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유재일
일러스트 유재일

아버지가 중풍 환자인 황모(52·경기 성남시)씨는 가족력 때문에 자신도 혈압으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담배를 피는 등 안 좋은 생활습관도 쉽게 고치지 못했다. 지난해 초, 연이은 송년회 자리에서 술을 과도하게 마신 게 마음에 걸린 황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혈당 112㎎/dL, 혈압 140/90㎜Hg, 혈액 내 중성지방 280㎎/dL, 대사증후군이란 판정이었다. 의사로부터 “대사증후군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황씨는 이후 금주와 금연을 결심했다. 6개월이 지난 현재, 그는 정상에 가까운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주부 이모(47·서울 동작구)씨는 비만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라”는 딸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다가 혈액 내 중성지방 300㎎/dL, 혈당 185㎎/dL, 허리둘레 92㎝인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평소 자녀들이 남긴 밥을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고, 빵이나 과자를 입에 달고 사는 등의 식습관이 문제였다. 하루 음식물 총 섭취량의 80% 이상을 탄수화물이 차지할 정도로 탄수화물에 중독돼 있던 그는 의사로부터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당분을 지방으로 축적하니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을 듣고 식습관을 고쳐 나가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권모(15·서울 강남구)군도 최근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고, 늦은 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챙겨 먹은 국수나 라면 등의 야식이 문제였다. 운동 부족과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인해 권군의 중성지방·혈당·HDL콜레스테롤 수치는 각각 350㎎/dL, 300㎎/dL, 24㎎/dL로 나타났다. 8개월 정도 병원에서 중성지방과 혈당을 낮추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틈틈이 병원을 찾아 운동치료를 받은 덕에 이젠 대사증후군이 많이 개선됐다.

“한국인, 서양인보다 대사증후군 위험 높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사증후군 유병률(有病率)은 26.1%이며, 30세 이상 성인 3명 중 한 명꼴로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2008년 한 해 동안 대사증후군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400만명에 이르고, 진료비는 6283억원이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대사증후군이란 대표적 생활습관병이다. 대사증후군은 심뇌혈관질환의 중요한 위험인자로 알려진 비만·고지혈증·당뇨병·고혈압 등의 전조증상을 한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최근 식생활을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복부비만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학계에선 이 복부비만을 대사증후군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복부비만 때문에 복강 내에 지방조직이 많이 쌓이면 지방산이 증가하는데, 이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거나 혈관이 수축되고, HDL콜레스테롤이 감소하면서 고지혈증(이상지혈증) 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진단 기준도 까다롭다. 대사증후군을 진단하는 5가지 증상은 허리둘레와 혈액 내 중성지방, 혈중 HDL콜레스테롤, 혈압, 공복혈당이다. 이 5개 증상 중 3개 이상에서 이상 수치가 나오면 대사증후군으로 본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모든 증상이 질병 수준에 해당하는 정도의 수치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증상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 결국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걸리거나 심장병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하게 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임주원·조비룡 교수팀이 65세 이상 한국 노년층 778명을 대상으로 대사증후군 유병률을 조사했는데, 남성 41.7%, 여성 63.2%로 미국(남 40%·여 43%), 프랑스(남 12.5%·여 11.3%), 이탈리아(남 26%·여 30%) 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주원 교수는 “우리나라 노년층은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이나 오메가3를 덜 섭취하기 때문에 대사증후군 위험에 서양 사람보다 더 많이 노출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메가3와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는 식이요법이 대사증후군의 예방과 관리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증후군은 질병 시한폭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당뇨병·고혈압·뇌혈관질환·심장질환 등으로 사망한 경우가 암으로 인한 사망보다 더 많다. 대사증후군은 이러한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대사증후군이 있으면 온몸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위험하다. 혈중 인슐린이 증가하면서 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이 수축돼 고혈압이 나타나며, 심혈관 내에 죽상동맥경화증을 일으켜 협심증·심근경색증·뇌경색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사증후군이 이와 상관없어 보이던 다른 여러 질병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중 대사증후군은 간내담도암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립암연구소 타니아 웰젤 박사팀은 암 병력이 없는 사람 19만5953명, 원발성 간암 환자 3649명, 간내담도암 환자 743명을 대상으로 대사증후군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암 병력이 없는 사람 중에서는 17.1%가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원발성 간암 환자의 37.1%, 간내담도암 환자의 29.7%가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간내담도암은 간을 지나는 담도에 암이 생기는 것으로, 재발이 잘되고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이다. 그동안 간내담도암은 담도염, B형·C형 간염, 염증성 장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대사증후군도 그 위험 요인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청력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팀은 40~64세 남녀 8115명을 성별과 대사증후군 여부에 따라 구분한 뒤, 그룹별로 청력장애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사증후군을 가진 여성에게서 건강한 여성보다 저음역 청력장애가 2.5배, 고음역 청력장애는 1.9배 더 많게 나타났다. 남성은 대사증후군 그룹의 청력장애가 저음역·고음역 모두 약 1.5배 많았다. 최희정 교수는 “혈당이 높으면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 달팽이관이 손상되거나 청신경염이 잘 생기고, 혈압이 높으면 내이의 혈관 탄력성이 떨어져 혈관이 좁아지면서 청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경우 백내장의 위험도 높다. 극동대 이은희 안경광학과 교수팀은 정부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60세 이상 남녀 2120명을 대상으로 대사증후군과 백내장 발생률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약 25%가 백내장을 앓고 있었고 정상인은 15%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사증후군으로 인해 체내 산화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저하됐기 때문에 백내장 발병 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대사증후군은 요로결석 발병 위험을 70% 이상 높이기도 하며(서울아산병원 연구), 남성의 경우 정자의 질을 떨어뜨려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자체 전문관리센터 찾으세요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조정아(여·50)씨는 올 초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조씨는 최근 병원에서 고혈압 처방을 받았다. 이메일에는 “2012년부터 건강검진 결과를 분석하여 대사증후군 가능성이 있는 대상자를 상대로 상담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뿐만 아니라 한국건강관리협회도 올해를 대사증후군 예방을 위한 건강수치 기억하기 캠페인의 해로 정했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대사증후군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지난 1월 5일 서울역 KTX 광장에서 ‘대사증후군 오락체조 플래시몹’ 행사를 갖기도 했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25개 전 자치구 보건소에 ‘대사증후군 전문관리센터’를 설치해 시민들이 대사증후군 무료 검진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거주지와 가까운 보건소에 전화해 예약한 뒤, 10시간 정도 공복 상태를 유지해 보건소를 방문하면 혈압·혈당·허리둘레·중성지방·콜레스테롤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검사 결과에 따라 대사증후군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면 건강 상태에 따른 식단, 운동법 등도 알려준다. 이후에는 해당 위험인자 개수에 따라 3~5개이면 매월, 1~2개인 경우 연 3회, 위험인자가 없더라도 연 2회 맞춤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검사도 주기적으로 받아 자신의 건강 상태 변화 확인이 가능하다.

