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음반서 들은 악기 소리가 인생 바꿔
기숙사에서 밤낮으로 연습하다 경고조치까지
전문가 찾아 일본으로 아르헨티나로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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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온 유럽인들은 노동의 고단함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탱고 선율로 달랬다. 어둡고 습기 가득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지구 선술집에서 그들은 강렬하고도 호소력 짙은 탱고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시름을 잊었다. 이들의 마음을 울리던 4분의2박자 탱고 선율을 자아내던 독특한 악기가 있다. 아코디언같이 생겼지만 훨씬 몸집이 작은 손풍금, 즉 반도네온이다.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탱고 작곡가인 피아졸라는 이 악기의 음색에 대해 “굉장히 극적이고 아주 슬프면서 벨벳처럼 부드럽다”고 표현한 바 있다. 1830년대 독일에서 만들어져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반도네온은 탱고 선율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악기지만 아코디언보다 연주법이 복잡해 매번 같은 음색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네모난 긴 주름상자 모양을 하고 있는 반도네온은 오른손 쪽에는 고음부를 이루는 38개의 건반이, 왼손 쪽에 저음부의 33개의 건반이 있고 모두 142음을 낼 수 있다.

소리만큼이나 이국적인 악기인 반도네온이 요즘 들어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즈 멤버인 가인은 작년 10월 선보인 첫 솔로앨범 ‘step 2/4’에서 반도네온 반주에 맞춰 탱고풍의 노래 ‘돌이킬 수 없는’을 불렀다. 당시 음반을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반도네온은 지난 5월 방송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무대에도 등장했다. 아코디언의 거장으로 꼽히는 심성락씨의 아코디언 연주 무대에 반도네온이 협주를 한 것이다. 가인의 앨범이나 심성락씨의 무대에선 모두 같은 여성이 반도네온을 연주했다. 국내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로 꼽히는 고상지(29)씨다.

카이스트 학생에서 떠돌이 악사로

반도네온을 배우기 위해 일본과 아르헨티나에서 유학한 고씨는 국내에서 반도네온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연주자로 꼽힌다. 최근 반도네온이 주목을 받으면서 반도네온의 독특한 음색에 반한 가수들의 공동작업 요청이 늘고 있고, 개인 연주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 가수 김동률, 이적, 가인 등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고씨는 현재 아르헨티나 교민 출신 피아니스트 조윤성씨와 함께 9월에 발매될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고씨는 10대 후반과 20대를 그야말로 반도네온에 미쳐서 지냈다. 그가 반도네온 소리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소니뮤직에서 나온 탱고 모음집 음반을 통해서였다. 반도네온의 독특한 음색을 기억하고 있던 그는 반도네온 소리를 처음 들은 지 6년 뒤인 2005년 드디어 반도네온을 샀다. 지금도 그렇지만 반도네온이라는 악기 자체는 국내에서 구입하기조차 쉽지 않다. 국내에 수입돼 있는 반도네온이 몇 대 없고 그것도 대부분 중고품이다. 중고시장에서는 대당 250만에서 최고 1000만원에 거래가 된다. 고씨 역시 아르헨티나에 사는 친지에게 부탁해 상당한 금액을 주고 반도네온을 구입했다.

반도네온을 샀을 때 그는 카이스트 2학년생이었다. 반도네온은 이공학도인 그의 인생 진로를 바꾸어버렸다. 그는 반도네온을 구입한 후 밤낮으로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혼자 연주법을 익혔다. 밤낮없이 울려퍼지는 반도네온의 소리 때문에 그는 기숙사에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결국 그는 반도네온을 혼자 연습한 지 두 달 만에 반도네온 연습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부터 자유로워지겠노라며 카이스트를 박차고 나왔다. 카이스트에 입학한 지 4년 만이었다.

이후 그는 독학으로 반도네온을 익혀 홍대 앞 무대에 섰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는데, 그냥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홍대 앞 춤추는 데서 공연을 했어요.”

첫 스승 고마치로타를 만나다

떠돌이 악사 비슷하게 지내던 그가 진짜 반도네온의 세계에 들어선 것은 첫 스승인 일본인 고마치로타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이 만남 역시 우연이었다. 홍대 앞에서 그의 연주를 듣던 한 일본인이 일본의 유명한 반도네온 연주자인 고마치로타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 고마치로타의 팬인 그는 반도네온에 대한 고씨의 열정을 소개하며 고마치로타에게 응원 메시지를 부탁했다. “선생님은 ‘내가 왜 보내야 해’라고 생각하시면서도 결국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셨어요. 그때까지 선생님도 제가 외국인 첫 제자가 될 줄은 모르셨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2006년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발전했다. 고씨는 일본에서의 생활비 조달이 어려워 3개월 동안 한국에서 돈을 모으면 2주 동안 일본에 가서 배우는 식으로 양국을 오가며 반도네온을 익혔다. 그러기를 3년6개월. 이제야 제대로 된 ‘기본기’를 익힌 그는 아예 반도네온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로 날아갈 결심을 했고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에밀리오 발카르세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Orquesta Escuela de Tango Emilio Balcarce)를 찾아갔다.

“학교 오디션 날짜에 맞춰서 아르헨티나에 갔어요. 떨어져도 (아르헨티나) 어디선가 레슨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한국을 떠났어요.”

그는 5명을 선발하는 오디션에서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한국인으로서 첫 입학생이 됐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탱고가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각성과 함께 일어난 아르헨티나 탱고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탱고 교육기관. 2년간의 커리큘럼은 우리나라 음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처음 1년은 1950~1960년대를 대표하던 10여개의 탱고악단을 재연하는 연습을 한다. 과목명도 악단 이름이다. 그리고 2년차에는 생존하는 80~90세의 악단 단원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들이 자신이 속했던 오케스트라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똑같이 재연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처음부터 오디션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의 후원을 받아 무상으로 교육을 받으며 각종 페스티벌에서 잦은 공연 기회가 주어진다.

아르헨티나 탱고학교 한국인 첫 입학

그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에 대해 “정말 최고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가) 무섭고 언어장벽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존경하는 마에스트로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고씨가 반도네온을 연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탱고보다는 아무래도 유럽 탱고 쪽을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반도네온의 희소성도 그렇지만 일단 한국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연주하는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이 저를 힘들게 했죠.”

실제 고상지씨는 하루 연습시간 외에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알리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탱고를 직접 편곡하여 악보를 연주자들에게 나눠 주고 있으며, 기회가 닿는 대로 가능한 많은 무대에 서서 반도네온을 들려주려고 하고 있다.

고씨는 반도네온의 희소성 때문에 덕도 보고 있지만 힘든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너무 이른 시기에 ‘유일’ ‘최고’라는 말로 주목을 받는 것 같아요. 같이 연주하시는 분들은 정말 최고의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창피합니다.”

고씨는 “다른 악기에 비해 반도네온의 앙칼지고 공격적이고 콱 찌르는 느낌이 너무 좋다”며 “앞으로 더 많이 연습해 내 반도네온 연주로 아르헨티나 탱고가 한국에 더 많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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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하 인턴기자·고려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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