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애
1964년 10월 5일생
남편 김영남
대성구역 미산3동 10반
시민증번호 229547
딸 김은경은 229548
1987년경 북한 모처에서 촬영한 요코다 메구미의 20대 때 모습. ⓒphoto AP
1987년경 북한 모처에서 촬영한 요코다 메구미의 20대 때 모습. ⓒphoto AP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47)로 추정되는 인물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북한 보위부 작성 ‘평양시민 210만명의 신상자료’를 분석한 결과, 북한당국이 죽었다고 말해온 메구미가 2005년 현재 ‘한선애’라는 이름으로, 일본인 거주지역인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3동 10반에 딸 김은경(24)과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구미는 1977년(당시 13세) 일본 니가타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한으로 끌려갔고, 10년이 지난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당시 메구미가 동료의 일본어 선생이었다고 말하면서 납북 사실이 확인됐었다. 일본 정부의 메구미 생존 여부 확인 요구에 북한은 2002년 북·일 실무회담 당시 “메구미는 1993년 3월 사망했다”고 일본에 통보했으나 일본 내에서는 메구미 생존설이 끊이질 않았다. 북한의 사망 주장에도 불구, 메구미가 확실시되는 인물이 적어도 2005년까지 평양에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메구미 생년월일 일치 90여명 찾아

주간조선은 메구미를 찾기 위해 ‘평양시민 신상자료’를 한 달여에 걸쳐 분석했다. 메구미의 생년월일(1964년 10월 5일)과 딸의 이름(김은경), 딸의 생년월일(1987년 9월 13일), 남편의 이름(김영남) 등 지금까지 알려진 메구미 관련 모든 정보를 평양시민 210만명의 신상자료와 일일이 대조하며 확인했다.

메구미가 살아 있었다면 메구미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 역시 평양시민 210만명의 신상자료에 기록돼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추적했다. 우선 기존에 알려진 메구미의 북한 이름인 류명숙, 류옥희와 메구미의 생년월일을 갖고 메구미를 추적했으나 일치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주간조선은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들의 조언을 받아 2002년 일본인 납치자 송환 논란 이후 미송환자인 메구미의 신상자료가 변경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다시 메구미와 생년월일이 같은 인물을 추려냈다. 그 결과 메구미와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평양 여성 90여명을 찾았다.

이들 중 주간조선은 ‘한선애’가 메구미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선애는 무엇보다 생년월일이 메구미의 생년월일(1964년 10월 5일)과 일치한다. 남편 이름은 메구미의 남편인 ‘김영남’이라고 명기돼 있다. 신상자료에 ‘자녀’ 관계를 알 수 있는 칸이 아예 없어 한선애의 자녀는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으나, 메구미의 딸 이름과 같은 김은경이 한씨의 딸인 게 확실하다. 한선애의 시민증번호(229547)를 확인해본 결과, 그 다음 시민증번호(229548) 소유자가 김은경이었다. 서울의 고위 탈북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시민증번호가 이어지는 건 가족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북한의 시민증번호는 부부, 자녀의 경우 번호가 이어져, 남편이 1231번이면 부인은 1232번이고 첫째 자녀는 1233번이 되는 구조다.

한선애가 메구미일 가능성은 시민증번호 229548인 김은경을 중심으로 따져보면 더욱 높아진다. 메구미의 남편인 김영남은 2006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에 딸 김은경(당시 19세)과 동행, 김은경이 1987년 9월 13일생이고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닌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평양 출신의 1987년생 여성 가운데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인 인물을 신상자료에서 걸러낸 결과 2명의 김은경이 나타났다. 둘 중 한 명은 생년월일(10월 25일생)이 김영남씨가 말한 딸의 생년월일과 1개월 남짓 차이가 났고, 다른 한 명은 김영남씨가 말한 김은경의 생년월일과 일치했다.

