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의 김치찌개 전문 ‘광화문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훈씨.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서울 광화문의 김치찌개 전문 ‘광화문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훈씨.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뉴욕을 찾는 한국인에게 명소가 한 곳 더 늘었다. 맨해튼 52번가 웨스트 346번지에 있는 단지 식당(Danji Cuisine). 단지는 작은 항아리라는 뜻이다. 2010년 12월 개업한 이 식당은 한식당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10월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미슐랭 스타는 별 세 개가 최고인데, 단지는 별 한 개를 받았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경영자라면 누구나 ‘미슐랭 스타’를 받기를 갈망한다. ‘미슐랭 스타’는 권위의 여행정보지 미슐랭 가이드가 부여하는 최고의 식당이라는 세계 공인서. 한국은 물론 미국, 캐나다, 영국에 수많은 한식당이 있지만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었다. 그만큼 미슐랭의 심사 기준이 까다롭다는 뜻인 동시에 한식의 수준이 세계적 기준에 못 미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의 셰프 오너(Chef Owner)는 김훈(39)씨. 미국 이름 후니 킴(Hooni Kim). 한국 태생으로 세 살 때 우리나라를 떠나 런던에서 7년, 뉴욕에서 29년을 살았다.

단지의 메뉴는 심플하다. 전통한식과 현대한식. 17가지 메뉴를 전통과 현대에 반반씩 나눈다. 이를테면, 여름철에 전통 메뉴를 주문하면 음식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조리된다. 골뱅이무침-육회-고추파전-잡채-안창살구이-갈비찜-부대찌개 순으로 나온다. 현대 한식은 생선회와 초장, 오징어 튀김과 와사비 드레싱, 매운 닭날개, 불고기·돼지고기 슬라이더 순이다. 음식값은 점심이 10~16달러. 물론 전통한식과 현대한식의 구성은 날씨에 따라 바뀐다.

김훈씨가 지난 1월 17일 한국을 찾아 열하루(1월 17~27일) 동안 머물다 돌아갔다. 김훈씨는 왜 그 바쁜 단지를 비워두고 한국에 왔을까? 그는 단지 인근에 또 다른 한식당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규모는 예약을 받을 수 있는 50석 정도. 현재의 단지는 좌석 수가 36석에 불과해 예약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단지에서 식사하려면 1시간 이상 줄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방한은 새로 준비하는 식당의 콘셉트를 잡기 위한 맛 탐방 기행이었다. 변호사이자 식도락가인 부인 장혜연씨가 동행했다.

미슐랭 스타 셰프 오너가 찾은 한식당은

기자는 김씨를 1월 24일과 25일 두 번 만났다. 24일 인터뷰는 숙소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점심 시간 직전에 이뤄졌다. 25일에는 김씨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다락정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인터뷰를 했다. 한국을 세 살 때 떠났지만 그의 한국말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다만 조금 미묘한 표현이 필요한 데서 그는 조금씩 망설이다 영어를 섞어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한국에서 제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찾아가서 먹을 수 있는 날짜는 7일간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있어요. 음식은 실제로 맛보는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그에게 지금까지 어떤 식당을 가보았는지 물었다. 그는 더듬더듬 식당명을 나열했다. 하동관(명동), 광화문집(광화문), 장호왕곱창(순화동), 대도식당(왕십리), 새마을식당(영동시장), 우래옥(을지로), 봉산집(압구정동), 삼겹살집(신천동), 참숯불이 닭을 만나는 날(양재동), 광장시장 등. 물론 장소와 상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그는 한식(韓食)을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게 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하루 평균 다섯 끼를 먹으며 찾아다닌 음식점은 의외로 소박했다. 이들 음식점의 공통점은 뭘까? 이들 식당 중에는 품위와 분위기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안내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그러나 맛 하나만큼은 서울에서 정평이 난 곳들이다. 그는 일부러 한정식당을 찾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여러 번 가봤지만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역시 찾아다니는 게 귀찮지만 한 가지 요리로 승부를 하는 집이 맛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김훈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궁금증이 폭발할 것이다. 한식 세계화의 선구자는 서울의 대표적 맛집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곰탕으로 유명한 하동관은 대(代)를 이은 매니아를 갖고 있다. 청계천 입구에 있다가 수년 전 명동으로 옮겼다.

“3년 전에 처음 하동관을 가봤습니다. 그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이번에 또 갔지요. 사실 하동관에 가면서 긴장했어요. 높아진 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처음 맛보았을 때의 만족도를 다음에 또 가면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가서도 역시 만족했어요. 처음 맛 그대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광화문집은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는 김치찌개 전문집이다. 옥호가 광화문집이다. 허름하기로 치면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러나 김치찌개 맛은 모든 구차함을 상쇄시킨다. 그는 광화문집에 대해 “콩나물 반찬 진짜 맛있던데요. 계란말이도 좋았고요”라면서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는 우래옥도 아내와 함께 가봤다. 그는 “우래옥은 물냉면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비빔냉면도 아주 맛있던데요”라고 말했다.

