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클라우드 ‘RACE’ 출범 공식화 전 세계 14개 지역의 미군 데이터센터 묶고 400만명이 사용할 초대형 클라우드 플랫폼이 뜬다

국방부 클라우드 계획 IT 업계 돈줄로 떠올라
엄청난 서버 수요와 소프트·하드웨어 필요
불황 때 국방 비즈니스 활발해지는 게 ‘미국적 특수성’
전장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작전 중인 미군.
전장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작전 중인 미군.

지난 7월 19일부터 3일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는 ‘Fose(포세) 2011’ 회의가 열렸다. 포세는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IT 관련 회의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방정부 관련 IT 비즈니스를 타깃으로 하는 회의이다. 참가비가 1인당 500달러를 넘어서지만, 300여개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가했다. 필자 역시 매년 참가하는 회의지만, 올해의 포세는 예년과 다르게 느껴졌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국방부를 타깃으로 한 비즈니스가 한층 활발해졌다. 경기가 나쁠 때 국방부는 가장 빠르고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정부예산의 20% 정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국방부가 가는 길로 엄청난 돈도 따라간다. 국방부가 추진 중인 클라우드 컴퓨팅의 도입은 회의 기간 중 가장 큰 관심을 끈 이슈였다.

둘째, 캘리포니아발 애플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동부의 연방정부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50여개의 크고 작은 회의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회의 첫날 점심 때 열린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창조와 혁신’ 스피치였다. 5분 늦게 갔는데 1000여개의 좌석이 만원이었다. IT 전도사로 알려진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한 사람이다. 애플 창업 당시의 비화와 ‘현재와 미래의 애플’이 이날 연설의 주된 내용이었다. 애플 제품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 애플이 구축한 환경에 맞는 하드웨어 구축이 워싱턴에서도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셋째, 연방정부 내 IT 관련 주무 부서가 직접 나서 자신들의 계획과 업무 내용을 민간에게 알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조달청(GSA) 산하 연방정부 클라우드 컴퓨팅 이니셔티브(FCCI)와 국무부 산하 IT 트레이닝 기관(ISSLOB) 등 10여개 부서가 나서 민간기업에 향후 이뤄질 수주입찰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기업이 정부기관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이 기업에 자신의 업무를 알리고 참여를 요청하는 식이다. 정부부처 가운데 국방부는 ‘국방혁신무대(DIT)’라는 가장 큰 부스를 열어 민간기업을 맞이했다.

넷째, 블랙베리를 중심으로 한 모바일 코너가 따로 마련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바일 정부 구축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모바일의 대표 주자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자사 주도하의 단독 행사에만 참가한다는 애플의 고집 때문에 회의 기간 중 만날 수 없었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대세라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치 않는 듯했다.

다섯째, 위기일수록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논의가 회의장 구석구석에서 들려왔다. 경기가 어렵고 예산이 삭감될수록 새로운 혁신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미국식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정부가 주목하는 분야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는 최적의 ‘정보원’은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리는 구직란(Jobs)이다. 인터넷 구직란에 들어가 전문 분야에 관한 정보를 넣으면, 구인을 원하는 기업이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워싱턴 주변 기업을 지탱하는 주된 돈줄이 연방정부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 업무에 필요한 직업이라 볼 수 있다.

최근 구직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분야는 단연 IT 관련 전문가이다. 7월 27일 워싱턴 포스트지 홈페이지 구직란에 들어가 키워드로 ‘IT’를 넣자, 모두 250여개의 구인 희망 기업들이 나타났다. 워싱턴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연봉 10만달러가 보장된다.

