 전 국가가 연주될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궈 전세계 축구팬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됐다.
   
   그가 경기 시작 전 눈물을 보인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2008년 2월 17일 중국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일본 대 북한 경기 때도 그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정대세, 그의 눈물엔 대체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
   
▲ 지난 6월 16일 오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 대 브라질의 경기에서 북한 선수 정대세가 국가가 흘러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photo 스포츠조선

   
   북한 월드컵 선전과 맞물려 국내 출간
   
   ‘일본에서 축구기자를 하는 신무광입니다’란 제목의 이메일이 도착한 건 지난 6월 8일 저녁 6시30분이었다. “오늘 제 저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매됩니다. 타이틀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입니다. 3월 17일 일본에서 출간된 ‘조국과 모국과 풋볼’의 한국어 번역본입니다. 정대세, 안영학(32·오미야 아르디자) 등 재일(在日) 코리안 북한 대표선수들을 다뤄 일본 언론에서도 소개된 책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기사를 통해 소개됐으면 기쁘겠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색한 표현이 간혹 섞여 있긴 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리명옥 옮김·왓북)는 뜻밖의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일본·북한·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재일동포 3세 선수 8명과 일본땅에서 축구로 한국을 알린 재일축구인 얘기가 300쪽 분량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특히 앞 100여쪽은 월드컵 북한대표팀 소속 정대세·안영학 두 선수에 할애됐다.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로 북한팀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져 있는 시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당장 도쿄에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추진했다. 때마침 신씨가 6월 15일부터 엿새간 한국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뷰는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왓북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신무광(39)씨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엔 ‘피치 커뮤니케이션즈 라이터 신무광(Pitch communications writer SHIN MUKOENG)’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쿄 태생인 그는 재일동포 3세로 초·중·고교 전과정을 도쿄 내 민족학교에서 마쳤다. 민족학교는 재일한국인 교육을 위해 세워진 학교로 일본학교와 달리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가르친다. 조총련계 학교가 대부분이어서 북한 관련 커리큘럼이 많은 게 특징. 제주 출신 할아버지를 둔 신씨 역시 그 영향으로 오랫동안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학(와코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할 때까지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었다.
   
   
   1996년부터 한국 오가며 축구 기사 써
   
▲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 저자 신무광씨.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그를 바꾼 건 한국축구였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못 구해 한동안 방황했어요. 프리랜서 기자로 잡지사 같은 데 글 써주고 돈을 벌었죠. 맛집 탐방, 여자 유혹하는 법…. 테마도 없이 닥치는 대로 썼어요. 그러던 중 1996년 5월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됐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북한이 아닌) 한국은 ‘나 같은 재일동포를 싫어하는, 약간 무서운 나라’였다. 그러나 취재 협조를 요청하려 대한축구협회에 전화를 건 순간, 선입견은 눈녹듯 사라졌다. “전화 받으신 분이 언제라도 오라고,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이후 그는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축구에 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기자실에서 늘 외톨이였던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한국 기자들, 한국 지리에 어두운 그를 선뜻 지방경기장으로 안내해준 붉은악마 회원들은 그를 ‘새로운 조국’ 한국에 눈뜨게 했다. 1997년 12월 그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 언론도 2001년 거스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자 그의 기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매체에 ‘신무광’이란 이름이 조금씩 노출되며 그는 서서히 스포츠 라이터로서 입지를 굳혀갔다. 당시 취재결과를 묶어 2002년 펴낸 책 ‘히딩크코리아의 진실’로 상(미즈노 스포츠라이터상 최우수상)도 받았다.
   
   새 책을 구상한 건 2002 월드컵 직후였다. 당시 일본 전역은 일명 ‘메구미 납북사건’으로 발칵 뒤집혀 있었다. 1977년 니가타현에서 하굣길에 실종된 여중생 메구미가 북한에 납치된 사실이 25년 후에야 공식 확인된 것. 이 사건으로 정작 피해를 입은 건 60만 ‘자이니치(재일在日의 일본어 발음·재일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였다. “북한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되자 동포 후배들이 무척 힘들어했어요. 일부는 ‘하필이면 왜 내가 코리안으로 태어났을까’라며 운명을 비관하기도 했죠. 상처 입은 그들의 자존심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 궁리하고 또 궁리했습니다.”
   
