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푸틴 러시아 대통령 photo AP<br></div>(우) 러시아의 상륙작전용 공기부양정 무레나. 북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photo 조선일보 DB
(좌) 푸틴 러시아 대통령 photo AP
(우) 러시아의 상륙작전용 공기부양정 무레나. 북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3월 4일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Putin·60)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최대 현안인 ‘불곰사업’ 재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불곰사업은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과 연계한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이다. 불곰사업이 양국 정부의 현안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푸틴 총리가 대통령 재임 때인 2007년 서울에서 양국 간 불곰사업 재개에 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 동안 아무 진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문제는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3차 MOU 체결 후 중단

1994~2000년 1차, 2001~2006년 2차 불곰사업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는 방산과 군수 분야의 협력 시대를 열었다. 국방부는 2006년 이후 3차 불곰사업을 통해 기존 사업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3차 불곰사업은 양국 간 이견으로 중단됐다. 이 시기는 푸틴이 대통령에서 총리로 물러난 시기와 일치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 2007년 12월 한·러 방산군수공동위 위원장이 3차 불곰사업 MOU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한국에 군사기술 이전과 첨단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한국이 3억2000만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0년 10월 장수만 방위사업청장이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 MOU 이행을 전제로 한 군사협력프로그램에 서명하면서 3차 불곰사업이 진척을 이루는가 했지만 양국 재무당국 간 대금지불 방법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답보 상태에 빠졌다. 당시 장 청장의 방문은 3차 불곰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방문에서 러시아제 무기도입 등 3억2000만달러 규모의 가계약이 체결됐다. 무기도입 목록에는 무레나(상륙작전용 공기부양정) 3척과 전차 장갑차용 열상 야간조준경 등이 포함됐다. 1~2차 불곰사업을 통해 우리 군이 성능을 확인한 무기들이었다. 특히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이면계약이 포함됐었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수조원을 투입해도 10~15년 이내에 개발이 힘든 기술 도입”이라며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절대 이전이 되지 않는 기술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3차 불곰사업은 대금 지불 방법과 양국 재무당국의 이견으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는 한국이 제공한 경협차관과의 연계 문제가 개입돼 있다. 한국 측은 차관을 현금으로 전액 상환받겠다는 입장이며, 러시아 측은 이를 현물(무기)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가 제공하는 기술이전에 대해서 러시아는 우리 측에 현금 제공을 원하는 반면 우리는 이를 현금과 차관으로 상계하겠다는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푸틴 당선자는 대통령 재임 시절 한·러 정상회의 때마다 불곰사업을 최대 현안으로 삼았었다. 지난 4년 동안 총리 재임 때에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수차례 당부했었다. 러시아는 2011년 6월 핵심기술 이전에 대한 기술개발(R&D)에 관해 러시아 정부의 승인을 완료했지만 양국은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는 5월 푸틴의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양국 정부가 다시 불곰사업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수조원 가치의 무기 기술도 포함

1991년 노태우(盧泰愚) 정권 당시 한국이 당시 소련과의 수교를 목적으로 제공한 경제협력 차관은 14억7000만달러(1조6566억원)였다. 당시 10억달러는 현금으로, 4억7000만달러는 전자제품 등 소비재 차관으로 제공했다. 불곰사업은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 14억7000만달러 중 7억1000만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무기로 상환받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을 1999년까지 전액 돌려받기로 했지만 러시아가 상환을 미루면서 회수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까지 1차 만기 도래한 경협차관의 일부인 4억6000만달러를 1998년까지 돌려받기로 했고, 현금이 아닌 현물로 상환하겠다는 러시아 측 입장을 일부 수용했다. 이는 러시아제 무기 도입으로 이뤄졌으며 이것이 바로 국방부가 추진한 불곰사업의 시작이었다.

1994년 1차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에서 전차와 장갑차, 휴대용 대공화기, 헬기 등을 도입했다. 미국제 무기체계를 갖춘 한국군에 러시아 무기가 도입된 첫 사례였다. 하지만 1994년 이후 만기가 도래한 차관에 대해서는 거의 10년 동안 상환방식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경협차관은 이자가 늘어 2003년 22억40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결국 양국 정부는 차관 문제가 한국과 러시아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그해 채무 재조정에 나섰고 상환 협상을 마무리했다. 당시 협상안에 따르면 한국은 러시아에 미상환 원리금 22억4000만달러 중 6억6000만달러를 탕감해주는 대신, 15억8000만달러에 대해서는 이자율(리보+0.5%)과 함께 2025년까지 전액 상환받기로 합의했다. 이 중 2억5000만달러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현물로, 13억3000만달러는 2007년부터 현금 상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현물 상환은 2차 불곰사업으로 이어졌고 T-80U 전차와 BMP-3 장갑차, 무레나 등 6종의 무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2006년 무레나 도입을 끝으로 현물 상환은 끝났다. 불곰사업도 자동 종료됐다.

