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스티븐 엘럽 CEO가 지난 6월 21일 싱가포르에서 노키아가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미고(Meego)를 장착한 N9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AP · 뉴시스
노키아의 스티븐 엘럽 CEO가 지난 6월 21일 싱가포르에서 노키아가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미고(Meego)를 장착한 N9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AP · 뉴시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 세계는 노키아의 성공 비결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왜 노키아가 추락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2007년 6월 29일, 애플이 아이폰을 최초로 출시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대외적으로 노키아는 아이폰 출시에 대해 “우리가 시장의 표준이며 아이폰은 기능이 단순하다”며 코웃음을 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대내적으로는 미국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던 날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노키아 본사에 몇 대의 아이폰이 즉각 배달되었고 노키아 지도부는 비밀 그룹을 조직, 아이폰을 해체하고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남편 역시 노키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그날 노키아가 접한 ‘아이폰 충격’의 실상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날 노키아 중역 한 명은 아이폰을 집으로 가져갔다. 집에서 아빠가 신기하게 생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자 네 살밖에 안된 그의 딸도 아이폰에 급격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이폰을 딸도 만져볼 수 있도록 건네주었고, 그 딸은 몇 번 눌러보지도 않았지만 곧 아이폰의 사용법을 익혔다. 밤이 깊어 잠잘 시간이 되었을 때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 아빠의 침실 문 앞에 서서 그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이 ‘요술 휴대전화’를 베개 밑에 넣고 자도 돼요?”

바로 이 순간, 그 노키아 중역은 자신의 회사가 앞으로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스마트폰 점유율 급감

노키아 내부에서는 이 아이폰에 맞설 새로운 스마트폰 개발팀이 즉시 만들어졌고 이들은 철저한 보안 경비 속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의 임무는 물론 노키아 스마트폰의 심장 역할을 할 완벽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운영체제에는 미고(Meego)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연구 개발팀은 여러 번 난항을 맞이하게 되었고 연구를 몇 번이나 시작점으로 되돌려야만 했다. 결국 이 새로운 운영체제는 예정된 시간에 완성되지 못했다.

필자가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인 6월 21일, 싱가포르에서 노키아의 첫 번째 ‘미고’ 스마트폰인 N9 모델이 최초로 공개됐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노키아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미고폰이 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지난 2월 스티븐 엘럽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노키아폰의 운영체제로 기존의 심비안과 개발 중이었던 미고를 철회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를 택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노키아 145년 역사상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로 영입된 스티븐 엘럽이 뒤늦게 노키아만의 표준이 아닌 글로벌 표준에 맞춘 스마트폰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뒤늦은 결정으로 보인다.

윈도폰을 출시하겠다는 노키아 CEO의 야심찬 발표는 노키아의 쇠락하는 운명을 되돌리려는 돌파구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발표 후 노키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심비안 운영체제를 장착한 노키아 휴대전화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2011년 1분기 노키아의 세계 휴대전화 점유율은 20%대로 떨어지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노키아는 1억756만대의 휴대전화를 팔아 시장점유율 25%를 기록했다. 작년의 시장점유율 31%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2008년 40%를 차지하던 스마트폰시장 점유율 역시 24%로 굴러떨어졌다.

삼성전자 노키아 인수설?

노키아 몰락의 주범으로 꼽히는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전 CEO. ⓒphoto AP
노키아 몰락의 주범으로 꼽히는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전 CEO. ⓒphoto AP

노키아의 추락과 위기는 지난 6월 9일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와 스탠더드&푸어스(S&P)가 노키아 신용등급을 정크(투기등급) 바로 위 등급인 ‘BBB-’로 2계단 내리고, 전망 역시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 이즈음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전자의 노키아 인수설(說)을 급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인수해서 얻을 것이 없다”며 노키아 인수설을 적극 부인했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노키아 인수설이 떠돌자 삼성전자의 주가가 잠시 하락하기까지 했다. 노키아의 찬란했던 ‘영광’은 매물로 나와도 살 가치가 없다는 ‘치욕’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필자가 사는 핀란드 국민에게는 엄청난 쇼크일 수밖에 없다. ‘노키아랜드(노키아의 나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노키아는 한때 핀란드의 모든 것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4%, 국가 전체 연구개발의 35%, 법인세 세수의 22%를 차지하던 수퍼 국민기업이었다. 노키아가 이룩한 그간의 성취도 핀란드의 자랑이었다. 노키아는 1991년 세계 최초로 유럽식(GSM) 디지털 이동통신을 상용화했고, 한때 휴대폰 세계시장 점유율 40%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4만2000건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무료로 공개해 세계 모바일 시장을 앞장서 개척해 왔다. 5달러 이하의 초저가 휴대폰을 만들어 인도와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에게도 모바일 혜택을 선사한 존경받는 글로벌 상생기업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만, 애플이 대명사처럼 돼 있는 스마트폰도 효시는 노키아였다. 1996년 노키아가 발표한 노키아9000시리즈가 스마트폰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핀란드인들로서는 천년만년 지속될 것 같던 이런 수퍼 모범 기업의 추락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왜 노키아가 ‘모키아’가 됐나

핀란드의 대표적 종합일간지 ‘헬싱긴사노맛지’는 이미 지난해 10월 특집기사로 노키아 몰락의 원인을 집중 조명했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왜 Nokia가 Mokia가 되었는가’였다. 핀란드어로 ‘Mokia’는 ‘실수투성이’라는 뜻이다.

