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작가의 뒤쪽 벽면에 빔 프로젝터의 스크린이 있고, 그 양쪽에 장서 2만여권의 일부가 보인다.
장석주 작가의 뒤쪽 벽면에 빔 프로젝터의 스크린이 있고, 그 양쪽에 장서 2만여권의 일부가 보인다.

깡마른 체구에 책 읽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독서열은 왕성했지만 집안 형편은 책 한 권 사줄 여유가 없었다. 소년은 틈만 나면 책이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세계문학전집이니 위인전집이니 그 집에 있는 책을 먼저 읽은 것은 친구보다 소년이었다. 소년이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쓴 시 ‘겨울’이 청소년들의 필독서였던 잡지 ‘학원(學園)’에 실렸다. ‘학원’지는 당시 쟁쟁한 학생 문인들을 배출해냈다. 소년의 시를 선택한 사람은 고은 시인이었다. 고등학생 때 쓴 단편소설도 ‘학원’지에 실렸다.

집안 형편 때문에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경기상고에 진학한 소년은 학업에 흥미가 없었다. 철학자처럼 말없이 책만 읽었다. 이 철학자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 자칭 ‘평화주의자’였던 소년은 교련 수업을 거부했다. ‘평화주의자’에게 돌아온 것은 무지막지한 ‘몽둥이찜질’이었다. 그 일로 소년은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정규 학력은 ‘고2’로 끝이 났다. 학교 대신 매일 서울시립도서관과 국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로 등교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에게 필요한 공부는 학교가 아니라 도서관에 있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평생 책만 읽고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1975년 월간문학(1968년 창간) 신인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면서 소년은 진짜 시인이 됐다. 1979년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동시에 당선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56)다.

‘수졸재’에서 ‘호접몽’으로

지난 봄 완성한 새 집필실 ‘호접몽’
지난 봄 완성한 새 집필실 ‘호접몽’

시인은 10년 전 또 한번 규격화된 삶의 밖으로 자신을 유폐시켰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느리게 살기 위함이었다. 경기도 안성 금광호숫가에 집을 짓고 삶의 속도계를 ‘느림’에 맞췄다. 살림집 옆에 지은 작은 집필실에는 수졸재(守拙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삶과 문학 앞에 납작하게 엎드려, 그 낮음을 지키고 산다’는 시인의 뜻이 담겨 있다. 수졸재에는 손때가 묻은 장서 2만여권이 빼곡히 차 있다. 웬만한 도서관 규모이다. 시인은 일주일이면 10여권의 책을 읽고, 한 달에 책 값으로 수십만원의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시인은 “‘책 사는 데 돈 아끼지 말자’가 우리 집 가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책을 더 이상 수졸재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지인들 불러 맑은 공기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었다.

수졸재에서 호숫가 쪽으로 몇 걸음 더 옮겨 넓은 집필실을 짓기 시작했다. 이곳에 내려온 후 장자와 노자에 빠져 사는 시인이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을 본떠 이름을 붙인 새 집필실이 이번 봄이 오기 전 막 완공됐다.

165㎡(50여평)의 ‘호접몽’은 새 건물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도 역시 서가가 사방 벽을 둘러 차지하고 있었다. 수졸재에 있는 책 중 3분의 1만 옮겨왔다는데도 서가는 대부분 채워져 있었고, 미처 꽂지 못한 책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시인의 야심작인 빔 프로젝터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그 옆에는 지인이 기증했다는 앤티크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시인은 ‘호접몽’을 위해 만타레이 혼(Mantaray Horns) 스피커도 새로 장만했다. 시인이 음악을 틀었다. 생생한 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새삼 이곳의 이름이 ‘호접몽’임을 알 것 같았다. 시인은 이곳에서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꿈속의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초월한 장자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시인은 지인들을 불러 영화를 보고 문학을 논하고 작은 연주회를 열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시인은 “지난 주말에도 후배 시인 20여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바닥 한쪽에 줄줄이 늘어선 포도주병들이 그 말을 확인시켜줬다.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게

‘호접몽’ 창밖으로 백로가 날아오르는 금광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엔 밤나무숲이 있다.
‘호접몽’ 창밖으로 백로가 날아오르는 금광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엔 밤나무숲이 있다.