   이번에도 열쇠는 축구였다. “귀화를 선택하는 대신 당당히 한국이름을 달고 뛰는 재일 코리안 축구선수들이 떠올랐어요. 그들의 성공담을 통해 재일동포의 자긍심을 일깨워주자고 생각한 거죠.” 물론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주제 자체가 딱딱하고 무거웠다. 일본 인구의 0.5%에 불과한 ‘마이너리티’ 얘기인 데다 국적처리 문제·참정권 문제까지 더해지며 일본인은 재일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팔릴 책’이 아니다 보니 나서는 출판사도 없었다. 2008년 1월 겨우 출판사 한 곳을 섭외할 때까지 그는 책으로 만들어질지도 불투명한 얘깃거리를 찾아 선수들을 만나고 글로 옮겼다.
   
   
   선수들 평균 4회 이상 인터뷰
   
   정대세·안영학·량용기·리한재·박강조·정용대·정이세·이충성. 그가 인터뷰 대상으로 정한 선수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어느 팀에 소속되든 ‘코리안’이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젊은이란 점이다.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란 나라가 나의 모국”이라는 정대세, “국경이라는 경계선에 설 수 있는 재일인으로 태어난 게 정말 좋다”는 안영학, “일본도, 북한도 알기에 축구를 통해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리한재의 얘길 책에서 만날 때면 그가 어떤 기준으로 등장인물을 골랐는지가 한결 분명해진다.
   
   올 3월 책이 출간되자 일본에선 호평이 쏟아졌다. “이채를 발하는 월드컵 책, 월드컵 개막 전에 읽어서 좋았다”(아사히닷컴), “고난 넘은 재일 선수들, 그들을 통해 소개되는 북한 선수의 본모습도 흥미롭다”(교도통신), “일본 내 외국인 참정권 문제까지 건드린 수작”(아사히신문)….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구단 측 허락을 얻어야 겨우 1시간가량 만날 수 있는 선수들을 평균 4회 이상 인터뷰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두 마디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해당 선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일본 전역의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발로 뛴 보람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아사히신문 일요일판 서평란에 제 책이 소개됐을 때예요. 한 달에 수천 권씩 신간이 쏟아지는 일본에서 아사히신문 서평에 책이 실리는 건 대단한 영광이거든요. 특히 ‘재일동포 얘기지만 또한 우리 사회의 얘기기도 하다’는 평가는 정말 뿌듯했어요.” 그는 “책에 실린 선수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도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한번은 정대세 선수로부터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다른 선수들 얘기를 읽고 감동 많이 받았다고요. 책을 읽으며 너무 욕심 부리고 잘난 체해온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더군요. 특히 형(정이세)이 한국행을 결정하며 맘고생한 부분을 읽을 땐 눈물이 나왔대요.”
   
   
   책 보고 친분 없었던 선수끼리도 연락
   
   책 출간을 계기로 같은 재일인이면서도 전혀 친분이 없었던 선수끼리 친해지기도 했다. 안영학과 이충성(25·산프레체 히로시마)이 대표적 예. 신씨는 “나머지 선수들도 ‘네가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구나’라는 얘길 하며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더라”고 귀띔했다. 한국어판 출간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이었다. “운이 좋으면 한국에서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까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제가 일본어로밖에 원고를 못 쓰니 번역 등 절차는 엄두도 못 냈죠. 그런데 재일동포 한 분이 ‘이 책은 꼭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글을 제 블로그에 올리셨어요. 그분이 바로 제 책을 번역해주신 리명옥씨예요.”
   
   리명옥씨는 “번역료도 필요없다. 책으로 받아 동포들에게 나눠주겠다”며 적극적 번역의사를 밝혔다. 친분이 있던 영화감독 장철수씨를 통해 책을 출간해줄 한국 출판사 물색에도 나섰다. 한국 쪽에서 총대를 멘 건 ‘바른번역’이란 번역 전문 회사를 운영하는 번역가 김명철 대표였다. 우연히 신씨의 책 번역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김 대표는 거래하던 유명 출판사 십여 곳의 문을 두드리며 출간 의향을 타진했다. 그러나 모두 퇴짜를 맞았다. ‘천안함 사건과 맞물려 대북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월드컵이 너무 임박해 시기를 놓쳤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그는 직접 출판사를 차려 신씨의 책을 출간했다.
   
