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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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월가 금융자본의 행태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다. 가진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갖지 못한 자는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고착화되면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과연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된 것인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원제 ‘The End of the Free Market’·다산북스)의 저자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인도 등의 나라에 주목한다. 지난 30년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채권국’으로 부상한 중국, 디폴트의 위험에 빠지며 신용등급 강등이란 수모를 겪은 유럽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상대적 호조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인도가 분석 대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유라시아그룹이란 세계 최대의 위기관리 컨설팅업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국가자본주의가 과연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증하고 있다.

씨티그룹과 공동으로 글로벌 정치위기 인덱스를 개발하기도 한 이안 브레머 회장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가졌다.

- 국가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국가자본주의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국가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은 국영에너지기업, 국영기업, 친정부기업, 그리고 국부펀드 등의 수단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끼치며 동시에 정치적 안정을 추구한다. 중국의 국영기업들과 러시아의 에너지기업들, 걸프 연안 국가들의 국부펀드, 브라질의 에너지탄광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 국가자본주의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련의 붕괴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로는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경제적 번영을 이룬 것은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후 자유시장경제 모델이 확산되고 전 세계가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대두됐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자본주의 진영의 국영기업들이 시장경제 진영의 민영기업들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시장 개입을 극도로 꺼리던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을 시장에 개입하게 했다. 국가자본주의를 실천한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고 경제회복 속도도 더욱 빨랐다.”

-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보나. “글로벌 자유시장경제는 끝났다고 본다.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을 설치해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국가자유주의가 자유시장경제에 위협을 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자유주의가 언제라도 보호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자유주의는 국가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정부의 영향력 증대를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자국에 해가 된다고 느끼면 언제라도 보호주의를 취하기 쉽다. 게다가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정치적 견제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 국가에선 보호주의가 휠씬 쉽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유시장경제는 세계 도처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세계화(Globalization)’의 특징으로 꼽았던 단일 세계시장(the single global marketplace)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 국가자본주의가 자유시장경제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정치관료들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국가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해 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국민의 번영과 정부의 안위,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국가자본주의자들은 ‘안위’를 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상업적 활동을 통해 국가의 주요 정보에 접근한다거나, 인터넷을 통해 주요 정보를 파악한다거나, 혹은 정부에 대한 저항을 독려한다는 우려가 생길 경우엔, 국가자본주의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인터넷망을 끊으려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행위가 경제발전을 위축시킨다. 특정 산업부문이 위축돼 소멸하게 되면, 그 산업부문을 지탱시켜 왔던 해당 산업 근로자, 자산, 아이디어는 해체된 뒤 재결합돼 새로운 상품, 서비스, 아이디어의 형태로 재창출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창조적 파괴’다. 그런데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나라는 이 같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한다.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가가 시장활동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장기적 투자보다 단기적 이익에 눈을 돌리게 된다. 기업 경영에서 전통적으로 중시돼 온 것 중 하나가 ‘주주의 이익’이다. 주가가 오르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경영진의 능력이 평가되기 때문에 경영진은 비용 절감을 통해 주가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려 애쓴다. 문제는 건전한 장기 투자전략을 외면한 채, 분기별 이익만을 극대화할 때다. ‘자리’를 지키고 싶어하는 경영인이라면 누가 감히 주주들의 배당금을 모른 척할 수 있겠나. 오늘날 대주주들은 주식거래를 통해 초단기 이익을 노린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기업의 장기 수익성을 고려하는 사람은 드물다. 주가가 올라가면 장기 수익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사라진다. 하지만 2008년처럼 시장이 휘청거리게 되면 단기 이익에 급급한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명백해진다.”

- 국가자본주의가 자유시장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낮은 임금, 낮은 땅값, 그리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경우에 한해 단기적으로는 고려해 볼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본다. 국가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피해상황을 목격한 많은 개도국들이 국가자본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이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이 모델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국가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보나.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자유시장경제는 수백년간 지속되면서 번영했고 진화해 왔다. 반면 국가자본주의를 택한 나라들은 값싼 자원이 고갈되고 나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한국 경제에 대해 조언한다면. “한국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를 증가시키고, 서비스 부문을 확대할 수 있으며, 수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일부 대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중소기업이 활성화되면 실업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은 경제수준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여성이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여성의 교육수준은 괄목할 정도로 높다. 이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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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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