“한결같은 맛이 중요”

새마을식당은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점포를 늘렸다. 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시장 내에 있는 새마을식당에 가서 김치찌개 맛을 경험했다.

“2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이 식당 김치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또 그 집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실망했습니다. 맛이 그 맛이 아니었어요. 식당은 퀄리티(질)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봉산집은 차돌박이와 된장찌개로 유명하다. 용산구 삼각지에서 시작해 현재는 압구정동점과 삼성동점을 두고 있다. 그는 저녁 시간에 압구정점에 가서 네 명이 3인분만 시켜 먹고 금방 나왔다고 했다.

“저는 고기를 파는 식당에 가면 주방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냉동고에서 미리 썰어 얼려 둔 차돌박이를 꺼내는 걸 보았어요. 부엌에서 써는 게 아니라. 쉬는 날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보통 네 명이 가면 고기를 6인분 시키는데 3인분만 시켰지요. 해동과 냉동을 반복하면 고기는 질겨지고 맛이 없어지잖아요. 맛을 딱 보면 차이가 많이 나요.”

그와 일행은 봉산집에서 나와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요리사 반대한 어머니 1년간 말 안 해

김씨는 맨해튼에서 식당을 차린 지 1년 만에 어떻게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었나. 김훈이 누구이기에 이런 꿈 같은 일을 해냈을까.

그는 1972년 서울 태생이다. 세 살 때 주영 한국대사관에 취업한 어머니를 따라 런던으로 건너갔다. 김씨는 열 살 때까지 런던에서 살았다. 김씨가 열 살 때 어머니는 대사관 근무를 그만두고 패션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왔다. 그에게도 뉴욕 생활이 펼쳐졌다.

미식가나 셰프들은 대개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거나 아버지가 식도락가라는 점이다. 김씨는 이 점에서 예외적이다.

“어머니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보니 집안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맨해튼의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때 맛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미식가로서의 경험이 식당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아내도 식도락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이어 코네티컷대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의대 과정 1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몸이 아팠다.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냥 쉴 수가 없어 취미 차원에서 맨해튼의 프랑스요리학교에 등록했다. 학원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그는 요리사야말로 평생을 바쳐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사를 포기하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이후 어머니와 아들은 1년간 말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요리학교에서 이론을 배우며 식당에서 실전을 익혔다. 이때 선택한 곳이 대니얼 레스토랑. 2004년부터 2006년 말까지 대니얼에서 근무하며 부주방장까지 올라갔다. 대니얼은 미슐랭 스타가 세 개인 식당.

- 대니얼에서 배운 것 중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인가. “요리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 요리가 과학이라니 무슨 말인가. “예컨대 프랑스 사람들은 소갈비를 찔 때 오븐에 넣고 162.7도에서 2시간45분 찌라고 책에 나와 있다. 그렇게 해야만 육질이 가장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수만 가지 요리법을 과학화해 책으로 만들었다.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구전으로 전수했다.”

- 음식이 과학이라면 손맛은 필요없는 것 아닌가. “아니다. 책에 나온대로 하는 게 요리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손맛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어본 뒤 ‘오늘 마늘 맛이 어제만 못하다’라고 판단하고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손맛이다.”

- 왜 같은 재료를 가지고 레시피대로 하는데 맛이 다른가. “그것은 재료와 양념의 상태가 매일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손맛을 과학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야만 매일 요리사들이 똑같은 맛의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식당은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셰프 오너-셰프 드 퀴진(주방장)-수 셰프(부주방장)-셰프 드 파티에(팀장)-코미(팀원)-프레 쿡(야채 손질 담당).

- 셰프 오너와 주방장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셰프 오너는 주방, 홀 종업원 등 모든 식당 종사자들의 리더다. 원래 Chef는 인디언 추장을 뜻하는 Chief에서 유래했다. 추장은 그 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리더다.”

- 주방에서 노련한 셰프들과 일하면서 뭘 배웠나. “의대에 다닐 때는 교수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대니얼에 들어가서는 요리사들이 의사들보다 훨씬 존경스럽게 다가왔다. 그들은 과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을 해나간다. 음식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대니얼에서 훈련을 받은 뒤 일본 식당인 마사(Masa)로 갔다. 마사는 맨해튼 컬럼버스 서클 지역에 있는 식당으로 음식 값이 미국에서 가장 비싸다. 1인분이 450달러로 시작한다. 마사는 미슐랭 투 스타였다. 그는 마사에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일하면서 식재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사에서 사용하는 생선과 야채와 과일은 모두 일본에서 공수해온다. 생선은 스키치 생선시장에 매주 평균 3회 비행기로 보내온다. 마사에서 쓰는 재료는 100% 일본에서 보내온다. 생강부터 모든 양념을 다 일본에서 가져온다. 나는 생강을 먹어보고 그 재료 차이를 실감했다.”

