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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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진영에서 전국 단위의 친박(親朴) 모임을 조직하는 등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내 비박(非朴) 또는 친이(親李·친이명박) 세력들은 대세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과거 이회창 전 총재(현 자유선진당 대표)가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1997년,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걸 두고 하는 얘기다. 야당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박근혜 독주를 차단할 대안이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내년 대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쟁주자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단 대세론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이 가진 무게감도 최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이후 시작된 박 전 대표의 독주가 2012년 12월 대선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4·27 재보선과 내년 총선 등 정치 지형이 흔들릴 정도의 변수도 많이 남아있다. 대세론 뒤에 가려진 박 전 대표에 대한 약점과 개인적 궁금증도 해소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친박 울타리를 벗어난 이른바 탈박(脫朴·이탈한 친박) 인사들의 입은 그래서 주목을 받는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용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난 진영 의원은 최근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면서 악화된 지역 민심을 추스르고 있었다. 진 의원이 재선을 한 서울 용산구는 지금 개발이 한창이다. 용산구 전체의 약 80%가 재개발,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낙후된 지역이다. 그는 “집권 여당의 각종 정책 지표는 좋아졌지만 그 혜택이 서민에게 전달되지 않으면서 여론이 나빠졌다”고 진단했다. 또 뉴타운 등 이미 착수한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땅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서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고 했다.

“전세난과 뉴타운 개발 지연 등으로 바닥 민심이 좋지 않다. 용산구 전체가 공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디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곳이 없다. 걱정이다.”

“친박 조직들 폐쇄적”

진 의원은 2004년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를 맡았을 당시 첫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제 친박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로워지겠다. 앞으로 중립으로 불러달라”면서 돌연 탈박을 선언했다. 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책사로 통할 정도로 그와 자주 대면을 한 정치인이다. 진 의원의 합리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온건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2007년 당내 경선 당시 박근혜 경선 캠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외곽에서 지원을 했다. 미국처럼 국회의원이 직접 캠프에서 뛰는 게 아니라 이른바 참모들이 일을 하는 방식을 염두에 뒀던 것이다. 그 결과 친박 진영에서 그는 ‘무늬만 친박’이라는 비판을 받는 등 이른바 ‘왕따’ 취급을 당했다.

진 의원과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진 의원은 상당히 합리적인 인물이다. 세종시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살피기에 급급하기보다 현실적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모두 반대표를 던지는 식의 정치를 그는 거부했다. 그러다보니 친박 인사들은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실제로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을 거부한 것과 달리 수정안에 찬성하는 소신을 고집했다.

이후 2008년 당내 최고위원 선거와 2010년 4월 서울시 공천심사위원장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친박 측의 비토를 받아 중도에 포기하거나 고사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근혜 경선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서울시 공심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친이계조차 적임자로 진 의원을 천거했는데 박 전 대표가 다른 의원에게 양보하라는 뜻을 진 의원에게 전했다. 친박이라는 정치인의 두꺼운 벽을 깨려고 노력해왔던 진 의원으로서는 상당히 답답해 했다. 박 전 대표 주변에서 자신을 아무리 견제해도 박 전 대표는 중심을 잡을 거라고 봤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박 전 대표를 떠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탈박을 한 배경은.

“경선 패배 후 (친박 진영의) 반성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친박, 친이의 틀을 깨고 당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갔어야죠.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여러 번 (박 전 대표에게) 전달했는데 개선이 안 됐어요. 안타깝지만 내가 그 벽을 허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 다른 친박 의원들은 잘하고 있습니까.

“글쎄요. 친박을 자청한 건 본인이 잘되자는 게 아니라 (박 전 대표를) 돕겠다는 거 아닌가요. 박 전 대표도 그동안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 고민해 봐야겠지만 지금껏 친박 의원들이 뭘 했는지도 자성해 볼 대목이죠.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행동했다면 지금 박 전 대표는 당의 희망으로 우뚝 떠올랐을 겁니다. 2007년 경선 이후 패인에 대한 백서조차 만들지 않았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까지 그냥 흘러온 겁니다.”

- 그래도 대세론을 타고 친박 조직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조직을 담당했던 친박 인사가 있었는데,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고 했지만 막상 총선에선 자기 지역구도 못 챙겨 애를 먹더군요. (조직이라는 게) 잘못하면 소리만 요란한 법입니다. 일부 박근혜 지지모임처럼 폐쇄적으로 공고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지금이야 도움이 될지 몰라도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될 겁니다. 자칫 지역에 기대는 인물로 비쳐질 여지도 있고요. 벽을 허물고 전체를 아우르는 그림을 그려야죠.”

진 의원은 탈박 선언 이후 지역 내에서 일부 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선택한 부분은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특임장관과도 가까운 사이다. 지난 2003년 원외 정치인이었을 당시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사무총장이던 이재오 장관과 친해졌다고 한다. 탈박 선언을 즈음한 시기에 실시된 작년 4월 재보선에서 은평을에 출마한 이 장관을 지원했다. 은평을 지역에서 오랫동안 소아과를 운영해온 진 의원의 부인도 적극적으로 뛰었다. 외견상 친박에서 친이로의 완벽한 전향이 이뤄진 셈이다.