   
   “在日 꼬리표 불편하지만 숙명”
   
   책 초반 등장하는 신무광씨와 정대세 선수 간 대화 한 토막. 귀화해 일본대표가 되거나 한국대표가 되지 않고 왜 북한대표팀이 됐냐는 신씨의 질문에 정대세 선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러울 때도 있었죠. 일본대표였다면 더 많은 돈도 벌 수 있고, 좋은 동료선수도 있고, 유니폼을 자기가 빨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나 제가 일본대표로 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일본대표로 경기를 한다 해도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혼의 포효’ 같은 것도 없을 거고요. 부모님이 나쁜 일을 했다고 피로 이어진 인연을 끊을 순 없잖아요. 저 역시도 저를 키워준 부모를 배신할 수가 없어요.”
   
   정대세 선수뿐 아니라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선수는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굳이 실체도 없는 ‘재일’ 국적을 유지하며 불편하게 살아간다. 신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이나 운명이란 건 편하고 불편한 걸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재일동포의 대다수는 태어나면서부터 ‘넌 일본인이 아니다’란 시선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기왕 그렇게 타고난 운명이라면 부정하고 피하기보다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워보자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제가 만난 선수들 대부분으로부터 받은 인상이 그랬습니다.”
   
   인터뷰 이튿날 새벽, 북한 대 브라질의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경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세요?”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제 책 홍보를 위해서라도 북한이 이겨야 하는데…. (웃음) 북한이 브라질을 이기긴 힘들죠. 하지만 브라질은 유독 첫 경기에 약한 편이고 북한은 수비에 강한 팀이니까 한두 번의 기회는 반드시 있을 거예요. 북한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가 있고요. 기대해봐야죠. 전체적으로 보면 2무 1패 정도 기대합니다. 그만 해도 대성공이죠. 그런데 사실 전 한국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궁금해요. 한국에 있는 동안 그 부분을 취재해볼 생각입니다.”
   
   
   신무광의 눈에 비친 정대세 선수
   지는 걸 엄청 싫어해… 지코의 골 모음 비디오 보며 맹연습

   
▲ ‘인민 루니’란 애칭으로 더 유명한 정대세 선수는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 대표팀의 최고 기대주다. photo 연합뉴스
일본 프로축구인 J리그의 매력에 푹 빠져 부모님께 J리그 유니폼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홉 살 소년 정대세는 고급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달아준 유료 채널을 통해 유럽 축구리그 경기를 처음 접하며 프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고급학교 축구부원으로 평양 원정경기를 떠났을 땐 ‘다음 번엔 국가대표가 돼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고급학교 졸업 후 그는 조선대학교 축구부에 들어갔지만 도쿄 리그 3부 소속이던 조선대 출신으로 프로 선수가 되긴 쉽지 않았다. 기회는 대학 4학년 때 출전한 북·일친선축구 페스티벌에서 우연찮게 찾아왔다. 그는 이 경기에서 멋진 해트트릭을 선보이며 에이전트의 눈에 들어 조선대 출신으론 최초로 J리그(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진출했다.
   
   아이치 조선고급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시절 그를 지도했던 축구부 감독 리태용은 정 선수를 “지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며 축구에 관해선 정말로 진지한 아이”로 기억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브라질 출신의 전설적 미드필더 지코. 그는 지코의 ‘슈퍼 골 모음’ 비디오를 보며 지코처럼 골 넣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한편, 그는 한번 공을 잡으면 돌진하는 것밖에 모를 만큼 성미가 급했고 집착하는 마음이 강해 생각대로 자기 몫을 못하면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야생마 같은 성격 때문에 고급학교와 대학교 시절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고를 받았을 정도였다.
   
   정대세 선수의 국적은 한국이다. 한국여권이 따로 없었던 그가 북한팀에서 뛰길 희망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 북한여권을 발급해주며 국제축구연맹(FIFA)의 유권해석을 받아 북한 대표팀이 된 것. 그는 한국 국적의 재일2세 정길부씨와 조선 국적의 재일2세 리정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치현에서 나고 자란 그가 북한 국가만 들으면 눈물을 쏟는 민족성 강한 청년으로 자란 건 부모, 특히 민족학교 교사 출신 어머니 리씨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본인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라길 원해 일본학교 대신 민족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세계를 향해 크게 날개 펼치라”는 뜻의 이름(大世)에서도 그에 대한 부모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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