미국이 재정적자로 모든 분야의 예산이 줄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IT 구인 희망 기업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긴축예산에 적응하기 위해 연방정부 모든 기관들이 IT를 통한 업무 능률 향상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오히려 IT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다.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분야는 상한가의 IT 전문가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보수를 약속하는 영역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셜미디어 관련 IT 전문가가 부러움을 샀지만, 올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가가 최하 연봉 20만달러를 보장받는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가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연방정부 IT 분야에서도 클라우드 컴퓨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현재 국방부는 연방정부 가운데서도 클라우드 컴퓨팅의 위력이 가장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곳이다. 사실, IT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국방부의 클라우드 컴퓨팅이 연방정부 IT2.0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왜일까? 돈 때문이다.

2012년 국방부 예산안을 보면, 전체 예산 3조7000억달러 가운데 약 18%인 6710억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군비 지출의 43%를 차지하는 미국 국방부 예산은 그 자체로 ‘엄청난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 조직, 정보, 인프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미국 밖의 군비를 전부 합친 규모의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현재 미국이 외국에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진 자체 브랜드는 두 가지뿐이다. 애플과 군수업이다.

펜타곤 2.0의 총연출자 정보시스템국

‘포세’ 회의장 내 미국 국방부 부스.
‘포세’ 회의장 내 미국 국방부 부스.

언제부턴가 국방부는 IT2.0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연방정부 가운데 가장 열등한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 인터넷이 국방부 자체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개발됐다고는 하지만, 이미 한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냉전시대 때의 ‘훈장’일 뿐이다.

오디오에서 비디오, 소셜미디어로 이어지는 21세기 IT2.0 시대는 국방부와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IT2.0은 정보의 투명성과 오픈을 기본으로 한다.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방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다. 미 국방부는 바이러스 침투를 감안해 플래시 메모리 반입도 금지하고, 아이패드2를 회의장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국방부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펜타곤2.0’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2009년 12월이다. “(클라우드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클라우드를 통한 예산 절감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국방부 클라우드 프로젝트 총책임자 헨리 신키비츠 (Henry Sienkiewicz) 장군은 국방부 클라우드인 RACE(Rapid Access Computing Environment) 출범을 공식화했다. RACE는 전 세계 14개 지역에 나뉘어 있는 국방부 전용 데이터 센터를 하나로 묶고, 미군과 관련 민간인 40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플랫폼이다.

세계 어디든 관계 없이, 전투에 들어간 군인들이 현장에서 간단히 접속할 수 있고,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단말기에 활용될 수 있다고 한다. 국방부가 갖는 특수한 위상을 고려해, 다른 기관과 공유하거나 조직 밖의 사람이 이용할 수는 없다. 군인이나 국방부 관계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폐쇄형 클라우드다.

현재 펜타곤2.0을 주도하는 총연출자는 국방부 정보시스템국(DISA)이다. RACE는 DISA의 클라우드 담당 부서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RACE를 통한 펜타곤2.0 구축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방침 일정이 나오면서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군 철수는 국방부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을 의미한다. ‘예산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클라우드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예산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기도 하다.

현재 구체화되고 있는 국방부 클라우드의 핵심은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뉘어 이뤄지고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 서비스로서의 클라우드(SaaS). 아이패드의 아이튠에 들어가 앱을 다운로드 받듯이, 국방부 클라우드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둘째, 플랫폼 서비스로서의 클라우드(PaaS). 현지의 군인들이 작전 중 얻은 정보나 데이터를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올리거나, 서로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다.

셋째, 인프라 기능으로서의 클라우드(IaaS). 플랫폼 기능과 똑같지만, 군인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올리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동시스템(OS)이나 관련 소프트웨어를 연결시켜 제공되는 클라우드다.

국방부 클라우드는 애플의 아이튠을 본뜬 앱 서비스 클라우드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국방부 내부에서 활용되고 있는 ‘스토어프런트(storefront)’ 시스템은 애플 클라우드의 판박이라고 보면 된다. 미군의 주력 탱크인 M1에이브람스의 레이저 방어 시스템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스토어프런트에 들어가 앱으로 다운로드 받은 뒤 사용하는 식이다.

