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산물 소비량 세계 2위 원양어업은 세계 5위서 20위권 추락
20년간 원양어선 한 척도 안 만들어 1차산업이지만 수산업 전망 밝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한 남자가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정치가로 대성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러나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바람에 미국 유학 중 귀국해 아버지의 기업을 맡아야 했다. 20년 가까이 기업을 경영했다. 정치로 들어서기 직전 1996년 회사의 매출액은 3000억원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국회의원을 고향(경북 고령·성주군)에서 두 번 했다. 8년간의 국회의원을 끝으로 타의에 의해 정치를 떠나야만 했다. 8년간의 정치인 생활 중 여당은 초반 2년, 나머지는 야당 생활이었다.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회사로 돌아왔다. 2003년 매출액은 2500억원. 정치의 쓴맛을 본 그는 경영에 올인했다. 이 회사가 2010년 매출 1조800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불과 7년 만이다.

사조그룹 주진우(朱鎭旴·62) 회장 이야기다. 2010년 말 주진우 회장은 세계해양포럼이 시상하는 제4회 대한민국 해양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산 분야에서는 주 회장이 최초다. 역대 수상자는 강덕수 STX그룹(조선 분야), 이진방 한국선주협회장(해운 분야), 왕상은 협성해운 회장(해운 분야)이었다.

주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3월 2일 늦은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사조그룹 본사 사옥에서였다. 사조그룹 본사 빌딩은 옛날 그대로다. 회장실은 5층. 옛날 건물이라 그 흔한 엘리베이터도 없다. 도저히 1조8000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린 회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기자는 2006년에 주 회장 방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다. 5년 만에 회사는 눈부실 정도로 성장했지만 그의 방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너무나 검박했다.

정치에서 돌아온 주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2004년 해표 식용유를 만드는 신동방을 인수했다. 2006년 어묵 맛살 회사인 대림수산을 인수했다. 곧이어 오양수산도 인수했다. 인수합병 이후 제품 이름도 달라졌다. 사조대림(어묵), 사조오양(참치캔), 사조해표(식용유) 등. 사조그룹 홈페이지에서 색다른 게 눈에 띄었다. 사조 로하이 포크였다.

- 축산까지 뛰어든 줄은 몰랐다. 수산업·수산가공업과 축산업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

“돼지 사료는 뭘로 만드나. 콩가루, 어분(魚粉) 등이다. 원래 수산 회사니까 어분은 있었고, 해표 식용유를 인수했으니 콩가루도 나왔다. 종돈(種豚)과 사료를 축산농가에 나눠주고 돼지 한 마리가 120㎏이 되면 마리당 비용을 4만원씩 주고 우리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수산업과 축산업은 수직화로 맞물려있다.”

-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손해가 크지 않나.

“우리 돼지 1만2000마리가 살처분되었다. (살처분해야 한다고 하니) 정말 열받았다. 살처분한 돼지들은 모두 보상금을 받았다. 우리는 돼지 생체(生體) 1㎏당 3800원을 받았다. 돼지 값은 살처분 전날 시세로 쳐줬다. 그런데 살처분한다고 하니 돼지 값이 뛰었다. 지금은 1㎏당 6800원으로 올랐다.”

15~16대 국회의원 시절 그는 한나라당 당적으로 8년간 농림수산위원으로 활동했다. 구제역 파동을 거치면서 다른 축산농가와 달리 느낀 게 많을 터였다.

- 정부의 구제역 대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알다시피 나는 농림수산위원만 8년 했다. 16대 국회 때 농가 구조개선에 28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많은 농민들이 이 돈을 받아 자동차, 냉장고, TV 등을 사는 데 썼다. 농림위원으로 열심히 하느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농업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 농촌은 기업화되어야만 살길이 있다. 농촌을 떠날 사람은 떠나야만 기업화가 가능해진다. (농축산인이) 우는 대로 정부가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결국 농축산인의 정신상태를 해이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원양어업 강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대양의 물살을 가르며 고기를 잡아 1989년에는 원양어업 규모 세계 5위였다. 부산 수산대를 졸업한 김재철씨(동원수산 창립자)는 원양어업 전성기에 참치를 잡아 회사를 키운 사람이다. 김재철은 박준형씨(신라교역)와 함께 수산업 1세대다. 그의 인도양 원양어업 기행문 ‘거센 파도를 헤치고’는 한때 실업계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했다. 김재철(77)·박준형(75)의 뒤를 이어 주진우(62) 회장이 현재 한국 수산업의 계보를 잇고 있는 중이다.

-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수산·냉장식품은 한때 한계산업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왜 이 분야가 한계산업으로 평가받았나.

“내가 몰랐던 것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수산업이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수산업을 3D 업종으로 생각하면서 내수 제조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산업이 종을 쳤다.”

제조업이란 동원 참치캔, 사조 참치캔, 오양 참치캔, 한성 맛살, 오양 맛살, 대림 선어묵 등을 말한다. 소비자들에게 한동안 사랑을 받던 브랜드들이다. 주 회장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제조업을 해보니 영업조직망이 중요했다. 수산업에서 제조업으로 바꾼 회사들은 영업조직이 약했다. 브랜드 충성도 역시 강하지 않았다. 단일품목으로 승부를 하다보니 광고비만 올라가고 종합식품 회사처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수산업이 사실상 다 망해 있었다. 대림은 법정관리 상태에 있었고, 오양도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사조가 이 회사들을 인수할 수 있었다.”

