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미군기지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기지촌이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고도제한으로 낮은 건물들, 10년 전 코리아타운을 연상케하는 오래된 술집, 카바레… 기지촌은 미군들의 ‘욕망의 창구’이죠. 이곳에선 밖에 알려지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미군이란 특수성으로 인해 적법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죠. 한국 땅이지만 한국인이 보호받지 못하는 곳이 바로 기지촌입니다.”

주한미군의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 출간됐다. 이재익(36) 작가의 ‘아이린’이다. 이 작가는 ‘노란 잠수함’(2001)을 통해 이미 이 주제를 다룬 바 있다. 이 작가는 이번 소설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더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이 작가는 “카투사란 건 희한한 존재”라며 “극과 극이 공존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카투사 근무자들 중엔 이른바 명문대생들이 가득합니다. 말 그대로 미군 지원부대지만 카투사 중엔 어학연수한다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반면 용병제인 미군들 가운덴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 작가는 1996년 카투사로 군복무했다. 그가 카투사로 근무하는 동안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소설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6월 15일 이재익 작가를 만난 곳은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SBS방송국이었다. 그는 작가보다 PD로 더 잘 알려져 있다. SBS 간판 라디오프로그램 ‘두시 탈출 컬투쇼’(진행 정찬우·김태균)의 연출을 맡고 있다. 지난해 청취율 18%대를 기록해 ‘TV보다 시청률 높은 라디오’로 알려지기도 했다.

소설책만 7권 펴낸 중견 작가

방송국 1층에서 만난 그는 영락없는 ‘이 PD’였다. 짧게 자른 ‘모히칸’ 머리 모양에 청바지 차림의 이 PD는 “작가들과 라디오에서 소개할 사연을 선정하고 프로그램 구성회의를 하다 잠깐 나왔다”며 ‘컬투쇼’ 스튜디오로 안내했다. 방송시간이 4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컬투쇼 전용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보이는 라디오’(라디오 녹화 과정을 인터넷이나 TV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는 것)에서 익히 봐온 풍경이 펼쳐졌다. 컬투 캐릭터들과 진행자 정찬우씨의 상징인 거꾸로 앉는 의자, 20여개의 방청용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오후 2시 방송 직전까지 오전 내내 청취자 분들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고 그중에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것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라디오 PD라고 한가할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한번이라도 이 프로그램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쓴 소설과 다소 괴리감을 느낄 법도 하다. 둘 사이에 ‘접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자 역시 처음엔 그 괴리에 흥미를 느꼈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쉴 새 없이 (웃음이) 빵빵 터지고 개그 본능에 충실한 그를 상상했다.

그러나 이 PD는 진지했다. 그의 작품 ‘아이린’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뭐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구원’이란 화두를 꺼내들었다. 이 PD는 “복지가 소외된 사람에 대한 사회제도로서의 구원이라면, 남녀 간의 사랑과 우정은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또 다른 차원의 구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기지촌에서 몸을 팔았던 정태와 그런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혼혈인 아이린의 관계는 그들 각각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을 넘나들며 서로를 보듬어줍니다. 이런 ‘넘나듦’이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울타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친구가 몰래 문학사상에 접수해 등단

이 PD는 카투사로 복무 중이던 1997년 문학사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그가 생일선물로 줬던 소설을 여자친구가 그 몰래 응모작으로 냈다. 22살의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 재학생이었다. 이 PD는 “등단할 생각은 못했지만 그전부터 소설을 써왔고 언젠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 PD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소설가의 사회적 위상이 지금처럼 낮진 않았습니다. 여자한테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벌었죠. 전 이런 지극히 세속적인 이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었죠.”

이 PD는 시나리오 작가로도 데뷔를 했다. 1998년에 출간한 ‘질주질주질주’란 작품을 각색한 영화 ‘질주’(감독 이상인·1999)가 첫 작품이다. 그후로 ‘목포는 항구다’(감독 김지훈·2004), ‘원더풀 라디오’(감독 권칠인·2011 예정) 등 시나리오 작업을 꾸준히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펴낸 소설만 일곱 권이다. PD,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인 셈이다.

“글을 쓸 때면 빠져드는 편이라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진 못해요. 프로그램 만들 때나 글 쓸 때나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노력형입니다. 관심사가 생기면 이것저것 뒤져보고 찾아보고 다니죠.” 카투사 시절에도 기지촌 여성 재활을 돕는 단체에 가서 직접 보도자료를 얻어오기도 하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자료를 스크랩하기도 했다.

이 PD가 소설을 쓰는 시간은 오후 4시에 라디오 생방송이 끝나고 저녁쯤 퇴근하고부터다. “골프나 주식투자와 같이 또래의 친구들이 하는 취미생활 대신 작품을 구상하고 책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는 “요즘 가장 골몰하는 일은 연재소설 ‘아버지의 길’ 작업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길’은 올 3월부터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도서에 연재를 시작했다. 영화 ‘마이웨이’(감독 강제규·2011 예정)의 소재로도 유명한 ‘노르망디 한국인’의 이야기다. ‘노르망디 한국인’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독일군 소속의 한국인 포로 이야기다.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에 의해 독일군 포로로 잡힌 한국인 병사 양경종씨(1920년 3월 3일생)는 통역을 통해 한국인으로 판명됐었다.

인터넷 인터파크 도서에도 연재

양씨가 미 육군 정보부대에 직접 진술한 바에 따르면,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1938년 일본군에 징집, 관동군 사령부 소속부대 전투병으로 1939년 노몬한전투에 투입되었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됐다. 그는 다시 1941년 소비에트 붉은군대 소속으로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고 그후 독일군에 배속되어 노르망디 해안선 방어병으로 전투에 투입됐다. 연합군에 의해 잡힌 그는 영국 포로수용소로 보내졌으나 곧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시민으로 살다 1992년 세상을 떠났다.

이 PD는 이 노르망디 한국인의 제한적으로 알려진 행적에 상상력을 가미했다. 이 PD의 소설 속 양씨는 한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로 일제에 의해 강제징병된 이후 아들에게 돌아가고자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내용이다. 속필로 알려진 그지만 자료조사의 벽에 부딪혔다. “전쟁은 인간 내면의 성향을 극대화해 드러내는 장이기 때문에 전쟁의 일면을 들춰보면 인간 군상이 보입니다. 앞으로 독일군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나날들을 그릴 계획인데 전쟁 자료들을 보니 너무 참혹해서 이번엔 (완성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키워드

#피플
김경민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