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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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주간조선에 보내왔다. 작년 연말부터 서울시 의회와 ‘무상급식’ 싸움을 벌여온 오 시장은 200자 원고지 26장 분량의 글에서 지난 10년간 일본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자행한 현금 살포성 복지 정책들의 구체적 사례와 허구성을 지적하며 복지 포퓰리즘이 일본 국가 재정과 후손들에게 큰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오 시장은 1993년 3월 일본 자민당이 유권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한 상품권 살포가 이후 계속된 현금 살포 공약의 단초가 되었다며 “그래서 나 역시 우리의 전면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 것”이라고 썼다.

서울시장이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고를 한 이유에 대해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오 시장의 글은 망국적 포퓰리즘의 시작이 되는 무상급식의 위험성에 대해 누군가는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을 포함한 유권자들에게 띄우는 충심의 편지”라며 “이틀을 고심하며 직접 쓴 글”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 의회는 최근 지난해 강행 처리된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

요즘은 잠자코 집무실 창 너머 산을 쳐다보는 일이 잦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유는 익히 짐작하시겠지요. 한마디로 답답한 심정입니다.

오늘은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라는 인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과거 자민당 집권 당시, 막후 실력자로 불렸던 일본의 유력 정치가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입니다. 온갖 권모술수로 정적을 제압하는 강인한 모습 뒤에는, 우리 재일동포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자상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도 현역 말기에 들어서자 이익과 타협하는 노회함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공명당과 타협하는 모습에서는 긴 한숨이 나옵니다. 왜냐고요? 당시 일본 국회의 의석 구조상 법안통과를 위해서는 공명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했는데, 공명당이 자민당에 협조하는 대가로 내세웠던 조건이 바로 현금 나눠주기식 포퓰리즘인 ‘공짜 상품권’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1999년 3월은 일본 정치사상 매우 부끄러운 달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자민당 정권은 공명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15세 이하 자녀에게는 무차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선별적으로 1인당 2만엔 상당의 상품권을 살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내세운 명분은 얼핏 듣기에는 좋은 ‘서민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였습니다. 소요된 재정은 지금 환율로 8조5000억원에 달합니다만, 이는 일본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정도의 수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권에 의한 무차별 현금살포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게는 더 없이 의미심장한 수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면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자민당 내부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그러자 노나카는 의원들을 모아 “공짜 상품권은 천하의 어리석은 정책(愚策)”이라고 한탄하면서도 “7000억엔의 국회대책비용으로 여기고 참자”며 무마시켰습니다. 책임 있는 정치가의 현실타협과 국민의 무관심을 양분으로 삼아 일본의 포퓰리즘은 이렇게 싹을 틔웠습니다.

저는 일본 국민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이익은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민초들의 가냘픈 인심을 이용하여 겉으로는 화려한 수사로써 본심을 감추고, 속으로는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는 위정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민주주의는 ‘표’를 먹고산다는 점이 저의 고민을 더합니다.

공공연한 매표(買票)행위에 맛을 들인 일본 정치권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랏돈으로 생색낼 생각을 합니다. 바로 ‘정액급부금’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무차별 현금살포입니다. 2009년 3월, 자민당이 벌인 일입니다.

국민 1인당 1만2000엔씩 지급하고, 65세 이상과 18세 미만 국민에게는 여기에 8000엔을 더하여 2만엔을 현금으로 지급하였습니다. 심지어 복역 중인 죄수들에게까지 지급하였습니다. 소요된 재정은 무려 27조원에 달합니다. 서울시 예산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단지 표를 사기 위해 살포한 것입니다. 이때 일본의 장기채무잔고는 이미 GDP의 150%를 돌파하였습니다.

야당도 이에 질세라 더욱 대담하게 맞불을 놓습니다. 포퓰리즘에는 포퓰리즘으로 대항한 것이지요. 첫해에는 매달 15세 이하 자녀 1인당 1만3000엔, 집권 이듬해부터는 매달 2만6000엔을 양육수당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집권에 성공합니다. 공약대로 지급할 경우 소요액은 75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일본의 국방비보다도 많은 금액입니다. 집권 민주당이 야당 시절 벌인 일입니다. 이쯤 되면 아예 내놓고 돈봉투를 살포하며 표를 사가던 우리의 1960년대 수준보다 못합니다. 최소한 나랏돈은 아니었거든요. 참고로 선관위에서는 무상급식, 무상교복 등 법적근거가 없는 ‘무상 시리즈’ 공약은 공직선거법에 저촉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려둔 상태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조례 통과를 강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2009년에 치러진 포퓰리즘 선거를 거치며 일본의 장기채무잔고는 마침내 GDP의 170%를 돌파합니다. 서로 현금 나눠주기 경쟁에 골몰하다보니 당연히 국채를 마구 찍어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한술 더 떠서 민주당은 막상 집권하니까 힘에 부쳤는지, 매달 2만6000엔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절반만 지급한다고 선언합니다.

