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반미(反美) 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2년 미선·효순이 사건 이후의 반미집회, 2004년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 2008년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결정에 대한 촛불시위는 진보좌파세력이 주도한 대표적 반미운동이었다. 그리고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여당의 기습 처리 이후 대한민국은 의회정치가 아닌 ‘반미’의 기치하에 모인 거리의 정치로 아우성치고 있다.

한국의 반미주의는 누구의 사상에서 연원하는가? 1970년대 유신독재의 치하에서 냉전·반공주의의 성역에 도전한 리영희의 우상파괴적 사상이 그 선구였을 것이다. 리영희는 1970년대 독재로 신음하던 한국 사회에 냉전·반공에 대한 우상파괴적 글쓰기로 수많은 젊은이를 각성시켰고,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진보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로 숭앙(崇仰)한다.

리영희의 1주기(12월 5일)가 되었다. 한국의 진보좌파에 있어 리영희는 신화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화가 냉전구조와 반공독재의 비판을 넘어 미국의 존재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담고 있다면 이를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리영희의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상파괴적 고발은 분명 군부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사상적 추동력이었다.

한국 사회 양분시키는 도그마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리영희의 미국에 대한 입장은 이성적 계몽은 아니었다. 그의 미국관은 이성적 비미(批美)가 아닌 총체적이고 근본주의적 반미로 일관되었다. 리영희의 근본주의적 반미는 한국 사회를 양분시키는 ‘도그마’가 되었다. 리영희의 글쓰기의 시작과 끝은 냉전의 시대사에 자리 잡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고발하는 것이었다.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부터 2005년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발은 쉼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리영희의 칼 같은 펜을 피해 나갈 수 없었다. 물론 미국과 불가분의 연관을 맺고 있는 대한민국도 이를 비껴나갈 수 없었다. 리영희의 반공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의 비판이 아니다. 리영희의 우상파괴 작업은 이데올로기 비판 차원을 넘어 존재에 대한 근본적 거부, 혹은 부정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이미 ‘전환시대의 논리’ 시절부터 리영희의 미국의 냉전의식과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은 국부적·교정적이기보다는 전체적이고 근본적 부정에 가까웠다. 리영희는 “그들은 일체의 사상(事象)을 ‘흑과 백’ ‘죽일 놈과 사랑할 놈’ ‘미국 대 타국’ ‘민주주의와 뭣’ ‘자유주의와 뭣’이라는 식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종전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을 지배해온 사상이다.… 이 냉전의식의 자기 기만성은 정부 지도자들이나 미국을 구성하는 군부·경제계·재계·극우익 등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성인들의 가치관마저 좀먹었다.… 미국은 자기 제도와 이념의 자유로운 창조적 발전을 목표로 하고 세계의 작은 국가와 인민의 솟아오르는 목표와 염원과 해결을 까부수는 데 전력을 동원한 것이다. 미국의 힘은 뭣인가 남의 가치를 ‘반대’하기 위해서만 쓰여졌다고 단언했다.”(‘전환시대의 논리’ 1974)

리영희의 미국관은 마르크스주의 계통의 이론 서적, 그중에서도 시드니 렌즈의 ‘군산복합체’ 이론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 리영희는 렌즈의 책으로 인해 “미국에 관한 허구적 지식들이 말끔히 세척되는 것을 느꼈고, 미국에 대한 무지를 깨침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굉장한 기쁨을 느꼈다”고 적을 정도이다.(‘반세기의 신화’ 2000)

이를 계기로 리영희는 미국을 정계, 군부, 재계 그리고 지식인까지 하나의 복합체가 되어 군수산업의 요구에 따라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필요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는 전쟁광이 지배하는 군사국가, 그리고 패권주의를 넘는 제국주의 국가로 판단한다. 이는 정부의 교체와도 무관한 미국의 본질적 속성에 해당하고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질서는 동맹의 보호국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점으로 연결된다.

“미국 자본주의는 반인간적” 단정

아울러 리영희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반(反)인간적이라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리영희는 중국 탕산 대지진 당시의 중국 인민의 질서정연함과 상호부조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뉴욕시의 정전사태에서 보인 미국인의 약탈과 혼란과 비교하며 이를 평등한 중국 사회주의의 인간적 덕성과 불평등한 미국 자본주의의 반인간적 모순으로 환치시켜 설명하곤 했다.

리영희는 “오늘날의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인간 중심 평등과 이데올로기, 철학, 사상, 제도 이런 것에 대항해서 개인의 이기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자기 전개 과정이죠. 이것은 비(非)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반(反)인간적이고 자연과 우주의 운영원리에 역행하는 반자연적인 원리라고 봐요. 반인간성, 반자연성으로 오로지 물질지상주의이고 이익추구이고 동물적 경쟁에 의한, 그런 결과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황폐와 끝내는 자기 파멸을 가져올 거예요”라고 했다.(‘통일뉴스’ 2001년 10월 30일)

리영희의 반공 이데올로기 우상에 대한 비판은 미국 자체에 대한 근본적 거부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19세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필망론’의 예언이 연상되나, 리영희의 미국관은 치밀하고 논증적인 그의 자세와 비추어 잘 이해되지 않는 감정적 저항이 뿌리 박혀 있다. 이는 논리나 이성을 넘는 근본적 부정인 듯하다. 미국은 리영희에 있어서 그가 추구하려던 ‘인간적인 것’ ‘고결한 정신주의’의 이상과는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적대적 실체였던 것이다.