보건소를 찾을 시간이 없는 직장인의 경우 서울시의 ‘찾아가는 대사증후군 건강상담실’을 이용하면 된다. 건강매니저·의사·간호사·영양사·운동처방사·행정 요원으로 구성된 상담 팀이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검진부터 결과 확인까지 바로 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시 김경호 복지건강실장은 “지난해 대사증후군 관리 서비스 이용 시민이 30만 명에 육박했다”며 “대사증후군의 위험성 및 대사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생활법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러한 대사증후군 관리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대사증후군 관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대사증후군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우므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사증후군 막으려면 유산소운동

생활 속에서 대사증후군을 막기 위해서는 복부비만부터 없애야 한다. 복부비만만 없애도 고혈압·당뇨병 등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증상이 함께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복부비만을 일으키는 내장지방은 대사증후군의 뿌리인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 특히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복부비만에 취약한데, 같은 허리둘레라도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복부비만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국립보건연구원 대사영양질환과 김원호 연구관은 “운동을 할 때는 숨이 가쁘고 등에 땀이 날 정도로 해야 한다”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 심장 근육에 자극이 안 가므로 몇 시간을 걸어도 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운동은 1주일에 150분 이상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운동 후 그 효과는 48시간 이상을 넘지 않으므로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해야 한다.

대사증후군 예방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심폐지구력을 키우는 유산소운동이고, 유산소운동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신체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무직 종사자는 하루에 걷는 정도가 5000보 미만으로 활동량이 매우 적으므로,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이동하고 점심식사는 사무실에서 먼 곳을 택해 걸어가는 등의 방법으로 하루에 최소 7000~8000보는 걷도록 한다.

하지만 평소에 운동을 제대로 해서 복부비만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식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대사증후군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특히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팀이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20세 이상의 정상 체중인 3050명의 음식 섭취량과 대사증후군의 관련성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음식 섭취량 중 탄수화물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은 대사증후군 위험이 다른 여성보다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중이 정상이더라도 탄수화물 섭취량을 전체 식사량의 최대 60%까지로 제한하고 단백질 섭취를 늘려야 한다.

탄수화물·탄산음료는 적

탄산음료 섭취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탄산음료를 매일 한 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사증후군이 생길 위험이 44% 정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원호 연구관은 “탄산음료에 들어있는 당분에 길들여지면 낮은 당도에는 미각이 반응하지 않아 자꾸 더 단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며 “단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고지혈증 및 고혈당 위험이 높아져 대사증후군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청소년들은 현재 중년층이 청소년이었을 때에 비해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를 많이 섭취하는데, 이 청소년들이 중년층이 됐을 때 대사증후군 발생률은 충격적으로 높아져 있을 듯하다”며 “우리 몸의 세포는 중학생 이전의 생활습관을 모두 기억해두기 때문에 이 시기에 비만이었던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비만으로 이어져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모유수유를 하면 대사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다. 약 5개월간 모유수유를 하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대사증후군 위험이 40% 정도 낮고, 모유수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은 더 낮아진다. 모유수유가 대사증후군을 예방하는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유를 수유하면 HDL콜레스테롤의 혈중 수치가 높아지고 복부에 지방이 덜 쌓이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금연과 절주도 대사증후군 예방을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하루에 담배를 1갑 피우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24% 높아지며, 1갑 반을 피우면 79% 높아진다. 술도 대사증후군의 원흉인데, 식욕을 자극하고 체내 지방 연소를 막기 때문에 복부비만을 악화시키며 심혈관질환 위험을 함께 높이기 때문이다.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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