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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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에 나이 80세 이상의 남녀와 의부(義夫)·절부(節婦)·효자·순손(順孫)·환과고독(鰥寡孤獨)·독폐질자(장애인)를 대궐의 뜰에서 왕이 몸소 향연하고 선물을 하사하되 차등있게 하였다.’(고려사 ‘세가’ 권12, 예종 원년 9월)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글항아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장애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기자는 이 책을 한 장씩 넘겨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조에는 장애인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고정관념이 일거에 깨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창권 고려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정 교수는 2000년부터 장애인사를 연구해왔다. 565쪽에 달하는 역저(力著)는 장장 11년이 걸려 태어났다. 지난 11월 24일 정창권 교수를 만났다.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장애인들이 집안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거리로 밀려나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로 넘어오면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사회복지시설에 강제로 수용됐습니다.”

조선시대 장애인 복지정책을 보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애인이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고 자립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에 점복, 독경, 악기연주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스스로 생계를 꾸렸다. 혼자 사는 나이든 장애인에게는 부양자, 즉 오늘날의 활동보조인을 제공했으며,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부역이나 잡역을 면제해 주었다. 부모나 배우자, 자식들이 장애인을 정성껏 부양하면 그 집에 징표하고 포상하는 장려제도를 실시했다. 그와 반대로 장애인을 학대하거나 살해하면 일반 범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하는 엄벌제도를 실시했다.

정 교수는 여성사 연구에서 출발해 장애인사로 옮겨간 경우다. 저자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여성의 세계를 알면 세상을 두 배로 살고, 장애인의 세계를 알면 세상을 세 배로 산다.”

장애인 복지정책의 핵심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보자. 척추장애를 갖고 있어도 우의정과 좌의정 등을 역임한 허조, 기형아로 태어나 생육신이 된 권절,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인임에도 우의정이 된 윤지완, 청각장애인임에도 이조판서와 대제학에까지 오른 이덕수 등. 그 사례는 끝이 없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만을 위한 관직이 따로 있었다.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전통사회에는 장애란 없었다. 전통사회에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았다. 개인의 능력, 재능, 장기로 판단을 했지 신체적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영조실록’ 47권, 영조 14년 10월 15일의 기록을 들춰보자. 지금의 외무장관에 해당하는 동지정사(冬至正使) 이덕수는 귀머거리였다. 동지정사는 적임이 아니니 바꾸어야 한다는 진언이 들어왔다. 임금이 이렇게 일렀다.

“한어(漢語)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모두 귀머거리인데 어찌 이를 병폐로 여길 것이 있겠는가마는, 이미 대관(臺官)의 말이 나왔으므로 반드시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니 아뢴대로 하라.”

청각장애인 이덕수는 대사성, 대제학, 대사헌,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거쳤다. 1735년 이덕수는 동지정사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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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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