- 마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마사에 가니 3개월 이상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대니얼에서 배운 것을 전부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요리사들끼리 대화는 영어로 하지만 셰프로부터 지시를 받을 때는 전부 일본어였다.”

마사는 그가 있을 때 미슐랭 스타 3개의 레스토랑으로 격상됐다.

- 생물학과 의학을 공부한 경력이 요리에도 큰 도움을 줬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음식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훌륭한 셰프가 되려면 재료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재료로 음식을 창조할 수 있다. 양파는 열을 가하면 왜 부드럽게 되나, 색깔이 왜 변하나, 즙이 왜 빠져나가나 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은 대학 시절 실험실에서 배운 것들이었다.”

성공의 비밀은 기본 지키는 것

서울 삼청동 다락정에서 식사하는 김훈씨. 그는 “국물이 부드럽고 만두가 맛있다”고 평했다. ⓒphoto 조성관
서울 삼청동 다락정에서 식사하는 김훈씨. 그는 “국물이 부드럽고 만두가 맛있다”고 평했다. ⓒphoto 조성관

그가 식당 단지를 차린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외국인 셰프 친구들이 한식을 먹고 싶어할 때 맨해튼에 자신 있게 데려갈 식당이 없었다. 한식을 즐기고 싶어하는 미식가들에게 한식의 진수를 보여주려 차린 게 단지다. 출발점이 다르면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김씨는 메뉴 구성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인은 날씨 변화에 따른 음식 선호가 민감하다. 하지만 미국인은 날씨가 더우나 추우나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먹는 경향이 있다. 날씨에 따라 사람 몸이 원하는 음식이 다른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단지 메뉴를 날씨에 따라 계속 바꾼다. 예컨대, 더운 날씨에 식욕이 떨어진 사람에게 골뱅이무침은 미각을 자극해 식욕을 돋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한식 세계화에 관심을 많이 쏟았다. 한식재단까지 만들어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다. 가장 본능적이며 주관적인 음식 문제를 정책으로 추진한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다.

김씨는 “한식당에 셰프 오너가 많아지면 (한식 세계화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추가한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슈퍼마켓 재료를 쓰지 않는다면 한식은 고급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식당을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로만 생각해서는 한식이 고급 음식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뉴욕에서 아시아 음식은 인정받지 못했다. 아시아 음식은 ‘값싼 음식’으로 간주됐다.

“일본 요리가 맨해튼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셰프 오너가 등장한 이후다. 그전에는 식당으로 돈 벌고 나면 식당 문을 닫고 다른 걸 했다. 셰프 오너가 자기 이름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면서 서서히 일본 식당은 프랑스 식당과 동격으로 인정받았다.”

미슐랭 스타 후에도 가격 안 올려

단지가 개업한 지 1년도 안 되어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유는 심플하다. 값비싼 최고 재료를 쓰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성공의 비밀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과 기본에 있다. 그러나 이런 상식과 기본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대목에선 셰프 오너인 그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요리사들은 조미료를 쓰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에 조미료를 많이 쓰면 좋은 재료가 필요없어진다. 참기름 하나를 보자. 중국산 참기름은 6~8달러 하고, 한국산 NH참기름은 30달러 한다. 손으로 찍어서 먹어보면 차이를 안다. 중국산은 끝맛이 쓰고, 한국산은 끝맛이 달콤하다. 참기름 하나만 보더라도 셰프 오너가 그 맛의 차이를 보면 중국산을 못 쓴다.”

단지가 미슐랭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은 이후 단지에서 식사 한번 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한 정보 없이 ‘미슐랭 스타 식당’으로만 알고 오는 사람 중에는 단지가 화려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단지는 세계에 있는 미슐랭 스타 식당 중 가장 값이 싸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이후 값을 안 올렸다. 가격을 올리고 싶은 유혹도 느꼈지만 그러면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우리 식당 분위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갈 때는 손님들이 음식 맛에 기분 좋아서 나간다.”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셰프 오너’라는 표현을 수없이 사용했다. 셰프 오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면 한식은 금방 고급 음식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논리다.

“나는 손님들이 음식을 통해 나를 만나고 느끼기를 희망한다.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에서는 식당 이름보다 셰프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나는 내 이름을 걸고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훈씨는 교포 1.5세대다. 한국에 부채의식이 전혀 없다. 그런 그가 한식의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그는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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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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