- 수산업이 다 망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989년에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세계 5위였다. 그러던 것이 2004년은 세계 19위가 되었다. 원양어업 생산량이 연간 120만톤이던 것이 2004년에는 50만톤으로 추락했다.”

- 원양어업 강국이 그렇게 됐다니 믿을 수가 없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원양어선을 한 척도 건조하지 않았다. 1980년대 1200척이 있었지만 지금은 354척이다. 남은 354척 중에 가장 최신 어선이 1989년에 건조한 배였다.”

- 다른 나라의 실정은 어떤가.

“1988년 1년간 대만은 원양어선을 100척 건조했다. 한때 참치잡이 어선만 600척 이상을 보유하기도 했다. 대만이 인도양을 완전히 장악해 지금 떼돈을 벌었다.”

원양어업 세계 19위는 수산물 수출입 수치로 입증된다. 1996년 우리나라는 수출 15억달러, 수입 7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러던 것이 2010년에는 수출 7억달러, 수입 20억달러로 바뀌었다. 2010년 현재 원양선원은 2000명 선으로 급감했다.

한국 사회의 수산업 홀대의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재철을 비롯한 수많은 수산 인재를 배출한 부산수산대는 ‘수산’이라는 이름을 부끄럽다는 듯 떼내고 부산부경대로 교명을 변경했다. 어로학과도 없어져 수산시스템학과와 수산경영학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점으로 육류 소비량과 수산물 소비량이 역전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으면 수산물 소비량이 육류 소비량을 앞서게 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이야기다. 2010년 한국인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67㎏이었다. 세계 2위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2001년 42.2㎏이던 것이 2008년 55㎏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육류 소비량을 보자. 2001년 38.2㎏이던 것이 2008년 40.7㎏이 되었다. 사실상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주 회장은 아프리카에서도 생선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갱이가 1톤당 200달러 하던 것이 최근 800달러가 되었다. 생선값 뛰는 것이 옥수수·콩값 올라가는 것 못지않다. 생활의 질이 높아지면 생선을 많이 먹게 되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참치·오징어 등은 대표적인 회유성(回游性) 어종이다. 알려진 것처럼 정착성 어종인 명태는 북태평양 근처에서 많이 잡히고, 다랑어(참치)는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주로 잡힌다. 회유성 어종의 경우 미국과 러시아는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 현재 회유성 어종에 대한 쿼터제는 어떤 실정인가.

“미국으로부터 명태 영구쿼터를 사려면 1년 쿼터료의 50년치를 줘야만 한다. 러시아에서는 체제가 안정되면서 영구쿼터를 사려면 4.5년치를 한꺼번에 줘야 한다. 명태 쿼터 비용이 매년 오르고 있다. 2050년부터 바닷고기를 마음대로 못 잡는다. 참치의 경우 UN에서 쿼터제를 관할하고 있다.”

- 사조그룹이 확보하고 있는 쿼터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민간 베이스에서 명태 영구쿼터 6만톤을 갖고 있다. 과거 오양수산은 미국 명태 쿼터의 0.25%를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양수산을 인수하는 바람에 이 지분 0.25%는 사조그룹 것이 되었다. 2010년에 우리는 0.25%에 대한 배당금으로 380만달러를 받았다. 수산업은 1차산업이지만 대단히 전망이 좋은 산업이다.”

사조그룹은 현재 한국인이 먹는 명태의 40%, 참치 35%, 수입을 제외한 대구의 100%를 잡는다. 명태 요리를 열 번 먹는다면 그중 네 번은 사조그룹의 원양선단이 잡은 생선이라는 뜻이다.

- 오대양이 쿼터제로 묶여 있다면, 새로 개척할 바다는 없나.

“지금은 쿼터전쟁의 시대다. 하지만 쿼터 관리가 안되는 지역이 있다. 공해상 수심 1000m 밑이다. 이곳은 주인이 없다. 지난해 사조그룹은 미드웨이 근해에서 도미를 2000톤 잡았다. 또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남쪽 바다에서 메로를 200톤 잡았다.”

-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 무대가 인도양이다. 대만 원양어선들의 타격이 크지 않나.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대만 원양어선들이 인도양으로 못 가고 있다. 당연히 참치도 못 잡고 있다.”

- 수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했는데, 사조그룹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리 회사가 23년 만에 성동조선에 원양어선 2척을 발주했다. 23년 만에 국내에서 건조하는 어선이다. 2009년에는 대만에서 한 척을 건조했었다. 한국이 조선 강국이지만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등에서 원양어선은 안 만든다. 또 어선을 만들 줄 아는 장인들이 다 늙어버려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법정관리에 있는 통영의 성동조선에 발주를 했다. 성동조선은 원양어선으로 특화한 조선회사다. 2012년 4월에 원양어선 첫 배가 나온다.”

- 정치 경험 8년이 기업경영에 어떤 도움을 주나.

“전체 흐름 속에서 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졌다.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이 결정하면 실행만 하면 된다. 정열을 쏟아부을 수 있으니까 좋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다시 출마해 명예회복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를 못하게 된 걸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수산축산업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 2세대 수산업 오너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수산업은 주인 없는 영토의 확장이다. 이 점에서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1차산업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 2013년이면 사조 창립 40주년인데, 목표는 뭔가.

“회사 이름이 사조(思潮) 아닌가. 1차산업에서 규모를 확장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매출액 4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키워드

#CEO
조성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