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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5호] 2011.07.18

한진重 사태의 불편한 진실

정장열  차장 

노사합의 가닥 잡힐 때 고공투쟁 시작
‘제3자의 투쟁’에 곤혹스러운 시선
구조조정 대상 400명 중 300여명 이미 퇴직, 명퇴자 최대 2억 받아… “대부분 재취업”
작년 174억 현금 배당? “돈 없어 주식 배당”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농성 중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부산 영도구 봉래동 5가 29번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1937년 일제가 병참기지로 건설한 국내 최고(最古)의 조선소에 요즘 전운(戰雲)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진중공업 노조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6개월 넘게 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이면서 이곳은 우리 사회의 정반대 가치와 논리들이 정면 충돌하는 ‘폴트라인(Fault Line·지진 유발 단층선)’이 됐다. 자본과 노동, 시장과 인권, 이성과 감성, 보수와 진보가 날선 상태에서 맞부딪치는 현장이다.
   
   지난 7월 12일 오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자동차가 영도 로터리를 지나 조선소로 다가서자 김진숙씨가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이 멀리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크레인은 한진중공업 담장 안쪽에 붙어 있어 조선소 밖 대로에서도 담 너머로 불쑥 솟아오른 모습이었다. 김진숙 위원이 농성 중인 크레인 조종석이 35m 고공에 있다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높아 보이지 않았다.
   
   김씨가 지난 1월 6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은 85톤의 중량을 들 수 있다는 뜻에서 ‘85’라는 숫자가 붙었다. 최대 100톤의 중량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등에 있는 1000톤짜리 골리앗 크레인에 비하면 무척 작은 규모다. 한진중공업에는 이 같은 크기의 크레인만 모두 6대가 있다. 김씨가 고공 농성 중인 85호 크레인은 2003년 파업 투쟁을 벌인 김주익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 지회장(노조위원장에 해당)이 고공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매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소 안은 상처투성이였다. 지난 6월 27일 극적으로 노사가 합의해 노조원들의 작업 현장 복귀가 이뤄졌지만 아직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굳게 닫힌 정문 안쪽에서는 정문 보강 공사가 한창이었다. 6월 12일 1차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에게 정문이 ‘뚫린’ 후 내려진 조치라고 한다. 대로와 인접한 본관 출입구도 만신창이의 회사 버스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버스 유리창을 비롯해 조선소 내부 건물 유리창 상당수가 부서져 있었고, 본관 2층 노무담당실은 나무 문짝이 여기저기 부서져 너덜거리는 상태였다. 작년 12월 20일부터 6개월 이상 진행된 총파업이 남긴 상흔이었다.
   
   한진중공업의 3개 도크 중 선박 조립 작업이 주로 이뤄지는 3, 4도크는 텅 비어 있었다. 안내를 하던 기업문화실 김재현 과장은 “텅 빈 도크만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6월 27일 노사 합의 타결 후 3년 만에 6척의 신규 수주가 이뤄졌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도크에서 신규 수주 선박 조립 작업이 이뤄지려면 내년 초나 돼야 가능하다고 한다. 설계 등 작업 준비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재 도크에서 조립 작업을 마친 3척의 탱크선과 1척의 다이빙선이 안벽(선박 계류시설)에 정박된 채 마무리 작업 중이지만, 작년 141일간의 파업을 치르며 약속한 인도 기간을 넘겨 선주에게 패널티를 무는 게 불가피하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에는 당초 모두 4개의 도크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1번 도크’는 오래되고 협소해 야적장으로 쓰기 위해 메워버렸고, 2번 도크는 해군 함정의 수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진숙씨가 농성 중인 85호 크레인 주변도 야적장을 정리하는 지게차들이 오가는 등 조업 재개 분위기가 느껴졌다. 85호 크레인을 올려다보니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크레인 몸통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팔랑개비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김진숙씨가 조종실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는 게 언뜻 보였지만 얼굴을 분간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크레인 아래에는 119 구조대와 차량이 유사시를 대비해 대기 중에 있었다.
   