한선애·김은경 시민증번호 나란히

2002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일본 외신과 인터뷰를 한 메구미의 딸 김은경. ⓒphoto AP
2002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일본 외신과 인터뷰를 한 메구미의 딸 김은경. ⓒphoto AP

생년월일이 1개월 남짓 차이가 나는 김은경이 바로 메구미로 추정되는 한선애의 딸이다. 이 김은경은 한선애와 시민증을 부여받은 지역도 ‘만경대’로 같았고 거주지도 ‘대성구역 미산3동 10반’으로 동일했다. 두 사람은 한가족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시민증을 부여받은 만경대 구역은 외국인이 방문하면 주로 찾는 초대소가 있는 지역이고, 거주지인 미산동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초대소가 있어 일본인인 메구미가 거주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미산동은 김일성종합대학과도 인접해 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외 선전기관이 입주한 ‘3호청사’와도 가깝기 때문에 연락소 요원들도 많이 거주한다. 김은경의 아버지 김영남은 대남공작기관의 일종인 연락소 요원으로 알려져 있다. 신상자료에 따르면 김은경은 2004년 4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나온다.

김은경, 한선애의 ‘고향’도 한선애가 메구미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김은경의 고향은 중구역 창광동, 한선애의 고향은 보통강구역 대타령1동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들 두 지역에는 중앙당 연락소 산하의 일본 문서 번역실이 있다. 또 이 두 지역에서는 일본인이 자주 목격된다고 탈북자들은 주간조선에 말했다. 특히 김은경의 고향인 창광동은 김정일 집무실인 이른바 ‘3층’과 인접해 있고 중앙당 과장급 이상만이 거주하는 평양의 심장부다. 메구미가 딸을 낳을 당시 김정일 일가(5호댁)나 북한 고위층 자제의 일본어 교사로 활동하며 잠시 창광동에 거주했고, 이로 인해 김은경의 고향이 창광동으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있다. 국내 일부 납북자 관련 단체에선 북한에서 메구미를 돌려보내지 않는 이유로 “김정일 일가의 일본어 선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중요 정보가 누설될 것을 우려해 사망으로 위장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평양 출신 탈북자는 “미산동, 창광동, 대타령동 등은 모두 초대소가 있거나 일본문서 번역실 등이 있기 때문에 납치된 일본인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만약 메구미와 딸이 같이 살고 있다면 분명 이 세 곳 중 한 곳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고위 탈북자는 주간조선에 “평양에 사는 사람 중 메구미와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인물(한선애)의 남편이 김영남이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인 87년생 딸 김은경과 한선애의 시민증 숫자가 나란하며, 이 두 사람이 동일한 주소지에 거주하는 등 메구미의 기존 정보를 대입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사례는 1개 이상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은경의 생년월일은 김영남의 일방적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에서 착오일 가능성이 있다. 또 시점이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는 이상 행정자료의 기록이 실제 시점과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김영남은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구미의 사망 시점도 당초 북한 당국이 주장한 1993년 3월이 아닌 1994년 4월로 번복했었다. 다만 한선애의 혈액형은 A형으로 B형으로 알려진 메구미의 혈액형과 다르다.

“김영남 별도관리, 신상정보 안 나올 수도”

‘평양주민 210만명 신상자료’ 원본 파일. 김은경, 한선애(메구미), 박춘화만 별도로 캡처했다.
‘평양주민 210만명 신상자료’ 원본 파일. 김은경, 한선애(메구미), 박춘화만 별도로 캡처했다.

