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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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부패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아시아 기업에 불이익을 주려는 의도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투명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으니까요. 미국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는 아시아 기업을 부패란 잣대로 견제하고, 이를 통해 미국 기업에 상대적인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흐름을 알고 적응해야 합니다.”

TY&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부경복(40) 대표 변호사는 10년 넘게 기업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국내외 기업들에 부패 방지 컨설팅을 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그가 기업 전문 변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그가 걸어온 길과 맞물려 있다. 부 변호사는 1996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같은 학교 법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경영학과 법학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대기업과 관련한 법률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2000년 김&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갔다. 김&장에서는 공정거래, 보건의료, 부패 방지와 관련한 사건을 전담했다. 2006년 현대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글로비스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변호한 것도 부 변호사였다.

그는 2007년 ‘김&장’이라는 울타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부패 방지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적발과 처벌에만 그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투명성 측면에서는 세계 40위권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부패 방지 전문 변호사라는 영역으로 그를 떠밀었다. 부 변호사가 김&장을 나와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TY&파트너스 법률사무소다. TY&파트너스는 기업 부패를 사전에 방지하는 법률 자문을 주로 맡고 있다. 최근에는 ‘부패전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부 변호사는 “부패 방지는 착한 기업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TY&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부 변호사는 “지금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새로운 무역장벽을 치고 있다”며 “이는 부패 기업에 대한 ‘페널티’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은 제도 정착을 위한 준비 기간이지만 수년 내에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미국 은행 계좌나 통신망 등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면 이 기업들을 미국 법에 의해 처벌하고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죠.”

그는 외국 언론에서 보도되는 국내 기업들의 부패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단지 이 문제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의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잘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해외 언론에서는 국내 대기업의 해외 지사장이 뇌물 수수로 인해 구속되는 일이 종종 보도됩니다. 벌금을 맞는 일은 다반사죠. 외국에서는 부패 방지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면 한국이나 중국 기업들이 가장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힘을 빼는 데 부패 평가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는 게 그들 생각입니다. 지금 이런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제 시장에서 도태되는 우리 기업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부 변호사는 1년에 4개월 정도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다. 국외 기업들의 컨설팅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부패 방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깨닫는다고 한다. 그는 이런 국제적 합의가 아시아 기업들에 위협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했다.

“엄밀히 말하면 아시아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가는 기류가 생겨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부패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선진국들이 먼저 기준을 만들어서 이를 가지고 아시아 국가들이나 개발도상국에 들이대는 것이죠. 과거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환경문제를 지적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도덕적 제국주의라고 부르죠.”

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들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윤 장관과 벌였던 ‘설전’을 통해 이런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WSJ 기자들은 윤 장관에게 한국의 룸살롱 문화에 대해 비꼬듯 물어봐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이것은 금융위기 이후 WSJ가 한국 기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과 동일선상에서 일어났다는 게 부 변호사의 생각이다.

“WSJ가 이런 보도를 하면 다른 나라의 언론들이 이 기사를 그대로 받습니다. WSJ가 이걸 노린 거죠. 사회적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 앞으로의 추세인데 이런 인식이 강해지면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미래는 밝지 않은 거죠.”

부 변호사는 “최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윤리경영’에 대해 강조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외국 지사의 보고를 받는 이건희 회장이 외국의 추세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 오너나 CEO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나라 기업 문화의 문제점은 ‘주는 뇌물’과 ‘받는 뇌물’을 구분해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주는 뇌물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감아 주고, 받는 뇌물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벌백계’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부패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경영자들이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외국 기업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적발에 초점을 맞추지만 외국 기업들은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부 변호사는 외국 기업에서는 혹시라도 부패가 드러나면 엄격하게 처벌한다며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엔론 사태를 예로 들었다.

“분식회계를 했던 엔론은 사태가 터지고 난 후 회사가 공중분해됐습니다. 부패에 대해 그만큼 엄격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비리를 저지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선에서 마무리하죠. 그리고 담당자가 오너와 가까우면 다시 복귀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부패의 최대 적은 금지가 아니라 공개입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룸살롱 문화나 골프 접대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패를 방지하려면 제일 먼저 의사 결정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핫라인을 활성화해 부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고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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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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