   35m 고공에서 6개월을 버틴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의지다. 김씨는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3.3㎡(1평) 남짓한 공간에서 견뎌내는 중이다. 김씨에겐 아래서 올려보내는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외부와 연락을 취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다. 그의 생활은 딱히 달라지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김씨는 지난 6월 5일 사단법인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7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만장일치로 김씨를 수상자로 결정한 심사위원들은 “노동운동의 탄압 도구로 전락한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김씨가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전국의 노동자와 민중의 희망으로 우뚝 서 있다”고 평했다.
   
   회사 측으로서도 김씨는 이제 함부로 끌어내리기 힘든 존재가 돼 버렸다. 얼마 전 용역 직원들이 크레인 밑에 그물망을 치려 했지만 김씨가 강제 진압 준비로 간주해 “뛰어내리겠다”고 해서 무산됐다. 한 회사 관계자는 “트위터에 회사가 밥을 올려보내는 걸 막았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노조에서 먹을거리를 대주고 김씨와 같은 민주노총 부산지역 본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 황모씨가 밥을 해 물, 책 등과 함께 올려보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종실에 들어오던 전기를 끊은 것에 대해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끊은 것 같다”고 주장하지만 회사 측의 설명은 다르다. 크레인에 들어오던 전기는 본래 노조원들이 외부에서 끌어다 준 도전(盜電)으로, 철제로 된 크레인에 전기를 끌어올 경우 감전사고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끊었다고 했다.
   
   85호 크레인에는 7월 12일 현재 김진숙씨 외에도 4명의 농성자들이 더 올라가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구 정홍형 조직국장과 정리해고자로 보이는 3명이 김진숙씨가 농성 중인 조종실 10m 아래쯤의 공간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정홍형씨를 제외한 3인이 정리해고자인지 외부인인지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지난 6월 27일 노사 합의가 타결되자 이에 반발하며 크레인으로 올라갔던 40여명 중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다. 회사 측은 정홍형씨의 경우 작년 말부터의 파업 투쟁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로 보고 있다. 크레인을 올려다보니 이들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얼굴로 크레인 아래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회사 노무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자꾸 너트 같은 것들을 던져 85호 크레인 주변에서 야적장 정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느낀다”며 “작업자의 불만이 높아 위에 보호 철망을 깐 지게차까지 고안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농성 중인 85호 크레인은 이미 조업 재개가 이뤄진 한진중공업 내부에서 바라보면 어색한 이방 지대다. 노사 합의에 반대하며 무조건적인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노조의 시선에도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한 노조원에게 이들의 투쟁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다치지 말고 내려와야 할 텐데…”라며 말을 아꼈다. 6·27 노사 합의에 대해 민주노총 등 상급 단체가 잘못된 결정이라는 식의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한진중공업 노조 관계자들은 민주노총 측도 이번 노사 합의에 대해 사전 동의하고 있었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다. 노사 협상 실무교섭을 이끌었던 최우영 노조 사무장은 지난 6월 2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애초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부산본부,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그리고 한진중공업지회로 꾸린 ‘공동투쟁본부’는 6월 30일까지 회사와 합의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6월 27일 부산지방법원이 회사 시설물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원들에 대한 강제 퇴거 결정을 내리면서 공권력 투입이 예고되자 6월 27일로 노사 합의를 앞당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수배 중이던 채길용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사측이 합의에 따라 고소·고발을 취하하자 지난 7월 12일 경찰에 자진출두하기도 했다.
   