‘호접몽’이 완성되면서 시인은 바깥 활동을 줄이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진행했던 국악방송의 ‘문화사랑방’도 지난해 말 그만뒀다. 대학 강의도 끊고 웬만한 취재 요청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격주로 하고 있는 시·소설 창작교실만 남겨뒀다. 써야 할 책도 많고 그 새 빨라진 삶의 속도를 다시 늦추기 위해서다. 당분간 집필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시인은 스무 살에 등단해 서른여섯 해 동안 60여권에 이르는 책을 펴냈다. 그중 30여권은 이곳에 내려와 10년 동안 쓴 책이다. 올해 출판사와 새로 계약된 책만 6권이고, 내년에 또 6권이 대기하고 있다. 그 많은 작업량이 가능한 것은 ‘느리게 살면서도 게으르지 않은’ 시인의 성실함 덕분일 것이다. 또 도시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덕분이기도 하다.

시인의 하루는 호수가 깨어나기도 전인 새벽 4시에 시작한다. ‘호접몽’으로 출근해 맑은 차를 마시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정신을 명민하게 깨운다. 새벽 시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해 낮 12시까지 ‘근무’를 한다. 도시인이 하루 종일 할 일을 반나절 안에 끝내는 것이다. 대신 오후는 게으름에 몸을 맡긴다. 등산화 신고 서운산이니 칠현산이니 근처의 산을 오른다. 오이 하나 입에 물고 고찰도 둘러보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한 번에 서너 시간씩은 이렇게 자연에 마음을 풀어 놓는다.

공중파 ‘9시 뉴스’를 장식하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하고 낮에는 마당의 풀을 뽑고, 한가롭게 산길을 걸었다. 종일 찻물만 마시며 몸속에 쌓인 독소를 뽑아내니 불평과 근심은 줄어든 대신 한가로움은 두터워졌다. 통장 잔고는 준 대신에 마음에 감미로움은 많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벗들은 물과 모란과 뻐꾹새를 벗 삼아 한거를 즐기는 동안 내 뾰족하던 인격은 두루 원만해지고 눈빛은 다정해졌다고 말한다.’

시인이 책에 쓴 것처럼 지금은 누구보다 평화롭지만, 이곳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바쁜 도시의 삶을 살았다. 1979년 2대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자 출판사 고려원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고려원 편집부장을 거쳐 1981년 아예 도서출판 ‘청하’를 설립했다. 시인이 직접 쓴 헤르만 헤세의 ‘잠언록’ 등 베스트셀러가 심심찮게 나오면서 출판사는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1987년엔 제대로 ‘사고’를 쳤다. 서정윤 시인의 시집 ‘홀로서기’가 대박이 났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이렇게 이어지는 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념시가 주축을 이루던 시단에서 ‘홀로서기’는 서정시 열풍을 일으키며 시집으로는 유례없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1, 2권 합쳐 200만부 가까이 팔렸다. ‘홀로서기’가 사람들을 울린 덕분에 출판사 사장인 그는 서울 강남에 5층짜리 빌딩을 샀다. ‘때가 되면 물이 보이는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는 생각으로 땅도 샀다. 그 땅이 지금 ‘수졸재’와 ‘호접몽’이 있는 곳이다. 23년 전 3.3㎡당 8만원에 샀던 땅은 그 새 10배가 올랐다.

1992년에 진짜 ‘사고’가 터졌다.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이다. 청하에서 펴낸 ‘즐거운 사라’는 노골적 성 묘사를 이유로 외설 시비와 함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저자인 마광수와 출판사 대표인 장석주는 나란히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TV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문인들이 성명서를 내는 등 떠들썩했지요. 덕분에 난 공중파 9시 뉴스에까지 등장했어요.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로 마광수 교수와 함께 구속돼 61일을 살다가 나왔어요. 출판업을 그만둬야 할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지요.”

시인은 구속에 대한 억울함보다 출판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에 절망했다. 14년 동안 500여권의 책을 펴내며 문학출판 시대를 이끌었던 ‘청하’의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강남의 빌딩도 팔고 205㎡(62평)짜리 빌라도 팔았어요. 수십억원으로 인쇄소, 제본업자 등 거래처 돈을 모두 갚고 나니 수중에 전셋값 정도만 남더라고요.”

