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 또문다락방의 유이 대표.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 또문다락방의 유이 대표.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신촌 부근에는 도서출판 ‘또하나의문화’라는 출판사가 있다. 유이 대표는 지난 1월부터 명함을 하나 더 들고 다닌다. ‘또문다락방’ 주인장이 바로 그것. 또문다락방은 이 출판사가 운영하는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다. 또문다락방은 영어로는 ‘슬리핑 스트로베리 게스트하우스(Sleeping Strawberry Guesthouse)’라고 표현한다.

우리 사회에서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게스트하우스라는 영어도 낯설지 않게 됐고,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또문다락방은 출판사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9일 또문다락방을 방문했다. 유이(50) 대표가 기자 일행을 맞이했는데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볼일 보러 갔지요.”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수더분한 느낌의 유 대표는 “손님들은 어디 가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6년 전부터 해외 배낭여행 떠나

시설을 둘러봤다. 이곳은 한 층 면적이 70㎡(20여평)인 3층짜리 연립주택의 3층 일부와 26㎡(8평)가량의 다락방을 숙박 공간으로 쓰고 있다. 방은 다락방을 포함해 총 3개다. 2층침대를 2개 놓은 4인실과 3개 놓은 6인실이 하나씩이고, 다락방은 침대가 없고 독방 또는 2~4인의 일행이 쓸 수 있다. 실내 인테리어는 4인실은 심플 모드, 6인실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여성적 모드로 꾸며놔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게 했다. 화장실 겸 샤워실도 물론 있다.

시설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우아한 출판사 대표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 겸업으로 변신한 유 대표의 사연을 들어보자.

“제가 지금까지 여행을 좀 다녔기 때문에 여행하는 여성들의 불편한 점을 잘 아는 편이에요.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 유럽에서는 노인들이 장성한 자녀들이 떠난 빈방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요.”

그는 출판계에서 알아주는 여행 전문가다. 1995년 첫 해외 배낭여행을 시작한 뒤로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그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2000년 5월부터 석 달 동안 친구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걷는 여행을 즐기며, 여행 책을 사 모으고, 명절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곤 한다. 2007년에는 친구와 함께 프랑스 중남부에서 순례길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1600㎞ 거리를 도보여행 했다. 지난해 1월에는 3주간 아프리카 동부에서 남부로 트레킹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9월에는 여성 여행객을 위한 해외여행 안내서 ‘여행 좋아하세요?’를 펴내기도 했다.

그가 게스트하우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9월 추석 당일 프랑스 여성이 한국에 와서 두 달 동안 있다 간 것이 계기가 됐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 여성은 한국인 친구의 소개를 받아 처음에는 유 대표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유 대표 집은 출판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제가 어머니하고 같이 사는데 어머니 몸이 좋지 않아서 손님을 우리 출판사 다락방으로 옮기시게 했어요.”

외국 손님을 먹이고 재워주고 하다 보니 “내가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한다는 점도 마음이 솔깃했다. “출판사 사무 공간은 어차피 출근시간 전과 밤에는 비어 있는데 그때는 손님이 쓰면 되고, 낮에는 우리 직원들이 일하고 손님들은 밖에 나가 있으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인 셈이죠.”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안전하고 저렴하고 깨끗한 숙박시설을 지향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선진국의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우선 숙박비가 4인실, 6인실 기준으로 1인당 1박 2만5000원으로 저렴하다. 안전문제도 여성 전용을 표방하고 있으니 저절로 해결되는 셈이다. 그는 위생도 각별히 신경 쓴다. “저 자신이 숙소의 묵은 이불에서 풍기는 곰팡내를 되게 싫어해요.”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면으로 시트 커버를 만들어 손님이 바뀔 때마다 교체해준다. PC, 무선랜, 지도, 드라이어, 수건 등 여행객을 위한 꼼꼼한 배려도 돋보인다.

낮엔 출판사, 밤엔 게스트하우스

식사는 셀프 스타일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해외 게스트하우스는 이런 스타일이 많다. 손님들은 토스트 또는 고구마·감자 삶은 것, 차(둥글레차·녹차 등), 집에서 만든 과일잼과 땅콩버터, 과일 등을 본인이 챙겨 먹으면 된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를 알아보기 위해 식빵을 토스터에 구워 잼을 발라 먹어봤는데 맛이 훌륭했다. 빨래는 인근 동전 세탁방을 이용하게 한다.

유 대표의 본업은 출판업이다. 그가 운영하는 ‘또하나의문화’는 여성, 청소년, 대안교육 전문 출판사다. 1989년에 등록을 했고 1993년부터 그가 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책은 총 90여종. 주력 분야나 출판 횟수만 봐도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출판사임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 5일에는 엘리자베스 버그의 작품 ‘페이지’ 번역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또하나의문화가 청소년 문학 브랜드인 ‘다락방’ 이름으로 펴낸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그가 애착을 갖는 책으로 지난 6월 9일 고(故) 고정희 시인의 작품을 한데 모아 두 권짜리로 엮은 ‘고정희 시 전집’과, 2002년에 펴낸 어린이 성교육 도서인 ‘초경파티’가 있다. “초경파티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리에 대한 소극적인 생각을 벗어던지고, 기쁘고 축복받은 일임을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인 책입니다.”

2005년에 펴낸 ‘우리 몸 우리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는 책이다. 여성과 건강에 관한 교육에 전념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가 펴낸 책을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번역한 이 책은 여성들의 교육과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 필요한 기초 정보를 비롯해 호르몬, 성관계, 임신과 출산의 방법 등을 알려준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다양하다. 아직까지는 내국인이 9, 외국인이 1 정도로 내국인이 더 많다. 하지만 7월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는 외국 사이트에 홍보도 하고 있어 점차 외국 손님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 대표에게 출판사 일과 게스트하우스 일을 같이 하려니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방이 꽉 차는 일이 많지는 않아서 그런지 할 만해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성 여행객들이 믿고 이용할 만한 쉼터를 제공한다는 생각에서 하니까 재미도 있고요. 우리 숙소를 계기로 서울에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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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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