이 기사는 노키아 핀란드 살로공장에서 25년간 일한 후 은퇴한 전직 노동자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CEO(최고경영자)직을 맡았던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를 노키아 쇠락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는 “그 전 회장이었던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는 공장을 방문할 때도 허물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며 공장 근로자들 또한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었다”며 “올릴라 회장은 온화하면서도 사람과 회사를 하나로 집결시켰던 온화한 카리스마를 지녔었다”고 회상했다. 실제 노키아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요르마 올릴라는 핀란드에서 대통령보다 더 인기와 존경을 누리며 대통령 후보로도 여러 차례 거론된 인물이다. 그러나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부임 후 노키아의 분위기는 “딱딱하고 관료적으로 변해갔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이 이 전직 노동자의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노키아의 쇠락이 단지 한 개인의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결론은 잘못된 것이라며 좀 더 개연성 있는 원인을 찾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 전 노키아 개발팀 책임자를 인터뷰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990년대 노키아는 1년에 두 개의 모델 정도만 집중적으로 개발하였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때 만든 노키아 제품은 모두 히트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한 해에 개발하는 모델이 40~50개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하나의 모델을 총체적으로 맡는 조직 운영이 불가능하게 되어 휴대전화 부품별로 팀이 재구성되었다. 이로부터 노키아폰은 모델의 개발 초기 단계부터 ‘총체적 관점’을 잃어버리고 집중성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소비자가 과연 뭘 원하는가라는 소비자 위주의 상품 개발 관점도 집중성의 상실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 개발팀 책임자의 주장이었다.

1년에 40~50개 모델… 선택과 집중이 없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노키아에서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한 중역도 이 기사에서 “휴대전화는 세탁기 혹은 냉장고와는 다르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휴대전화는 다른 전자제품과 다르게 소비자들이 감성을 투영시키며 유대관계를 맺어나가는 대상이기 때문에 개발자가 가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델 수가 늘어나고 작업이 지나치게 분업화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노키아 휴대전화에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인간적인 면들이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이전에도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1980년대 말 제지(製紙)·고무·전선·컴퓨터·TV·무선통신 등 닥치는 대로 사업을 확장해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으로 최고경영자가 자살하는 사태까지 겪었다. 그 뒤 노키아는 주력 사업을 모두 매각하고 휴대전화 하나에만 집중한다는 큰 결단을 내렸다. 이 결단은 결과적으로 노키아를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업으로 등극시켰으며 핀란드 경제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신화도 이루어냈다. 하지만 이들이 집중했던 ‘하나’의 휴대전화 산업은 자가증식을 통해 50여개의 휴대전화 모델 개발로 확장하게 됐고 결국 노키아는 아이폰이라는 모델 하나에 집중한 애플사에 50 대 1의 수적 강세에도 불구, 참패하게 된다.

늘어난 것은 모델 수만이 아니다. 노키아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 특히 중간 관리층과 고위 중역층의 수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현재 노키아에는 부회장(vice president)이나 시니어 부회장(senior vice president)급만 300명이 넘는다.

이런 방만한 조직에서는 연구 개발자들의 아이디어나 의견이 실제 결정권을 가진 중역에게 전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일쑤다. 때로는 전달되지도 못한 채 중간 관리층에서 아이디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잦다. 일의 효율성을 자랑하던 노키아도 어느새 거대한 공룡 같은 조직이 돼버린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고 4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노키아는 비슷한 스펙의 스마트폰을 여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노키아 애국심’이란 단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노키아를 사랑했던 핀란드 사람들조차도 “노키아 스마트폰은 노키아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정도로 ‘스마트’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불편한 전화”라고 대놓고 불평하고 있다. 많은 핀란드 사람들 역시 노키아가 우수한 스마트폰 개발에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로 관료주의를 지목하고 있다.

핀란드인, 노키아를 다시 보다

노키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요르마 올릴라 전 CEO. ⓒphoto AFP
노키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요르마 올릴라 전 CEO. ⓒphoto AFP

현재 핀란드 사람들은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핀란드 국내 언론보도를 접하다 보면 안타까움, 여전히 재기를 원하는 희망, 혹은 추락하는 국민기업에 대한 원망 등 핀란드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최근 한 기사에는 심지어 “노키아사가 핀란드에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봉사는 조용히 망하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는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조켐(Zokem)의 발표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이용한 다양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사용에서 핀란드가 다른 나라에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미국에는 심지어 2년 정도 뒤떨어진다. 그 이유는 바로 핀란드 사람들이 노키아 스마트폰의 조악함으로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 이용에 친숙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노키아 스마트폰의 한계는 핀란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개발 산업의 성장도 방해했다”면서 노키아사를 맹비난했다.

이 기사는 결론적으로 “요즘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핀란드 로비오사의 모바일 게임 ‘앵그리 버드’는 핀란드 회사임에도 노키아 스마트폰이 아닌 애플 아이폰에 처음으로 선보였다”면서 “핀란드 IT업체들은 이제 노키아에 의존하지 말고 세계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맹목적이었던 노키아 애국심에서 하나둘씩 빠져나와 보다 객관적으로 노키아를 보기 시작했다. 현재 이들의 노키아에 대한 전망은 대체적으로 “윈도폰이 출시될 경우 현재보다 사정이 나아질 수는 있지만, 옛날의 영화를 되찾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서야 자조적으로 얘기한다. “노키아는 너무 컸고 핀란드는 너무 작았다”고.

이보영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 핀란드 투르크 대학원 동아시아학 석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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