리영희의 미국에 대한 거부는 대한민국의 부정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청산되었거나 개혁되지 않은 채 반공주의에 의해 전적으로 규율되는 ‘조건반사의 토끼’인 것이다.(‘전환시대의 논리’ 1974) 리영희는 대한민국을 “외세에 의탁해서 그 앞잡이로서나 그 뒤를 따르는 하수인적 졸개로서 민족의 이익을 팔고, 동포의 희생으로 살찌고 영달한… 친일수구세력들이… 일제 식민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제산제도와 소유질서, 그것의 보호 수단인 법질서와 이데올로기는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가상 아래 본질적으로 그대로 유지한 채로,… 이 대통령과 그 후의 모든 지도세력이 오늘날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며 ‘시간을 초월한 성스러운’ 이념, 반공주의로 살아온 나라다.”(‘우상과 이성’ 1977)라고 힐난했다.

무수한 대담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이러한 리영희의 판단은 민주화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을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거, 미국에 군사기지를 자발적으로 내주고 스스로 미국 머슴이 된 나라로밖에 보지 않는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리영희는 이승만의 ‘북진통일의 레토릭’에만 주목했다. 전쟁 폐허 후의 안보를 걱정하고 발휘된 이승만의 외교적 수완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대한민국이 미국의 기지국가가 되었다는 냉소적 평가에 몰입한 리영희에게 이것이 휴전 후 남북한 간에 최소한의 평화를 실효적으로 보장한 중요한 안보수단이 아니었던가 하는 관점은 고려될 수 없었다.

리영희의 사상에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은 없었다. 리영희는 그 방대한 저작과 글쓰기, 무수한 대담들에서 ‘대한민국’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남한’으로 지칭할 뿐이다. 리영희는 남한을 청산되지 않은 자들, 그리고 그들의 후예인 ‘극우 반공 미국 숭배적 냉전주의자’가 통치하고 또 그들에 의해 대중이 억압받고 있는 부끄러운 나라라고 단정한다.

리영희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북한의 친일파 청산’을 의심의 여지없이 신뢰하는 대신에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 그동안의 성취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인정도 보이질 않았다. 우상파괴자 리영희에게는 대한민국과 관련하여 부정이 전부이다. 이에 비해서 리영희의 북한관은 보다 우호적이고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리영희는 “경제적 부와 심한 불평등적 배분구조를 잠시 접어둔다면, 남쪽 국민의 생활수준이 북쪽 국민의 그것을 능가하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쪽은 반대의 철학으로 나라 만들기를 서두른 결과, 높은 민족적 자존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도덕적 생활양식, 그리고 동포애가 감도는 순박한 인간형 등의 사회를 실현한 것으로 주장한다. 많은 공평한 관측자·방문객들에 의해서 그 측면의 사회적 선(善)은 증언되고 있다”(‘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1994)고 주장했다. 리영희는 ‘순박한 인간주의’라는 수사(修辭)로 전체주의적 절대독재, 체제위기와 극단적 빈곤을 외면했다. 이것은 계몽된 이성이 아니라 지적 위선(僞善)일 뿐이다.

리영희는 한국의 진보좌파에겐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라는 1970~1980년대 독재시기의 우상을 파괴한 ‘사상의 은사’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모순 그 자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오류가능성 배제한 독단

먼저, 그의 이성은 반(反)우상의 광채로 빛나지만 그 구조는 ‘오류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어 독단에까지 이른다. 그의 이성은 계몽이라는 밝음과 도그마라는 어둠이 뒤섞여 있으나 근본주의적 경향에 치우친 우상파괴의 이성은 미국에 대한 총체적 거부, 그리고 대한민국 부정에까지 이른다. 정치적 박해와 맹목적 추앙의 한가운데에만 있었기 때문에 자기 논리에서 계몽과 도그마를 분리하는 ‘반성적 성찰’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으로 이해하자. 그러나 후인, 특히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이제 치열하게 이 문제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리영희의 우상파괴 사상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대상에 따라 그 비춤의 강도와 각도가 달랐다. 리영희의 사상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조명하는 데에는 명쾌하고 탁월했다. 그러나 그의 고발은 이데올로기적 비판이나 부정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미, 반대한민국이라는 부정의 도그마를 만들어 낸다. ‘천하대란’을 야기한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전체주의적 수령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잣대로 관대함을 넘어서 낭만적 애정까지 내비쳤다. 리영희 사상은 이중 잣대 속에서 축조된 것이다. 리영희를 따르는 후인들은 리영희의 이중 잣대 들기를 넘어서야 한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계몽의 이성’으로 부정하고 문화혁명기 중국과 북한은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관대해진다면 이는 이성도 계몽도 될 수 없다. 그것은 도그마인 것이다. 한국의 진보좌파세력이 반미 근본주의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되기를 기원해 본다.

리영희는 누구

고 리영희(李泳禧)씨는 1929년 12월 2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났다. 1942년 경성공업고등학교,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안동공립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 연락장교단 통역관으로 입대했다. 전역 후인 1957년 합동통신에 외신부 기자로 입사해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전쟁, 박정희 군부독재와 유신체제를 비판하며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10년 12월 5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진보좌파 지식인들의 ‘사상의 은사’로 불렸다. 주요 저서로는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이 있다. 2005년에는 자서전 ‘대담’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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