   회사 일각에선 노조의 발 빠른 합의 결정이 7월 1일 복수노조 시행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관측도 나온다. 파업에서 이탈한 조합원 600여명은 파업 기간 동안 회사의 교육 명령에 따라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노조 집행부가 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 생산직·기술직 노조원 수는 1200명 선. 이 중 작년 12월 총파업에는 생산직 조합원 678명이 참여했지만 2월부터 이탈이 본격화돼 결국 마지막에는 노조 전임자와 대의원 등 100여명만 회사 시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 지난 1월 6일부터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photo 뉴시스
노조가 사측과 합의를 이룬 상황에서 김진숙씨 등 크레인 농성자들이 버틸 수 있는 동력은 조선소 담장 너머에서 나온다.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는 요즘도 출퇴근 시간에 맞춰 매일 40여명의 정리해고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해고자 중 희망자에 한해 정리해고 이전 회사에서 실시한 희망퇴직 처우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다’는 6·27 노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채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두 차례의 희망버스 응원부대가 김씨 등 고공 농성자들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 정리해고자의 수는 6·27 합의 이후 줄어들고 있다. 7월 12일 현재 노사 합의 당시 170명이던 정리해고자 중 73명은 희망퇴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에게는 노사 합의대로 퇴직금과 22개월치의 위로금이 건네졌다. 노무 담당 원광영 상무는 “많게는 2억원을 받아간 분들도 있다”며 “작년 12월 회사가 노조에 통보한 400명의 정리해고자 중 일찌감치 희망퇴직을 선택한 270명은 협력사 등에 대부분 재취업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현재 남아 있는 정리해고자 90여명 중에서도 결국 피켓시위를 벌이는 강경파 40여명만 빼곤 대부분 희망퇴직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회사 측은 당초 6월 말이던 희망퇴직 신청 기간도 연장해 놓고 있다. 김진숙씨 등 농성자들과 희망버스 응원부대의 입장에선 정리해고자가 줄어드는 것은 농성의 명분이 줄어드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회사 측은 김씨가 한진중공업과 아무 관계가 없는 “외부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1981년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다가 1985년 해고됐다. 이후 대한조선공사는 부도가 났고 1989년 진로그룹과 한진그룹이 인수전을 펼친 끝에 한진중공업이 탄생했다. 김씨는 1987년 대한조선공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됐고, 뒤늦게 2010년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복직 소송을 냈다가 자진 취하한 적이 있다. 해고 후 김씨는 부산노동자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3자 개입 금지 위반 혐의로 두 번 구속됐다.
   
   김씨는 왜 한진중공업의 하늘에서 극한 투쟁을 벌이는 걸까. 김씨는 고공 농성 중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아픔’을 강조한 바 있다. 김씨는 “지금 이걸(정리해고) 해결하지 않고 내려가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김주익과 곽재규를 땅에 묻고난 뒤 8년 동안 나는 하루도 죄책감에서 못 벗어났다. 그것을 다시 반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였던 곽재규씨 역시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매 자살한 2주 뒤 도크에서 투신자살했다.
   