주간조선이 ‘1987년생 김은경’으로 검색한 결과 나온 두 명의 김은경 중 또 다른 김은경은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이 밝힌 딸과 생일이 똑같다. 하지만 그는 가족 관계 추적이 불가능하다. 이 김은경은 2004년 5월 12일 김일성종합대학에 등록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만경대구역 당상2동에 거주하고 있다. 이 김은경은 시민증번호가 나란히 배열되는 가족, 즉 김영남이나 메구미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메구미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고향이 중구역 해방산동으로 나오는데, 서울에 있는 고위 탈북자의 증언에 다르면 해방산동은 주로 악극단 ‘보천보악단’ 단원들이 거주하거나 혁명 1세대가 사는 지역이다. 때문에 메구미 가족이 거주했다고 하기에는 부적합한 지역이라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았다. 현 주거지인 당상동도 외국인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한선애가 메구미인지 확인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신상자료’의 혼인란에 나와 있는 남편 김영남이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영남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선애의 남편 김영남의 인적사항은 주간조선이 확보한 ‘신상자료’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선애는 ‘신상자료’에 남편 김영남과 1987년 2월 15일에 결혼했고, ‘거주지’는 ‘대성구역 미산3동’으로 나온다. 하지만 자료에 한선애와 1987년 2월 15일에 결혼한 김영남은 없다. 김영남을 기준으로 배우자가 한선애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람을 찾았으나 신상자료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김영남은 북한에서 김영수, 김철준 등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남이 다른 이름으로 ‘평양시민 신상자료’에 등재돼 있을 수 있다고 판단, 김영남의 나이와 결혼 연도를 바탕으로 ‘김영남’ 찾는 작업을 했다. 김영남은 군산기계공고 1학년 때인 1978년 군산 선유도에서 납북됐는데, 우리 자료에는 1962년생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북 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1961년생”이라고 밝혔고, 2006년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타나서는 “북한에서 나이가 1960년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는 메구미와의 결혼 연도는 1986년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김영남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신상자료’에서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 탈북 고위 인사는 주간조선에 “김영남이 별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신상자료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김영남과 같은 사람은 창광안전부에서 별도로 주민자료를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면 메구미로 추정되는 한선애는 왜 신상자료에 그대로 뒀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보통 세대주가 관리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나이 어린 자녀가 있을 경우 반드시 부모 중 한 명이 주민신고를 한다는 점에 비춰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영남, 재혼한 박춘화 기록에도 없어

2006년 6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김영남씨가 딸(은경·맨오른쪽)과 함께 참석했다. ⓒphoto 조선일보 DB
2006년 6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김영남씨가 딸(은경·맨오른쪽)과 함께 참석했다. ⓒphoto 조선일보 DB

특히 일본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메구미는 오래전에 김영남과 이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당국은 이와 관련된 정보를 이미 수년 전에 입수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주장이다. 북한은 부부가 이혼할 경우 어머니가 자녀의 양육권을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실제로 메구미가 김영남과 이혼했다면 메구미는 줄곧 그의 딸 은경과 함께 거주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김영남으로 신상자료를 검색하면 부인이 한선애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혼을 전제로 하면 설득력이 있다. 북한은 재혼을 하고 새 살림을 차릴 경우 시민증번호도 바뀌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남은 2006년 이산가족 상봉 당시 메구미와 사별 후 재혼했다면서 부인 박춘화(1975년생)를 데리고 나타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김영남은 1997년 박춘화와 재혼을 했고 둘 사이에 어린 아들도 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은 “메구미와 사별 후 재혼”이라는 김씨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박춘화라는 인물을 기준으로 신상자료를 분석했다. 1975년생 박춘화가 1997년 결혼한 인물은 ‘김명남’으로 나타났다. 김명남은 김영남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다시 김명남을 기준으로 조회하자 나이 등 김영남의 신원과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선애의 경우처럼 박춘화의 남편도 신상자료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주간조선의 추적 결과에 대해 평양시 사회안전국 출신의 탈북자 오영남씨는 이렇게 말했다. “메구미 가족에 대한 분석자료를 보면 김은경과 시민증번호가 나란한 한선애가 메구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김영남은 박춘화와 재혼한 것 같다. 그런데 박춘화의 남편이 김영남이 아니라 김명남이라는 점과, 김명남으로 검색하면 박춘화와 부부관계를 입증할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으로 볼 때 김씨는 별도로 관리되고 있으며 북한이 메구미를 숨겨왔을 개연성이 있다. 김은경은 어렸기 때문에 엄마의 보호 속에 있었을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 메구미가 죽지 않았다면 분명 은경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가 2006년 6월 납북자 김영남씨의 모자 상봉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photo 마이니치신문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가 2006년 6월 납북자 김영남씨의 모자 상봉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photo 마이니치신문

메구미의 생존 가능성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최근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메구미가 2004년 말에서 2005년 초까지 북한에 생존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서 교수로 활동 중인 한 인사가 최근 북한에 사람을 보내 메구미의 생존 사실을 확인하려 했었다고 국내 한 탈북자가 전하기도 했다.

“메구미가 실제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는 탈북자들도 있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자는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의 주장대로 죽었을 수도 있다”며 “메구미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찾아봤으나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김은경씨는 최근 북한에서 결혼을 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김대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