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정찰총국장(가운데)이 2007년 2월 제7차 남북정상급회담 당시 대표단을 이끌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김영철 정찰총국장(가운데)이 2007년 2월 제7차 남북정상급회담 당시 대표단을 이끌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전 해외총책임자 최진호(가명)씨는 주간조선과 만나 북한 대남공작부의 조직과 공작원 교육 실태에 대해서도 자세한 증언을 했다. 최씨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산하의 대남공작부서로는 대외연락부(225국),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 작전부가 있다. 평양시 대성구역 용남동에 위치하고 있는 이 기관들은 ‘중앙당 3호 청사’라고 불린다.

이 가운데 35호실과 작전부는 2000년대 중후반 군 계열의 대남공작기관인 정찰국, 적공국과 통합되며 정찰총국으로 승격됐다. 최씨는 “정찰총국의 대남공작 능력은 한층 강력해졌다”며 “앞으로 도발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에선 노동당, 군 계열 말고도 보위국 산하 3국(대외정보조사국)에서 공작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국내공작원·해외공작원·전투원 세 부류

북한의 대남공작원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 파견되는 국내공작원, 해외에서 활동하는 해외공작원, 공작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전투원이다.

북한의 대표적인 공작원 양성기관으로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과 ‘봉화정치학원’이 있다. 두 기관은 대남공작부서 중에서도 한국과 해외에서 북한 노동당의 지하당을 구축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대외연락부 소속이다. 김일성정치군사대학에선 국내공작원이, 봉화정치학원에선 해외공작원이 교육받는다.

한국에 파견되는 국내공작원들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만 17~18세의 학생과 대학생 중에서 선발된다. 출신성분이 좋고 신체조건과 학업성적, 개인생활에 문제가 없는 자들이 우선적으로 뽑힌다. 이들은 시군당, 도당 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간부부에서 공작원으로 결정된다.

국내공작원들은 김일성정치군사대학에서 4년제 교육 과정을 거친다. 이곳에선 봉화정치학원에 비해 육체적 단련을 많이 시킨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김일성정치군사대학 과정을 마치면 해외 연수를 보내 외국어를 습득하게 하고 해당 국가에 대해서도 공부하도록 한다. 5년 정도 걸리는 이 연수 과정에선 향후 한국으로의 침투를 위해 ‘신분세탁’이 이뤄지기도 한다. 파견된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국적 취득은 이미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작원들의 협조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부부 공작조로 활동할 대상들을 따로 선발하여 결혼을 시키기도 한다.

봉화정치학원은 해외공작원들을 육성한다. 여기서 육성된 공작원들은 해외에 나가 해외에서 포섭된 이들을 교육시킨다. 최씨는 “민혁당 사건의 김영환을 교육시킨 것도 봉화정치학원 출신 공작원들”이라고 밝혔다.

봉화정치학원 교육생들은 주로 현직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선발된다. 이들에 대한 교육 과정은 6개월 단기 강습부터 1년제, 2년제, 3년제까지 있다. 평양 동쪽 인근 용추동의 임야지대에 위치한 봉화정치학원은 1962년 설립됐고 약 264㎡ 규모다. 최씨는 “봉화정치학원의 지하터널에는 한국 생활을 그대로 접할 수 있는 교육관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한 정치인 포섭 시뮬레이션 게임도

봉화정치학원에선 ‘김일성동지 혁명역사’ ‘김일성주의 지하당건설이론’ ‘김일성주의 정치경제학’ ‘김일성주의 철학’ ‘지형학’ ‘사격’ ‘수영’ ‘태권도’ 과목을 배운다. 이 중 핵심과목은 ‘김일성주의 지하당건설이론’. 북한 노동당 조직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 이를 테면 지하당의 성격과 임무, 조직과 운영에 대해 배운다. 과거 한국에서 벌어졌던 대남공작활동과 실패한 공작활동의 원인과 교훈이 서술된 책자가 교재로 활용된다. 이 과목에 대한 시험에는 이론뿐 아니라 실기도 있다. 가상의 인물을 포섭해 지하당 조직을 결성하고 실제 운영해 보는 방식으로 시험이 진행된다. 한국의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포섭 시뮬레이션 게임이 벌어지는 것도 이 과정에서다. 최씨는 “모든 교육과정 끝에 시험을 보는데 다른 과목은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김일성주의 지하당건설이론’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원을 졸업할 수 없다. 당연히 공작원 자격도 얻지 못한다”고 했다.

봉화정치학원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 기상, 조기 운동, 아침식사, 오전 강의, 점심식사. 오후 강의, 산악 행군, 저녁식사, 자유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강의는 교수와 공작원의 일대일 교육 방식이다. 교육 대상자들은 학원 내에서 이동할 때에도 짙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검은 우산을 들어 신분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씨는 “이동 중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에는 길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이동해야 한다”며 “때문에 자신이 누구와 함께 교육받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식사도 혼자 한다. 가로로 긴 타원 모양의 식당에는 작은 방 하나마다 1인용 식탁이 배열돼 있다. 바로 옆방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음식물을 씹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최씨는 “그런 데서 긍지감이라는 게 생긴다”고 말했다. “매끼 고기 반찬이 나왔다. 생선 역시 최고급 수준이었다. 품질 좋은 맥주를 무한정으로 마실 수 있으며 과일·음료수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최씨는 “북한 사회에서 공작원은 최고의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통로”라고 말했다. 그는 “공작원은 노동당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며 “당중앙회 정치위원들이 타는 것과 같은 벤츠를 개인별로 지급받는다”고 했다.

북한에서 공작원의 출신성분은 ‘혁명가’로 분류된다. 최고의 신분이다. 혁명가의 자녀들은 가고자 하는 대학에 무조건 입학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설날과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엔 김정일의 명함이 붙은 선물세트가 집으로 배달된다. 과일, 술, 곶감이 가득한 선물상자다.

매년 1회 충성맹세 혈서

공작원들은 북한 내에선 통행에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놀이공원에 돈을 내지 않고도 입장할 수 있고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봉급도 일반인들의 3~4배 이상 많다.

이 모든 혜택은 공작원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하는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공작원이 되면 당적과 주민등록은 말소된다. 공작원의 소속기관이 당증을 보관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그래도 공작원이 된다는 것은 북한에서 최고의 명예와 긍지로 여겨지는데 공작원은 매년 1회 충성맹세 혈서를 써서 본부에 바친다”며 “혈서는 설날이나 국경일 중 하루를 택해 명주천에 쓴다”고 했다.

최씨에 따르면 공작원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 지지는 김일성의 철칙이었다. 아무리 경제 사정이 안 좋아도 공작자금 지원은 아낌이 없었다. 최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경제·외화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졌지만 대남공작부서들은 흡수된 지하당 성원들의 공작자금 지원에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장해줬다”고 말했다. 한국의 한 출판물 창간호에 김일성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가 자그마하게 실리게 하는 데 40만달러의 공작금이 지급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남공작기관의 고위급 인사가 일본 자금조달책에게 수차례 다녀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진 1980년대 말부터는 대남공작부서의 공작자금 예산은 배정이 됐더라도 30% 정도만 지급됐다”며 “주로 일본에 있는 조직원들로부터 공작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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