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파는 사람 - 세 번째 인물

셀러(seller) 개그맨 김준호
셀러유형 시스템 빌더
대표상품 코코엔터테인먼트
최신상품 꺾기도 이모티콘
시스템 빌더의 셀링 포인트
1) 휴머니즘으로 콘텐츠 인재를 관리하라.
2) 올드 플랫폼에서 벗어나 뉴미디어를 이용하라.
3) 고가의 지식시장을 공략하라.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이 남자, 가까이서 보니 상태가 멀쩡(?)하다. 할머니, 바보, 조폭, 촐랑대는 사부 등 무대에서 많이 망가져서 그렇지 알고 보면 ‘개그계의 조각 미남’이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개콘의 맏형, 개그맨 김준호(37) 말이다.

“안녕하세요? 코코엔터테인먼트의 CCO 김준호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에 적힌 CCO는 홍보담당임원(Chief Communication Officer)도, 최고광고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도 아니다. 자칭 최고코미디책임자(Chief Comedy Officer)란다. “명함 줄 때마다 제가 세계 최초의 CCO라고 강조해요. 물론 짐 캐리나 주성치가 있지만 그 사람들 명함을 제가 못 봤으니까 그냥 우기면 됩니다.(웃음)”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그가 만든 회사 이름이다. ‘코미디계의 SM’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1년 전 세웠다는데 제법 규모가 크다.(SM은 이수만이 세운 국내 최고의 연예기획사다.) 요즘 잘나가는 KBS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준현·김원효, 개그우먼 박지선 등 개콘의 간판스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개그계 선후배 등 추종세력(?) 40여명과 연습생들까지 60여명이 소속돼 있는데 그중에 30여명이 현재 개콘에 출연하고 있다. CCO 김준호가 빠지면 개콘이 안 돌아갈 정도다.

그는 현재 개그맨으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몇 년 전 도박 사건으로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요새 ‘감수성’ ‘꺾기도’ 등을 통해 녹슬지 않은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딴사람이 하면 안 웃긴데 그가 하면 웃기는 매력적인 연기를 한다”는 서수민 개콘 PD의 말이 딱 맞다. 나이 37살에 “안녕하십니까~불이” 같은 무리수를 둬도 사람들은 기꺼이 뒤로 넘어가 준다. 17년간의 개그맨 생활에서 쌓은 내공과 연기력 때문이다. 조금 떴다 싶으면 예능이나 버라이어티로 빠져나가는 요즘, 10년 넘게 개콘을 지키고 있는 그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듬직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좋아하지만 구매자는 없는 개그시장

기획사 차려 도전장 내민 개콘의 맏형

콘텐츠 생태계에서 ‘개그’는 상당히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개콘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코너들이 늘어나면서 20~30대 젊은 시청자도 대거 끌어들였다. 개콘이 국민 프로가 되면서 코미디의 브랜드와 위상도 한층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괴리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개그를 좋아한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사지는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개그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산업이 겪고 있는 잔혹한 현실이다. 요즘에야 규제가 강화돼서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음반시장이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가면서 한동안 불법 공유 사이트가 기승을 부렸다. 당시에는 CD를 사는 사람들이 바보였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이 급감하면서 음반시장은 한때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 뒤에 합법적으로 음원을 파는 사이트가 생겨났지만 정작 공들여 콘텐츠를 만든 이들은 수익의 30%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단지 플랫폼이라는 이유만으로 70%를 가져가는 대기업의 횡포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미경 원장과 인터뷰 중인 김준호씨.
김미경 원장과 인터뷰 중인 김준호씨.

음악은 나은 편이다. 개그는 저작권이라는 게 아예 없다. 일주일 꼬박 고생해서 코너 하나 올리면 그걸로 끝이다. 방송국 출연료가 얼마나 되겠나. 물론 개콘에서 확~ 뜨면 인생도 확~ 펴진다. 각종 CF며 예능을 섭렵하면서 단기 수익을 짭짤하게 올린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인기가 시들해지거나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면 언제든지 방송에서 밀려난다. 그 뒤로는 생계가 막막해진다. 그동안 무대에서 쌓아뒀던 경험과 콘텐츠는 사장되고 생계에 밀려 치킨집을 차린다. 이렇게 각개전투를 하고 있으니 코미디산업의 양적·질적 성장은 더디기만 하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그처럼 기획사를 차렸다. 상설 극장에서 공연도 하고 음반도 내고 영화도 찍었다. 그러나 컬투, 갈갈이패밀리 등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직까지 개그시장은 희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돈을 내지는 않는 시장, 왜 그는 이런 무모한 일에 뛰어든 것일까.

“저는 돈 욕심이 별로 없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뛰면 앞으로 100억, 200억원도 만들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 돈이 저 자신을 채워줄 것 같지는 않아요. 피곤해도 이 일이 훨씬 즐겁거든요. 개그 바닥은 이미 다 아니까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들어보니 고생깨나 한 것 같다. 초반에 사업용어도 모르고 회계도 모르니까 비즈니스 하면서 무시도 많이 당했단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다. 좋은 시스템 속에서 개그맨을 키우고 지원하는 개그계의 ‘제리 맥과이어’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 파는 콘텐츠 인재들과 소통 위해

매주 ‘월개관’ 개최

김준호. 그는 시스템 빌더(System-builder)다. 콘텐츠시장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시스템 빌더는 세 가지를 키워야 한다. 인재·콘텐츠·시장. 다행히 그는 인복이 좋았다. 아니, 스스로 인복을 만들었다. 김준호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개그계 선후배 60여명을 규합했으니 인간성이나 리더십은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모으는 게 전부는 아니다. 콘텐츠 기업의 인재들은 일반 회사원들과는 다르다. 생각을 파는 창작집단이기 때문에 다들 개성이 뚜렷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다들 튀고 싶어하지만 개그는 특성상 공동체 예술에 가깝다. 빵빵 터뜨리는 사람 곁에는 항상 받쳐주는 누군가가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함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공존해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을 묶기 위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휴머니즘’이다. 콘텐츠 집약 회사일수록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포인트다.