M16 총기 분해를 설명해주는 간단한 앱에서부터,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한 10여명 단위의 게릴라 전술 교본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정보를 전부 스토어프런트에서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원 클릭’으로 이뤄지는 스토어프런트는 앱만이 아니라 문자메일, 데이터, 파일 공유와 같은 영역에도 활용되는 ‘모바일’ 단말기에 중점을 두는 클라우드다.

해킹 우려도 커져, 선제공격 카드 빼든 배경

국방부의 클라우드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IT시큐리티’라는 점에서 모두가 ‘불안해 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외부 침입자가 클라우드에 들어가 시스템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주요 데이터를 빼가고 엉터리 앱을 심어놓는 식의 해킹을 상상할 수 있다.

최근 국방부가 사이버 시큐리티 해킹을 일반 전투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자위적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클라우드로 나서는 국방부의 고민을 방증하는 것이다. 사이버 테러리스트에 대한 국방부의 경고가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클라우드가 아프가니스탄 전투병에게까지 일반화되면 될수록 사이버 테러리스트에 대한 응징력도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전의(戰意)’를 불태우는 좋은 명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방부 클라우드는 엄청난 서버 수요와 시큐리티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필요로 한다. 컨스피러시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불황이 되면 국방부 관련 비즈니스가 활발해지고 어딘가에서 전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 ‘미국적 특수성’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어느 나라를 다음 타깃으로 할지에 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클라우드를 통한 펜타곤2.0 구축은 다음 작전에 들어서기 전에 이뤄지는, 숨 고르기 행보라고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비벡 쿤드라 사임과 후폭풍

오바마 정부 IT 설계사 쿤드라, 하버드대로 옮겨

예산 진통 속 IT 관련 예산 삭감 우려도 제기

오바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만들어진 연방정부 정보담당 총수석(CIO) 비벡 쿤드라가 8월 사직하면서 연방정부 IT2.0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인도계 CIO 쿤드라는 data.gov로 대표되는 오픈 데이터 정책, 연방정부 클라우드화, 투명성 등 25개(25 Point Plan)에 이르는 연방정부 IT 총설계자다. 8월 하버드대학 케네디 스쿨과 동대학 내 베크만(Berkman)센터의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연방정부 CIO 자리를 떠나게 된다.

워싱턴의 IT 정책 전문가들은 쿤드라의 사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된 것으로, 추가예산이 따르지 않은 상태에서의 IT2.0 계획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연방정부 각 부처 내 IT 실무진 입장에서 볼 때, 쿤드라의 발상에는 동의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만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의욕만 넘친 말잔치’였다는 것이다.

실례로 전자정부(e-gov)를 위한 연방정부 내 예산은 2011년 불과 800만달러로, 그나마 2010년의 3400만달러에 비해 20% 정도로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쿤드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자정부가 나아갈 방향과 지침을 제시한 선구적 CIO로 평가되고 있다.

쿤드라가 사임하면서 우려되는 것은 그나마 줄어든 전자정부 관련 예산이 한층 줄어들고, 설상가상으로 기존의 전자정부 스태프들에 대한 대량 해고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이다. 내년도 예산안 조정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의회는, 실업자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는 대신, 연방정부의 예산을 대폭 삭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IT 전문가들은 쿤드라 사임과 함께 새로 임명될 CIO의 역할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쿤드라가 계획했던 부분을 ‘집행(Execution)’하는 수준에서의 역할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편, 내년도 연방정부 IT 분야의 꽃이 될 국방부의 움직임과 관련해 국방부의 CIO 테리 다카이(Teri Takai)가 워싱턴의 새로운 IT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출신인 다카이는 미시간대학 수학과 출신으로, 포드자동차에서 30년간 IT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2003년 미시간주의 IT 디렉터, 2007년부터 캘리포니아주의 CIO를 거쳐 지난해 말부터 국방부의 CIO로 일하고 있다. 인도계에 이어 일본계가, 워싱턴 IT2.0 개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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