2차 불곰사업이 종료되면서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차관은 13억3000만달러가 남았다. 양국 정부가 2003년 체결한 협정에 따라 한국은 2007년부터 매년 두 차례 3500만달러씩 현금으로 돌려받고 있다.

무기 부품 후속 지원이 최대 고민

러시아는 2003년 채무 조정 합의 이후 최근까지도 나머지 경협차관을 방위산업 물자로 상환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실제로 지난 2004년 모스크바정상회담과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차관을 현금이 아닌 현물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2003년 당시 양국의 협정안을 빌미로 삼았다. 당시 양국은 ‘2007년부터 상환하는 차관에 대해 현금 상환을 원칙으로 하지만 양국이 합의할 경우 현물로도 상환할 수 있다’는 부속조항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현물상환을 고집하고 있는 러시아는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APEC정상회담에서나 그전에 우리 측에 어떤 식으로든 불곰사업 재개 요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강경 성향의 푸틴이 불곰사업을 강력히 추진하려 한다면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푸틴의 등장으로 러시아와의 불곰사업은 어떤 식으로든 재개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맞는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는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서나 방산 협력을 위해서도 3차 불곰사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있다. 경협차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러시아에 제공된 차관을 반드시 현금으로 돌려받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에 차관을 제공하고 돌려받지 못했다는 국민의 인식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데다 차관 제공으로 인한 그동안의 비난 여론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와 외교부의 요청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불곰사업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곰사업으로 인한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이미 도입한 무기의 후속지원 사업이다. 이들 무기에 대한 부품이 수년 동안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무기운용 체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차와 장갑차, 공기부양정(무레나) 등 도입된 무기의 경우 수년 동안 부품 조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소유 군(軍)에 대한 전력 차질을 가져왔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부품 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전차나 장갑차는 물론 대전차유도탄 메티스-M 등 나머지 무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군이 도입한 무기 중 최고로 평가받는 무레나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부품 도입이 이뤄지지 않아 해군의 전력 유지에도 차질을 빚었다. 그나마 미국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도입해 왔던 일부 소모품(700만달러 분량)마저도 러시아 무기수출회사 로스아바론엑스포르트가 공급을 중단하면서 무레나 부품의 국내 도입은 완전 단절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3차 불곰사업에서 무레나 추가 도입을 하면서 부품 도입까지 포함시키는 일괄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레나 도입 등을 위주로 한 3차 불곰사업 재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곳곳에서 나오는 중요한 이유가 이같은 후속지원 사업의 필요성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북한 역시 러시아로부터 무레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국방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무레나를 제조하고 있는 러시아의 방산 도시는 하바로프스크 북쪽의 콤소몰스크 나아무르이다. 아무르강 상류에 있는 이곳은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 2002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을 직접 찾아가 시찰한 것도 북한 군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최첨단 군수품 무레나의 도입을 남북이 동시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레나의 작전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방증한다. 러시아 고위 국방 관계자는 “2010년 북한이 서해상에서 저지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남북한이 경쟁적으로 도입 전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며 “군수 전문가들과 (남북한 무레나 도입 경쟁을 어떻게 처리할지)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북한이 서해상 침투가 용이한 무레나를 도입하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구애를 강화하자 우리 외교부와 러시아 국방부를 상대로 무레나 추가 도입을 위한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

정부는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다양한 협력증진을 모색 중이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정부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3차 불곰사업 추진을 신중히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러시아로부터 무기 도입보다는 첨단무기 기술을 제공받고 싶어하지만 현물 상환이 불가피할 경우 무레나와 탐색 구조용 헬기, 상륙부대용 기동 헬기 등 첨단무기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푸틴 정권이 등장하면 우리나라의 러시아 천연가스·원유 등 자원 도입이나 북한 통과 가스관 건설,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연결 사업 등 2000~2008년 푸틴 재임기간 동안 추진했던 한·러 경협사업들을 재추진할 것이 자명하다”며 “이를 위해서 3차 불곰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러시아가 1990년 수교 이후 22년 동안 최대 사업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경협차관 제공과 불곰사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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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전 조선일보 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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