   이런 과거사가 말해주듯 한진중공업은 민주노총의 핵심 강성 사업장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진중공업 노조는 10년 가까이 매년 파업투쟁을 벌였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으로 절정을 맞았던 노사분쟁은 이후 조선업이 호황을 맞으며 수그러들었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자 다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부산을 근거지로 20년간 노동운동을 벌여온 김씨가 고공 농성을 결행한 것은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인 한진중공업의 파업 열기를 되살리려는 결단이었다는 분석도 강하다. 김씨가 한진중공업 강성 노조원들의 도움으로 크레인 진입로의 쇠사슬을 끊고 고공으로 올라간 1월 6일은 노사 간 정리해고 협상이 물밑에서 가닥을 잡아가던 시점이었다. 한진중공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2009년부터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2009년에는 관리직 356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유니언숍 제도를 택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은 관리직 중에서도 사원 이하는 노조원이지만 2009년 관리직 구조조정 때는 노조가 큰 반발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측은 2010년 들어 생산직을 상대로도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노조에 400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후 작년 2월부터 희망퇴직 조건 등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회사가 당초 제시한 것은 월급 15개월치의 위로금이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회사는 2010년 12월 15일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조는 이에 맞서 12월 2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사의 물밑 협상은 계속됐다고 한다. 노조는 파업을 벌이는 동안에도 부산 주요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호소했고, 이 과정에서 노사는 다시 협상을 벌여 위로금 15개월을 22개월치로 상향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1월 6일 김진숙씨가 크레인으로 올라가면서 이런 협상 노력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정철상 한진중공업 기업문화팀 부장은 “정리해고는 상급 단체가 개입할 수 있는 임단협과 달리 전적으로 노사가 협의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민노총의 개입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회사 측의 구조조정은 과연 정당한 결정이었을까. 여기에도 한진중공업과 노동계의 인식은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와 야당은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은 ‘경영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수주를 못한 것은 경영진의 책임인데 이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책임전가라는 것이다. 특히 노사 합의 직후 3년 만에 6척의 신규 선박 수주 사실을 발표한 것은 정리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규 선박 수주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던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13일부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수주를 못 받아 경영상의 위기다, 그래서 정리해고 한다 했는데 6척 수주 받았잖나. 그러면 경영상의 위기가 아니지 않나.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한진중공업 조선 부문의 경영 현황이 수치상으로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2008년의 경우 2조173억여원의 매출에 3967억여원의 영업이익과 629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2009년에도 1조6145억원의 매출과 2502억여원의 영업이익, 51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2010년의 경우 매출이 1조943억원대로 떨어졌지만 영업이익 1497억원을 유지했다고 한다. 2010년의 경우 당기순손실 517억원을 기록했지만 이는 조선 부문과 함께 한진중공업을 구성하고 있는 건설 부문에서의 손실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실제 한진중공업은 2002년 서울 신문로 베르시움 오피스텔 시공업체로 참여했다가 시행사인 ‘보스코 산업’의 분양 실패와 대표 횡령 혐의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줬던 삼성생명 측으로부터 시공사가 책임을 지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지난 1월 고등법원으로부터 348억원과 이자 37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못 받은 공사비까지 포함하면 자기자본(2조813억원)의 5%에 해당하는 1043억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고를 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패할 경우 이자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단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작년에 이를 대손충당금으로 처리,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마무리 작업 중인 4척의 선박 중 하나. 인도 기일을 넘겨 패널티를 물어야 한다.

   회사는 경영 실패를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일단 3년간 수주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정철상 부장은 “영업 직원들이 매년 평균 200차례 견적서를 뽑는데 지난 3년간 한 번도 최종 계약에 성공한 적이 없다”며 “선주들 입장에서는 단가를 맞추고 납기를 지키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이 두 요소 모두 만족시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3년 만의 수주 성공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로 파업이 중단되고 납기 지연에 대한 우려가 없어지면서 외국으로부터 4척의 컨테이너선, 방위사업청으로부터 2척의 해군함을 수주했지만 아직 LOI(의향서)만 맺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에 전 세계 400여개의 조선소 중 270개가 단 한 척의 수주도 못할 정도로 세계 조선업계는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경영책임 운운하는 사람들한테는 ‘직접 나가서 수주해 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한진중공업은 가격 경쟁력을 급속히 잃고 있다고 한다. 6000TEU급 컨테이너선의 경우 현대, 대우, 삼성 등 이른바 빅 3는 5500만달러 선에 단가를 제시하지만 한진중공업은 6000만~6500만달러를 써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작년에 수주량 1위를 기록한 중국 조선소들은 5000만달러 이하로 가격을 후려치기 때문에 가격 경쟁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런 경쟁력 저하의 기본 원인으로 영도조선조의 ‘태생적 한계’를 꼽는다. 영도조선소의 부지는 26만4462㎡(8만평) 정도로 826만4462㎡(250만평)의 부지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이나 495만8677㎡(150만평)의 부지를 갖고 있는 대우, 삼성중공업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규모가 작다 보니 조립 부재를 쌓아 놓을 공간이 적고 도크 회전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영도조선소의 도크 길이는 230m에 불과해 현대중공업 도크(500m)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7000TEU 이상, 탱크선의 경우는 10만톤 이상만 되면 아예 건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철상 부장은 “대형 선박을 지어야 수지가 맞는데 이게 불가능하고 중소형 선박은 중국에 따라잡힌 샌드위치 신세”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이 불황에 빠질 경우 이런 태생적 한계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영도 대체 부지를 물색했지만 신규 부지 마련에 실패했다. 결국 2005년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조한 것도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고 한다. 수빅조선소는 세계 최대 규모인 길이 550m의 도크를 갖추고 있어 한진중공업이 염원하는 1만TEU급 이상 컨테이너선 건조가 가능하다. 특히 생산직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30만원에 불과해 중국과의 가격 경쟁도 가능하다고 한다.
   