“휴머니즘과 비즈니스를 같이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어렵죠. 제가 회사를 해보니까 인간 관계를 조율하는 게 가장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월개관이라고 ‘월요일 개그맨들의 관계’라는 회의도 만들어서 허심탄회하게 서로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는 개콘 선후배들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집합과 구타도 없앴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개그의 생명력인 ‘튀는 아이디어’가 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매니지먼트 수익 분배도 바꿨다. 보통은 6:4나 7:3으로 나누지만 코코엔터테인먼트는 15%만 가져간다. 그 정도 액수면 코디네이터 비용 주고 나면 사실 남는 건 없다. 그런데 회사 운영은 어떻게 하냐고? 그는 애초부터 매니지먼트로 돈 벌 생각은 없었단다. 대신 그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콘텐츠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재·콘텐츠·시장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없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다. 질 좋은 무료 강의 콘텐츠가 워낙 많으니 유료 강의라면 한발 물러서는 대중들과 어떻게 거래할 것인가. 일요일마다 개콘을 보면서 만족하는 이들의 지갑을 어떻게 열 것인가. 내 앞에 앉은 CCO도 한창 비슷한 고민 중이다. 늘 TV에서 보여주던 개그 본능은 잠시 접어둔 채, 온전히 고뇌하는 사업가의 표정이다.

“일본에 요시모토 흥업이라고 100년 된 코미디 기업이 있어요. 웃음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회사인데 1800명의 개그맨이 소속돼 있어요. 전국에 극장과 아카데미를 갖고 있고 일주일에만 40개 프로그램을 만들죠. 워낙 시스템이 잘 돼 있다 보니 노후연금까지 나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요즘 열심히 연구 중이에요.(웃음)”

개그로 제품 홍보와 네이밍 컨설팅까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로 한국 개그 품격 높일 것

요즘 그는 개그라는 원천 소스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첫 번째는 공연 콘텐츠다. 현재 ‘더 코미디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을 돌고 있다. 여기에 장소와 형식을 바꾼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5월부터 한강 유람선에서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마땅한 공연 콘텐츠가 없었던 유람선 측 반응은 꽤 좋은 편이다. 서커스와 코미디가 결합된 새로운 쇼도 준비 중이다. 코미디언 출신들로 저글링, 마술을 익혀 태양의 서커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던 실력파 ‘옹알스’를 영입해 스토리를 붙이고 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콘텐츠. 얼마 전에는 카카오톡에 ‘꺾기도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개그 UCC인 ‘GCC’도 그의 차세대 사업 모델이다. 빵 터지는 개그 동영상을 제작해 유통시키는 것이다. 방송국이라는 올드 플랫폼에서 벗어나 뉴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전략이다.

세 번째는 BTL 광고 콘텐츠. 개콘이 뜨면서 매장용 홍보 동영상, 각종 행사에 단골로 초청되고 있다. 개콘의 인기 코너를 패러디해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해주는 식이다. 삼성과는 아예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함께 움직인다. 동영상의 경우 자체적으로 찍어서 완제품을 납품한다. 요즘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품 컨설팅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과자 이름을 만드는 네이밍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요. 옥동자바처럼 개콘 캐릭터로 이름 만드는 게 아니고, 그 제품만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거죠.”

유머라는 원천 소스로 콘텐츠 컨설팅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개그시장을 만드는 동시에 코미디의 사회적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그 정점은 내년에 개막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국제적인 코미디 축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호주에는 있지만 아시아권에는 아직 없다. 최근 합동공연으로 친분을 쌓은 일본 요시모토와 올해 8월에 시험적으로 이벤트를 개최하고 내년에 3일 동안 공식 페스티벌을 열 생각이다. 그가 추구하는 콘텐츠의 고품격화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방향이 맞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지식시장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생각의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개그라는 콘텐츠도 얼마든지 고가의 지식 콘텐츠와 융합될 수 있다. 강의시장만 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펀(fun) 경영, 유머스피치 강사로 뛰고 있다. 기업 및 관공서가 웃음과 긍정에 시장가격을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요즘 잘나가는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준현이나 김원효가 ‘개콘에서 배우는 창의성의 비밀’ ‘직장을 개콘처럼 즐겁게 만드는 법’으로 8시간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인기 만점이지 않을까.

시스템 빌더의 길은 험난하다. 무엇이든 없는 길을 만드는 사람은 상당한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실패는 통과의례와 같다. 특히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 콘텐츠와 사람이 있었던 유명 개그맨들도 마지막 시장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로 탄탄한 집을 지은 사람은 언제나 역사를 바꿨다.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요시모토의 100년 역사를 50년으로 압축하겠다”는 젊은 CCO 김준호의 야망이여. 꼭 이루어지기를.

김미경

스피치 전문가 및 동기 부여 강사.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원장,‘W.insights’ 대표. 연세대 음대 졸업,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MBC ‘희망특강 파랑새’, KBS ‘아침마당’ 등 방송 출강. 저서로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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