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남아도는 그 햇빛이 난 필요하단 말이오.”

“그럼 널어놓은 옷 같은 게 보일 텐데, 제 아내가 좋아하겠어요?”

“설사 그쪽 집 팬티가 보인다 해도 난 괜찮소.”

해머 소리에 잠을 깬 레오나르도가 자기 집 맞은편 벽에 창을 내려는 이웃 빅토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성공한 디자이너 레오나르도가 영화 제목처럼 정말 ‘성가신 이웃’ 빅토르를 만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쿠루체트 하우스(Casa Curuchet)는 1954년 세계 4대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아르헨티나 라플라타에 완공한 작품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2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쿠루체트 하우스 외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 내에 있는 카펜터센터(Carpenter Center for the Visual Arts·1963)가 유일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에 가장 많은 업적과 영향력을 끼쳤다. 본래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1920년 프랑스로 귀화하여 파리의 세브르가 35번지에 작업실을 연 후 거의 평생을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건축이나 도시계획뿐 아니라 가구 디자이너나 화가(Pusism·순수주의)로서도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근대건축의 5원칙’ ‘모듈러(Modular·인체를 기초로 한 비례체계)’ 등 이론적 바탕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저서도 남겼다. 스위스 10프랑짜리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실려 있을 정도니 유럽에서 그의 지명도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건물

그가 남긴 영화 속 배경인 쿠루체트 하우스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옥상정원, 프로미네이드(건축적 산책로), 차양 등 코르뷔지에의 건축적·공간적 특징이 잘 담겨 있다. 본래 이 건물은 1948년 외과의사였던 쿠루체트 박사(Dr. Pedro Curuchet)가 자신이 일할 병원과 거주할 주택을 동시에 담아내는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코르뷔지에에게 요청한 것을 계기로 건축됐다. 영화 속 레오나르도가 일하는 장소가 본래 쿠루체트 박사의 병원 자리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이 건물은 코르뷔지에의 작품으로 소개되며, 건물을 구경하러 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레오나르도는 골머리를 앓는다.

레오나르도의 디자인 사무실로 이르는 경사로.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암체어 뒤로 보인다. 여기서 사용된 코르뷔지에의 ‘프로미네이드(건축적 산책로)’는 본래 용도였던 병원에서 더욱 기능적 진가를 발휘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디자인 사무실로 이르는 경사로.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암체어 뒤로 보인다. 여기서 사용된 코르뷔지에의 ‘프로미네이드(건축적 산책로)’는 본래 용도였던 병원에서 더욱 기능적 진가를 발휘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에 대한 이야기다. 건물의 한 요소에 불과한 창이 이렇듯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그 창과 관련된 사람들 때문이다. 해머 소리에 화가 단단히 난 레오나르도가 처음 만난 이웃 빅토르. 헉! 산만 한 덩치에 목소리까지 허스키한 것이 그냥 점잖게 풀어야 할 모양이다. 하지만 다소 무식해 보이는 빅토르(일면 상당히 여우스럽다)는 일조권, 즉 햇빛을 위해서라면 레오나르도에게 설득과 회유, 아니 필요하다면 아양이라도 떨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

사건은 ‘창’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방어선이 중요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자존심도, 그리고 꼬장꼬장한 부인에 대한 위신도 끝장이다.

이 귀여운 두 이웃의 끝없는 분쟁 와중에도, 창은 공사 중인 채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창은 빅토르만의 레시피인 ‘멧돼지 절임’을 건네주는 소통구이고, 레오나르도의 딸 롤라를 위해 빅토르만의 손가락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위험에 처한 이웃을 향해 빅토르가 망설임 없이 달려가게 한 감시 카메라의 역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창을 내야만 하는 빅토르로선 덩치와 상관없이 약자의 위치에서 베풀기만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생명 없는 건축물의 단순한 요소를 넘어, 창을 통해 맺어지는 인간 관계가 이 영화의 건축적 주제다.

빅토르도 빅토르지만, 쩨쩨하게 마누라 핑계, 장인 핑계도 모자라 건축가, 변호사 다 동원해 창문을 막으려는 레오나르도에게도 눈길이 가는 건, 이웃 빅토르뿐 아니라 가족인 딸 롤라와 부인에게까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소외당하며 소통부재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측은지심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 음악에 푹 빠진 레오나르도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빅토르의 춤 솜씨는 영화에 방점을 찍는다. 건축적으론 바뀌어가는 창의 재료와 폭과 높이와 위치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 덕에 누릴 수 있는 재미와 반전과 여운이 영화의 맛을 더한다.

몇 안 되는 보석 같은 건축영화

2010년 제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같은 해 제4회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을 뿐 아니라, 선댄스영화제에서 드라마 부문 촬영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극중 레오나르도가 디자인했다는 비에날레 암체어가 보이는 거실 모습.
극중 레오나르도가 디자인했다는 비에날레 암체어가 보이는 거실 모습.

‘극적인 혹은 시적(詩的)인 건축 흐름’이라는 해석이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이 건축물은 책을 통해서 보든 직접 아르헨티나로 날아가서 보든 절대 영화만큼의 시각적 효과는 거둘 수 없으리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책 속의 멋진 사진 혹은 아르헨티나의 잘 보존된 건축물에선 그 공간이나 기능, 혹은 다양한 요소들과 관계를 맺는 매일매일의 일상을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에선 코르뷔지에의 작품 구석구석이 배우의 역할 및 여러 가지 행태와 관계를 맺으며 표현되니 어찌 이만큼 완벽한 건축적 대리체감을 할 수 있으랴? 몇 안 되는 보석 같은 건축영화 중 하나이다.

쿠루체트 박사가 코르뷔지에에게 일을 맡긴 것도 대단하지만 어떻게 집과 병원을 하나로 만들 생각을 했으며, 또 코르뷔지에 역시 어떻게 이역만리의 이 작은 프로젝트를 맡기로 결심을 했을까 궁금해진다.(사실 코르뷔지에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한번도 쿠루체트 박사를 만난 적도 현장을 와본 적도 없다.) 걸핏하면 밤에 불려나가는 ‘외과의사’의 고충이 이런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한 것은 아닐까?

또한 코르뷔지에는 고객의 항의와 소송사건도 여러 번 경험했다. 오죽하면 롱샹성당을 준공하고 처음으로 주임 신부께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을까. 그가 고객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본인이 주창한 근대건축의 5원칙이 생각보다 잘 먹히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먼 이국땅에서 날아온 편지가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병원을 짓는다는 프로젝트의 당위성, 큰 공원에 마주한 대지의 입지, 그로 인해 옥상정원과 차양에 의미를 더해주는 천혜의 조건…. 이런 것들이 먼 땅의 작은 프로젝트를 맡게 한 계기가 아닐까?

강병국 동우건축 소장·건축영화제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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