   영도조선소의 경쟁력이 하락한 데는 노동생산성의 저하도 작용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주장이다. 영도조선소 근로자들은 과거 임단협 투쟁의 성취로 민주노총 사업장 중에서도 월등한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단적으로 휴일이 많다. 임단협 사항이라는 이유로 이미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된 식목일, 한글날, 제헌절, 국군의날을 다 쉰다. 대체휴일제로 실시하고 있어 3·1절이 일요일이면 다음 월요일은 무조건 쉰다. 파업 없이 정상적으로 일한 2008년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6000만원 선이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주장이다. 이러다 보니 ‘파업이 사라진 조선소’로 탈바꿈한 현대중공업과는 노동생산성이 거의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조선 부문의 실적이 좋았다는 노조의 주장도 사실과는 차이가 난다는 입장이다. 2009년과 2010년 한진중공업이 그나마 영업이익을 올린 것은 인천 영종도 땅 매각 대금 등 3000억원의 자산 매각 대금이 반영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를 제외하면 순수한 조선 부문의 영업실적은 적자라는 것이다. 한 회사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는 1000억원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 텅 빈 3도크.

   회사와 노조는 그동안 회사 경영 상태와 관련해 배당금을 둘러싸고도 언쟁을 벌였다. 회사가 어렵다면서 작년에 주주들이 174억원의 배당을 받아간 것은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게 노동계의 공격이었다. 이것은 한진중공업을 부도덕한 자본으로 몰아가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에 따르면, 작년 배당은 현금이 없어 주식배당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주주들의 보유 주식 기준 100주당 1주의 비율로 주식을 배당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의 전체 발행 주식은 4800만주로, 지주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회장 조남호)가 30%, 외국인이 25%, 국민연금 등 기관이 10% 정도의 비율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 소유 주식 비율은 0.58%인 28만주로, 조 회장은 이번 배당으로 2800주, 주당 3만원으로 계산할 경우 8400만원 정도의 배당을 챙겼을 뿐이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작년에 52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지만, 이 역시 계열사 중 한진중공업이 아니라 도시가스 업체인 대륜E&S와 한국종합기술의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진중공업 사측을 몰아세운 가장 중요한 공격 포인트는 영도조선소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장기 비전과 관련한 것이었다.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것이 결국 영도조선소의 문을 닫고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조선사업 전체를 이전하려는 음모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26만4462㎡(8만평)에 이르는 조선소 부지에 결국 아파트를 지을 것이다” “영도조선소 부지를 부산 연고의 롯데그룹에 팔기로 했다”는 등의 소문도 나돌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영도조선소 포기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영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경우 임금 등 가격과 규모의 경쟁력은 갖추고 있지만 선박 조립 부재를 만드는 하청 업체 등 관련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태다. 지금도 수빅에서 건조하는 선박들의 부품을 전부 국내에서 싣고 간다. 이를 위해 2척의 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임금 등 가격 경쟁력 때문에 수빅이 존재하지만 수빅은 중국과의 중저가 선박 수주 경쟁 등 용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이 바라는 영도조선소의 미래는 현대 미포조선소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미포조선소도 부지가 46만2809㎡(14만평)에 불과하지만 PC(Product Carrier·석유화학제품 운반선)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특화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부장은 “70년 역사의 영도조선소도 1995년 동양 최초로 LNG선을 건조하는 등 기술력은 빅3에 버금간다”며 “노사가 똘똘 뭉쳐 장기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태 일지
   