“선거의 여왕도 맞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떠난 사람들. 왼쪽부터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왼쪽), 전여옥(가운데), 진영 의원. ⓒphoto 조선일보 DB
박근혜 전 대표를 떠난 사람들. 왼쪽부터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왼쪽), 전여옥(가운데), 진영 의원. ⓒphoto 조선일보 DB

박 전 대표가 당 대표일 때 당대변인을 지낸 전여옥 의원은 진 의원보다 앞서 2007년 7월 탈박을 선언했다. 전 의원은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에서 하루 평균 6개 이상의 지역 행사를 챙기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 의원을 지난 3월 31일 영등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지난 18대 선거 때 정말 어려운 선거를 치렀어요.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선택한 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친박 모임이 조직적으로 선거를 방해했거든요. 전통적으로 야당이 우세했던 영등포에서 나를 당선시켜준 지역 유권자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지역에 정성을 쏟는 건 그런 유권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제 책무이기도 하죠.”

영등포갑 지역은 호남 출신 주민이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여당에 대한 바닥 민심이 나빠져 지난 18대 때보다 더 어려운 선거가 예상된다는 게 전 의원의 말이다. “정치인은 평가를 받는 거고 그 결과에 따라 담담하게 다음 행보를 이어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언제든 (정치를) 떠날 수 있어야죠.” 전 의원은 최근 정몽준계로 분류되고 있다.

‘독설가’로 박 전 대표를 경호했던 전 의원은 왜 탈박을 선언했을까. “저는 인간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 갈 길을 가는 스타일이죠. 박근혜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열심해 도왔고 여성 대통령이 나오길 바라기도 했죠. 그런데 아무리 옆에서 지켜봐도 내가 생각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지도자라면 지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언변에 능해야 하고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안됐기 때문에 대통령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선거의 여왕’인 점은 인정했다.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고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정치인으로 국민이 높이 평가하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유연성 부족은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재추진 의사’를 내비친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강이나 하천이 없는데도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합니다. 선거 땐 이기기 위해 온갖 걸 다 동원하죠. 심하게 말하면 약간 돌아요.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되면 제정신으로 돌아와야죠. 원칙을 지켜야 한다면서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쁜 거 아닌가요.”

“대변인 시절 대화 나누려 차에 탔더니…”

그는 여성 대변인을 하며 박 전 대표의 지근거리에 있었던 몇 안되는 측근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박 전 대표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했다. “대변인 시절에 박 전 대표의 차량을 탄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 대변인이니까 이동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다음날 비서를 시켜서 차량을 같이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해 오더군요. 저도 개인적으로 움직이면 당연히 편하죠. 그런데 잠시 차량에 같이 있기가 불편하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 탈박 선언으로 어려운 선거를 치렀죠.

“18대 총선 당시 표가 떨어져나가는 게 보였죠. 친박연대 후보가 나오고 박사모가 조직적인 낙선운동을 하는 등 선거가 매우 어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친박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현명한 유권자가 지역에 많거든요.”

- 4·27 재보선은 어떻게 전망하는지.

“한나라당이 4곳 모두에서 패배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엄기영 같은 분이 어떻게 한나라당에 영입될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 박 전 대표를 배신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박 전 대표와 종신 계약을 맺은 게 아니잖아요. 국회의원으로서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무성·진영 의원과 저는 박 전 대표를 아주 가까이서 본 몇 안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왜 떠났을까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우상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고용된 근로자입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 진영의 좌장이었으나 2009년 초부터 박 전 대표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해온 박 전 대표와 사실상의 결별을 선언했다. 작년 2월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운찬 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자 같은 달 박 전 대표는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면서 김 원내대표를 내몰았다. 김 원내대표는 작년 5월 친이계의 도움을 받아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박 전 대표가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한 인사는 김 원내대표와 박 전 대표의 관계가 늘 불안했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이다.

“김무성 의원은 체격과 달리 성격은 소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그야말로 부산 사나이로 변하곤 했다. 2007년 경선 때도 한번은 김무성 의원이 부산에서 박 전 대표를 모시고 기자들과 저녁을 하는데 직언을 한다고 말실수를 여러 번 했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캠프 핵심에게 전화를 걸어 ‘김무성을 빼고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을 정도다. 그 뒤로는 김 의원이 박 전 대표가 가는 자리에서 술을 자제했다.”

“한번 눈 밖에 난 사람 거두지 않는다”

김 원내대표와 박 전 대표가 결별 수순을 밟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9년 원내대표 선거 당시 출마를 준비하던 김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와 상의 없이 친이 측과 조율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는 김 원내대표에게 불쾌감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당시 출마를 접었다. 그리고 1년 뒤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그는 요즘 당권에 도전할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의 안상수 대표체제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안 대표 주변에서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김 원내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박 전 대표와 관련해 묻자 그는 “내가 박 전 대표의 대변인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분 얘기를 묻느냐. 그런 얘기는 이제 하지 않을 생각이다. 친박이라는 의원들에게 물어봐라”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의 측근인 정종복 전 의원의 경우는 박 전 대표의 성격 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얘기된다. 정 전 의원은 2009년 4월 경주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친박을 표방한 무소속 후보의 도전을 받았다. 이렇게 되자 그는 친박계인 진영 의원을 통해 사실상 백기투항 의사를 박 전 대표에게 전달했다. 정 전 의원은 “친박이 될 수 있다”는 의사까지 전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끝내 정 전 의원의 손을 잡지 않았다. 이를 놓고 박 전 대표는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은 다시 거두지 않는다고 주변에선 말하고 있다.

친박 진영의 한 재선의원은 탈박을 선언한 이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김무성·진영 의원 등 박 전 대표와 멀어진 인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선택을 한 것이다. 박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또 다른 친박 인사는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결국 박근혜 전 대표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친박, 친이 등의 경계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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