1993년이었다. 다시 전업작가로 돌아갔다. 7년간 꼼짝 않고 들어앉아 ‘21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이라는 원고지 2만장 분량의 5권짜리 책을 집필했다. 1900년부터 100년간의 한국 문학사와 한국인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노자와 장자를 만나다

소문난 독서광인 장석주 시인의 집필실에는 2만여권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소문난 독서광인 장석주 시인의 집필실에는 2만여권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숙제를 마친 듯 대작을 털고 난 시인은 2000년 홀로 안성으로 내려왔다. 생각과는 달리 막상 부딪친 ‘느림’은 여유가 아닌 막막함, 외로움, 두려움이었다. “빵집이며 커피점이며 도시의 편의시설이 전혀 없잖아요. 세상 밖으로 혼자 떨어져 나온 느낌이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고 걷는 것밖에 없었어요.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호수의 물만 쳐다봤어요.” 적막한 시간에 몸이며 마음이 적응하기까지 1년여가 걸렸다. 그렇게 외로움과 물에서 건져낸 언어들은 ‘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년)라는 시집으로 묶여 나왔다.

분별없이 시끄럽던 마음이 가라앉자 ‘그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시인은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를 백 번은 족히 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비움’과 ‘느림’의 가르침에 끌렸다. ‘느림을 부정하는 것은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라는 걸 알았다. 노자, 장자와 함께 한 마음 여행의 결과물은 ‘장석주의 장자 읽기’ ‘그 많은 느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등 책으로 묶여졌다.

장자와 노자를 읽으며 비워낸 마음에 풀과 나무가 들어오고, 물과 바람이 들어왔다. “안성 장날에 나가 사온 모란과 작약이 한 뼘씩 자라고 꽃망울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한 뼘씩 자라는 것을 느꼈어요. ‘아, 이게 사는 맛이구나’ 하고 나무와 꽃들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집 마당엔 없는 나무가 없다. 앵두나무, 배나무, 단풍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 해당화, 영산홍…. 시인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자, 자연이 시인의 시 속으로 들어왔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시인의 야심작 ‘연못’에는 잉어와 미꾸라지가 살고 있다. 6월쯤이면 수련으로 덮인다.
시인의 야심작 ‘연못’에는 잉어와 미꾸라지가 살고 있다. 6월쯤이면 수련으로 덮인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낯익은 글귀일 것이다. 2년 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건물 외벽에 내걸렸던 시다. 시인이 2005년 펴낸 ‘붉디 붉은 호랑이’라는 시집에 실린 ‘대추 한 알’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2011년 새로 바뀐 중학교 2학년 교과서(창비)에도 실렸다.

시인의 마음 밭에 뿌린 씨는 이제 열매를 맺었다. 이런저런 강연 요청도 많고 출판사들도 앞다퉈 그를 찾는다. 잡지며 신문에 글을 쓰고 받은 원고료에 인세까지 상당하다. 줄어들었던 통장 잔고는 다시 넉넉해졌다. 시인은 “성실하게 일해서 전업작가도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다는 것을 후배 시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전 시인을 막막하게 만들었던 자연은 시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호접몽’ 옆에 있는 밤나무 숲은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찰랑찰랑한 호수는 시인의 마음에 상상력을 불어넣고 더불어 주머니도 풍요롭게 한다. 텃밭에서 자라는 야채들은 시인의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 이제 시인은 말한다. “더는 인생이 덧없다 하지 마라. 쏜살같이 지나가는 덧없는 것들…이라고 죄 없는 인생을 갖고 험담하지 마시라. 생명으로 가득 찬 이 지구별에서 산다는 것은 나날이 기적이다.”

시인은 얼마 전 닭장을 만들었다.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에 깨고, 닭이 방금 품은 따뜻한 계란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 위에 올리고 싶어서다. 이곳에 내려오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장닭 소리에 잠이 깬 시인이 ‘호접몽’에서 전해줄 다음 메시지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호접몽’ 창밖, 금광호수 위로 백로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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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대우 /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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