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만 중동자금 23조여원 수쿠크 제도적 장치 마련할 때
이슬람자본 면세되면 0.3~0.4% 더 싼 외자 조달 가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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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권시장에만 중동자금이 23조7000억원 이상이 들어와 있고 지금도 계속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와의 경제교류 활성화 차원에서 수쿠크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2월 24일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주영섭(53) 세제실장은 “외화표시채권은 모두 비과세 대상”이라며 이슬람채권인 수쿠크 역시 외화표시채권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실장은 “이슬람채권은 문화적 특성상 이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부동산 거래 등을 통해 수익금을 가져가는 구조”라며 “국제사회에서도 이슬람 자본을 사용하기 위해 수쿠크를 채권으로 인정해 주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슬람채권법 도입의 취지를 설명했다.

외화차입구조 다변화해야

주 실장은 2009년 10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된 이슬람채권법안의 실무 총괄 책임자다. 그는 당초 작년 정기국회에서 이슬람채권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슬람채권법은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도 기독교계의 반발로 통과가 무산됐다.

주 실장은 이번에 이슬람채권법이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일부 국가에 편중된 외화 차입 구조를 다변화해야만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원유 수입으로 대(對) 중동 적자가 큰 상황에서 수쿠크법을 통해 중동과의 협력관계가 증진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국회 통과가 어렵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을 포함해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수쿠크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세금을 매기고 있지만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수쿠크를 채권으로 인정하고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최근 일본도 이슬람 자본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 위해 세제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있다.

국내 경제단체들도 달러 기준 외화표시채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이자가 싼 수쿠크 도입을 요구해 왔다. 이를 토대로 기재부가 각계 전문가를 구성해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특히 국내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자본 유치에 주력해온 결과 이들 선진 국가의 경제적 변수에 우리 경제가 휘둘려온 측면이 강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와 같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이슬람채권법 마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반영됐다. 수쿠크가 법제화될 경우 기존 외화표시채권보다 이율이 0.3~0.4% 정도 저렴한 외국자본 조달이 가능하고 중동과의 교역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한다.

2008년부터 수쿠크 법안을 준비해온 기재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서 법제화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나 2009년과 2010년 정기국회에서 잇따라 일부 국회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통과가 지연돼 왔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유력해 보였지만 이번에는 개신교 측에서 본격적으로 강하게 반발하며 수쿠크 법안 폐기론까지 제기된 상태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등 국회 내 수쿠크법 반대론자들은 △법리적으로 수쿠크를 채권으로 볼 수 없고 △이슬람 자본에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며 △UAE 원전 자금 조달과의 연관 의혹 △시기적으로 외화차입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는 개신교 측의 입김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수쿠크법 특혜 아니다”

이 같은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주 실장은 수쿠크법을 특혜로만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외화표시채권은 기본적으로 과세 대상이 아닙니다. 수쿠크도 실질 내용은 돈을 빌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성격상 이자로 봐주고 면세를 해주자는 것입니다.” 주 실장은 “UN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조세협약원본 주석서에도 성격상 수쿠크의 수익구조를 이자로 보고 수쿠크를 외화표시채권으로 인정해주는 조항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의 강한 반발에 대해서는 기재부도 대응방안이 마땅치 않아 곤혹스럽다는 것이 주 실장의 반응이다. 경제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기재부와 달리 종교적 입장에서 현안을 바라보는 개신교와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측은 “이슬람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이슬람교의 침투로 간주하는 우리 종교계의 입장이 워낙 완강해 논의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힘들어 했다.

주 실장은 “수쿠크법이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대금 마련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회에서 UAE 원전수주와 관련해 수출입은행이 100억달러를 펀딩(funding)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온 적은 있지만 UAE 원전과 수쿠크를 직접 연결하는 주장은 나온 적이 없다”며 “원전을 이유로 정부가 수쿠크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해외 플랜트 건설을 수주할 경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펀딩을 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관례”라며 “수출입은행의 UAE 원전 펀딩은 이면 계약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기재부 측은 “수쿠크 도입 문제는 UAE 원전 수주 훨씬 이전부터 논의가 됐던 사안으로 시간 순서상 일련의 의혹은 논리가 맞지도 않다”는 설명도 했다.

“중동 교역에서 불이익 우려”

기재부는 수쿠크 법안이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일단 보류되더라도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여야 합의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를 통과한 사안이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를 할 수 있지만 폐기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 실장은 “법안 통과가 조금 늦춰지더라도 크게 지장을 받는 건 없다”며 “법안이 국회에서 더 논의돼 보완절차를 거쳐 통과된다면 정부 입장에서 그걸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이 폐기될 경우 중동국가들과의 경제협력 관계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주 실장을 포함한 기재부 측의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기재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 역시 “전세계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쿠크에 대해 우리가 테러를 운운하며 반대한다면 향후 중동과의 교역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종교계의 요구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주 실장은 기독교계의 반발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그는 “언론에서 자꾸 수쿠크법 논란을 다루는 게 부담스럽다”며 “종교적인 문제와 결부되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유리하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재부 일각에서는 기독교계가 수쿠크를 특혜라고 주장하고 나선 부분에 대해 “교회도 면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종교단체다. 그런데 이슬람에 대해 유독 특혜를 운운하는 건 난센스가 아닌가 싶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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