   2007년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에 새 조선소 건설
   
   2009년
   한진중공업 관리직 구조조정(356명 희망퇴직)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 174억원 주식 배당
   
   12월 15일
   사측, 생산직 직원 400명
   구조조정 계획을 노조에 통보
   
   12월 20일
   노조, 정리해고에 반대 총파업
   
   
   2011년
   1월 6일
   김진숙 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크레인 고공 시위 시작
   
   2월 14일
   사측, 직장 폐쇄
   
   6월 12일
   1차 희망버스 참가자 1000명
   한진중 방문
   
   6월 27일
   노조 총파업 철회, 업무 복귀
   
   7월 9~10일
   2차 희망버스 7000명 한진중 방문

부산 시민들이 본 희망버스
   
   “어렵게 이룬 노사합의 들쑤셔 지역경제 어렵게 한다”
   “쓰레기·노상방뇨에 교통난… 더 못 오게 해달라”

   
   한진중공업 사태를 전국적 이슈로 비화시킨 건 두 차례에 걸친 희망버스다. 지난 6월 12일과 7월 9일, 고공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한 사람들을 태우고 부산 영도로 내려온 희망버스는 그 자체가 트위터 등을 통해 뜨거운 이슈로 확산되며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심각한 노사분쟁 현장에 일반 시민이 응원하러 내려오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현상으로,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노동계에서 나왔다. 희망버스를 응원한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여론의 승리를 확신하며 고무된 분위기였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역풍도 낳고 있다. 부산 시민들을 중심으로 “어렵게 이룬 노사 합의를 왜 외부 세력이 들쑤셔 지역 경제를 어렵게 하느냐”는 불만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반감이 확산되는 추세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회사 정상화를 이뤘는데 이를 방해하는 것은 부산 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특히 정치인의 개입을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진중공업은 르노삼성과 함께 부산에서 1위를 다투는 대기업인데 이게 어려워지면 협력사 등 부산 경제 가 휘청인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부산 시민들의 반감은 지난 7월 14일 영도조선소를 찾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도 그대로 표출됐다. 손 대표 일행이 탄 버스가 오자 ‘영도 주민 불편 주는 희망버스 강력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영도구 주민자치위원장 10여명이 한진중공업 해고 근로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이들 영도구 자치위원장들은 손 대표에게 “희망버스가 오면 절대 안 된다”며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희망버스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1차 희망버스 때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경찰이 가로막고 선 정문 진입을 시도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준비한 대로 하자’며 사다리를 들고 나와 2m가 넘는 담벽을 넘어서 조선소로 들어왔다”며 “우리 조선소는 해군 선박이 있어 국가 가급 보안 목표 시설이다. 이런 국가시설에 사다리를 타고 난입하는 게 순수한 시민이냐”고 되물었다.
   
   경찰과 정문에서 대치하다 끝난 2차 희망버스 역시 영도 주민들에게는 불쾌한 기억을 남겼다. 영도조선소 바로 앞에 있는 신도브레뉴 아파트의 한 주민은 “밤새도록 잠을 못 자서 괴로움을 겪었다”며 “3차 희망버스가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주민들이 한진중공업으로, 경찰서로 전화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영도구청 자치행정과의 한 관계자는 “2차 희망버스가 다녀간 다음날 쓰레기가 25톤 정도 나왔다”며 “수천 명이 음식물을 먹고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갔고 주변에 화장실이 없다 보니 노상 방뇨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현재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은 3차 희망버스를 준비 중에 있다. 3차 희망버스가 여론의 순풍과 역풍 중 어느 쪽을 받으며 달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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