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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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초 전두환 정부 때 구 소련(러시아)이 ‘제주도를 해군기지로 쓰고 싶다’며 한국의 의사를 비밀리에 타진한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고, 제주도 남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태평양으로 내려가는 소련 함정의 정박과 정비, 식수와 식료품, 노무지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죠.”

지난 3월 2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재향군인회관에서 만난 고명승(77) 성우회장(예비역 대장)은 이 대목에서 말을 아꼈다. 고 회장은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있을 때 그 전에 있던 실무 보안부대장이 내게 보고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실례는 없을 듯 보였다. 그의 말이 맞다면 미·소냉전이 한창일 때 냉전의 한 축이던 소련이 제주도에 먼저 주목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뤼순(旅順) 등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헤맨 러시아 해군으로서는 군침을 흘릴 만했다. 고 회장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 3월 23일에도 문정일 전 해군참모총장,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이갑진 전 해병대사령관 등 성우회원 20여명과 제주도를 찾았다.

육군사관학교 15기생인 고명승 성우회장은 청와대 경호실 차장, 9사단(백마부대) 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보안사령관, 제3야전군 사령관으로 일했다. 1989년 대장으로 예편한 그는 지난해 12월 2100여명의 예비역 장성을 회원으로 둔 성우회(星友會) 제1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서사해전 승패, 거리가 결정적”

2100여명의 예비역 장성을 대변하는 고 회장은 “우리 군은 육해공군이 일사불란하게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절대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우회원들은 한 시대 안보의 축을 담당했던 군 원로들”이라며 “김정일, 김정은을 추종하는 반한(反韓) 세력이 아니고선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원료와 원자재, 완제품의 90% 이상은 제주 해역을 통해 들어오고 나갑니다. 또 7광구에는 70억톤의 천연가스, 1000억배럴의 원유, 230여종류의 해저 자원이 매장돼 있다고 합니다. 우리 집 앞의 자원을 그대로 방치할 수 있습니까.”

그는 최근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획정을 앞두고 분쟁 소지로 떠오른 이어도도 화제로 삼았다. “12노트 속력의 함정으로 제주도에서 이어도까지는 8시간이 걸립니다. 목포에서는 15시간, 부산에서는 23시간이 걸려요. 중국 동해함대사령부가 있는 닝보(寧波)에서는 18시간, 일본 사세보(佐世保)에서는 21시간이 걸립니다.” 그는 “이어도 일대의 영토분쟁과 해상분쟁을 관리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곳이 제주도고, 강정마을”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에는 일선 부대 지휘관을 지낸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고 회장은 작전거리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1974년 중국과 베트남이 서사군도(西沙群島)를 두고 벌인 ‘서사해전’을 예로 들었다. 서사군도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336㎞, 베트남 기지에서 445㎞ 떨어져 있다. 중국은 하이난다오에서 이륙한 공군기의 공중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은 공군기의 작전반경 제약 때문에 공중지원을 못 받았다. 결국 베트남은 초계함 1척이 침몰하고, 함정 3척이 대파됐다. 반면 중국은 소해정 1척이 파손되는 선에서 그쳤다. 당시 승전으로 중국은 서사군도는 물론 남사군도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는 “개전 초 중국은 서사군도에 먼저 도착해 우세한 위치를 점해서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론자의 주장에 대해 고 회장은 강한 반론을 폈다. “우리 해군 2함대가 주둔하는 평택해군기지에서 중국 북해함대가 주둔하는 산둥반도까지 350㎞예요. 제주도에서 중국 동해함대사령부가 있는 닝보까지의 거리 500㎞보다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제주보다 중국과 더 가까운 평택해군기지도 없애야 하는 겁니까.”

그에 따르면 평택해군기지 역시 작전 반응에 대한 고려 때문에 이전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당시 함대사령부가 있던 인천 월미도를 시찰하고 ‘당장 함대를 평택으로 옮기라’고 지시했어요. 월미도는 입구가 막히면 함대가 기동할 수 없거든요.” 그는 “제주해군기지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중국과 일본 자극론을 펴는 사람들은 왜 우리를 자극하는 북한이나 중국의 해군기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느냐”며 “우리는 자극하면 안 되고, 남들은 우리를 자극해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접국을 자극할까봐 해군기지 건설을 안 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며 “안보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청정지역 군항 진해를 보라”

환경 훼손을 이유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측에 대해서도 “환경이 국가 안보보다 중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는 “해군기지가 있는 경남 진해는 양항, 미항, 어항이자 청정지역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는 하와이, 샌디에이고, 시드니, 요코스카 같은 외국의 항구도 하나하나 예로 들며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기둥을 박다 보면, 일시적으로 시멘트물이 바다에 흘러들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99%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1%의 파괴는 감수해야 합니다.” 그는 “경부고속전철 건설 때 도롱뇽 때문에 1조원을 허비했는데 결국 어떻게 됐느냐”며 “정치권도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고, 먼 훗날 우리 후대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주장을 펴고 있는 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강력 성토했다. 특히 한명숙 대표, 정동영 의원, 이정희 대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을 반대한다” “대한민국 국민인지를 묻고 싶다”는 격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한명숙 대표한테는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자는 공개서한까지 보냈는데, 회신도 안 해왔다”고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는 “현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면서 사소한 문제를 만들어낸 데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고 회장은 “국책사업과 같은 큰일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부대 지휘관 때 경험을 예로 들며 “방향을 잡을 때는 밤을 새워 난상토론을 하더라도,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무자비할 정도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학자가 누굽니까. 남덕우씨예요.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추진할 때 남덕우 총리가 반대했어요. 돈도 없고, 능력도 안 된다고요.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남 총리를 물러나게 하면서까지 서울올림픽 유치를 밀어붙였어요. 지금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서울올림픽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지금 이만큼 도약했겠습니까.”

그는 “제주해군기지는 이 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후대에 남겨줘야 하는 선물”이란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국민 세금을 가지고 위정(爲政), 위민(爲民)을 한다는 사람들이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제주도민들을 선동하고, 데모꾼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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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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