포퓰리즘의 광풍이 일본을 휩쓴 지난 10여년간, 일본의 국가재정은 어땠을까요. 1997년에는 GDP와 엇비슷한 규모였던 장기채무잔고는 날로 늘어나, GDP의 200%에 도달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입니다. 지난 10여년간 무려 5000조원이 넘는 빚을 추가로 진 셈입니다. 이는 17년치 대한민국 예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물론 일본의 GDP 대비 장기채무잔고비율이 지난 10여년간 배(倍)로 증가한 것을 두고, 전적으로 현금 나눠주기식 포퓰리즘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2008년도 예산을 보면, 세출의 24.3%에 해당하는 약 276조원을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매년 대한민국 1년치 예산에 육박하는 빚을 갚기 위해 또 엄청난 빚을 져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입니다. 자민당 정권 시절 소위 ‘건설·도로족(族)’ 의원들의 정경유착으로 무분별한 재정지출이 이루어진 것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입니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부채를 껴안고도 국채잔고를 급속히 늘리면서까지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일부 교수들은 “일본의 보통국채잔고 약 8800조원 가운데 95%가량은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처럼 외국에서 빌린 돈이 아니므로 아무 문제없다. 일본은 미국과 다르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소위 지식인들의 몰염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빚은 어린이들이 훗날 성장하여 납부하는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피(血)와도 같은 돈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어린이들에게 먼저 미안함을 느껴야 합니다. 지식인들은 어린이들에게 먼저 참회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기보다 ‘우리 자녀들이 훗날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먼저 복지재정 지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포퓰리즘의 단초를 없애기 위해 맞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현금살포 정책의 행간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15세 이하 자녀’를 가진 가구를 목표로 한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15세 이하 자녀를 가진 부모’를 목표로 합니다. 일본 민주당이 집권한 지 1년이 지난 2010년 9월, 우리로 치자면 청와대 직속 싱크탱크에 해당하는 내각부(內閣府) 경제사회종합연구소조차 가계수입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차별 현금살포의 최대 수혜계층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바로 30~40대 유(有)자녀 중·고소득층이었다는 뼈아픈 진실을 실토했는데, 이 계층을 얻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상식입니다.

저소득층은 이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갖가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납세에 의한 공동체의 따뜻한 배려입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이미 무상급식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차별적 현금살포를 할 경우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저소득층의 경우 이미 받고 있는 상당 부분의 혜택이 상쇄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데 반해, 중·고소득층은 기존에는 받을 수 없었던 돈봉투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격입니다. 과연 누가 이를 마다할까요? 나랏돈으로 부자들 저축시켜주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30~40대 표심을 붙잡는 것이 선거의 관건입니다. 이제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면무상급식의 목표는 결코 손학규 대표께서 누누이 말씀하시는 ‘인격적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아닙니다. 전면무상급식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중학생 이하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의 ‘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더 좋습니다. 2009년 선거 때 일본 민주당이 내세웠던 선동구호가 바로 ‘콘크리트보다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이 닮지 않았습니까? 나랏돈으로 생색을 내면서 30~40대 표심을 공략하려는데, ‘자녀양육수당’으로 가자니 일본 따라하는 티가 너무 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면무상급식입니다. 게다가 ‘아이들 밥 좀 먹이자는데 뭐가 문제냐’고 선동하며 따뜻한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정책으로 내년 선거를 치르겠다는 손학규 대표의 말씀은 무차별 복지 포퓰리즘의 전면 등장을 예고하는 정치적 수사의 극치입니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명목은 달콤한 선동일 뿐,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정말로 취약한 저소득층에 보다 많은 혜택과 사회적 배려가 돌아가게 하려면 소득제한에 따른 선별적 복지를 해야만 합니다. 무차별적 복지는 평등이라는 좋은 의도와는 달리 전혀 다른 정책효과, 즉 불평등의 조장과 국가재정의 파탄을 초래할 뿐입니다.

전면무상급식은 이러한 일련의 현금 나눠주기식 공짜 시리즈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일찍이 노나카 히로무는 공짜 상품권이 ‘천하의 우책(愚策)’임을 간파했지만,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장차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 가고 훗날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공짜 시리즈의 시작인 줄 알았다면 타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없이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남은 10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앞으로 10년간 생산·소비 가능인구가 정점을 이루다가 2020년경부터 급속히 하강하게 됩니다. 남은 10년 동안 우리 기성세대가 조금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산적인 재정투자에 매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손들은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식 정치실험을 할 이유도, 할 여유도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통일에 따른 막대한 재정지출도 고려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복지재정지출의 대원칙을 세워야만 국가의 장래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십시오, 다음 선거를 위해 저들이 어떤 정책을 들고 나오는지를. 오직 깨어있는 국민만이 선진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우리 한민족 전체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포퓰리즘 선동정치의 예고된 장애물을 뛰어넘어, 우리 다함께 진정한 선진국을 향해 달려갑시다!

아직은 뛰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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