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지난 6월 2일 대구에서 또 한 명의 청소년이 아파트 아래로 몸을 던졌다. 대구에서만 최근 6개월 새 열 번째 청소년 자살 시도이다.

인구 10만명당 31.2명, 하루 평균 42명, 2003년 이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대한민국의 자살 현주소이다. 2009년 기준 OECD 평균 자살률이 10만명당 11.2명, 2위인 헝가리가 19.8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OECD 대부분 나라의 자살률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일하게 2000년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마비에 이어 자살이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대두되긴 했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자살 유가족이다. 자살은 한 명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남긴다.

전문가들은 한 명의 자살 뒤에 직접적인 정신적 외상을 입는 자살 유가족이 평균 여섯 명이라고 보고 있다. 2010년의 경우 자살 1만5566명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유가족이 9만3396명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발생한 자살 유가족을 따지면 100만명이 넘는다.

“가슴에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안아볼 수 있다면, 작은 대답이라도 한번 들을 수 있다면 이 찢어진 가슴이 조금이라도 메워질 텐데. 왜? 왜? 왜? 이런 일이…, 엄마보다 훌쩍 커버린 너지만 내겐 늘 아가란다. 아장아장 종종걸음으로 지금도 뛰어와 안긴다. 가슴에 통증이 서리서리 저며온다. 입을 악물어 울음소리마저 터지지 않는다. 가슴이 아파 숨조차 멎을 지경이다. 네가 남기고 간 향수를 살짝 뿌려 본다. 너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두어야 하기에 아끼면서…, 너의 동생을 생각해 눈물을 닦고 표정을 감춘다. 너를 내 머릿속에서 멀리하고 엄마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현실이 너한테 너무너무 미안하다.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가야 미안하다. 네 곁에 있어주지도, 아픈 곳을 만져주지도, 그 무서운 것을 함께 해 주지도 못해 정말 미안하다. 너의 가슴과 마음은 얼마나 아팠니. 아빠도 조카 결혼식장에 다녀오더니 시멘트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너를 부르며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우시더구나. 엄마는 그 누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아 보고 싶다. 미치도록…, 그리고 미안하다.”

2009년 8월 당시 27세로 자살한 딸을 가슴에 묻은 50대 엄마가 한국생명의 전화에서 펴낸 자살 유가족 수기집에 남긴 글이다.

자살 유가족의 충격은 강간·전쟁과 비슷

질병·사고 등으로 인한 죽음과 달리 자살 유가족은 죄책감, 고립감 등 복합적인 감정의 혼돈을 겪게 된다.

‘자살을 막지 못했다’ 또는 ‘자살에 원인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주홍글씨’처럼 낙인 찍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고립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 등이 뒤섞여 혼란에 빠진다. 또 유가족들에게 자살자의 선택은 자신들과의 관계를 분리시키고 단절시킨 것처럼 느껴진다. 일반적인 사별은 함께 울고 애도하면서 슬픔을 극복하는 반면, 자살은 쉬쉬하며 숨기기 급급하고 장례 절차도 빨리 끝내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고의적 외면’ 속에서 서둘러 죽음을 덮고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탓에 슬픔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자신의 동굴 속에 고통을 가두고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살 후유증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존 매킨토시 교수는 책 ‘자살과 그 후유증’에서 “자살 유가족은 강간이나 전쟁, 그리고 범죄적 희생 같은 깊은 정신적 외상을 남기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과 공통적인 심리 증상을 겪는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국립정신보건원은 “자살 시도자 4명 중 1명꼴로 가족 중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고 발표했다. 자살 유가족의 병리적 문제에 관련한 논문(2006년 정상혁, 2007년 홍현숙)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가족들의 경우 진료비는 2.9배 증가, 정신과적 질환 관련한 의료 이용은 4.6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자살 유가족은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함께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유가족 자살 위험도 일반인의 6배

한국생명의전화 자살 유가족 지원센터의 최경미 주임은 “유가족의 자살 위험도는 일반 사람의 6배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특히 유자녀의 경우는 학습될 위험이 높다. 성장해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 방법 중의 하나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 자살 유가족에게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안 어울린다. 평생 안고 가는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남은 가족 간에도 ‘자살’이라는 단어는 금기시된다. 입 밖으로 한번도 꺼내지도 못하고 억압된 상처로 인해 수십 년 후에 정신적 와해를 겪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 이모(46)씨는 대학을 졸업한 해에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 고혈압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중 승진을 둘러싼 직장 내 문제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큰딸인 이씨를 비롯해서 다섯 딸을 남긴 채였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던 다섯 딸의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될까 더 두려웠다. “이렇게 가시면 우리들 결혼은 어떻게 하라고…” 하는 원망도 컸다. 이후 가족들 간에도 ‘자살’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행히 다섯 딸은 모두 결혼해서 평범하게 잘 살았다. 마흔 살이 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동생 중 두 명도 마흔이 넘으면서 우울증을 호소했다. 이씨는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속에 억압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 입에서 아버지 이야기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우울증이 유전되는 것은 아닐까 평생 두려워하면서 살았어요. 병원의 도움을 받고서야 아버지 자살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감추고 싶은 마음, 원망과 분노 등이 수십 년 동안 나를 짓눌러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씨는 기자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이씨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은호 교수는 이와 관련 주간조선에 “학계에서도 궁금한 부분이다. 우울증, 성격장애 환자 중 트라우마가 뒤늦게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40대까지 겉으로 보기엔 잘 지내다가 특정 스트레스 상황이 됐을 때 한 번에 확 터져나온다. 어떻게 그동안 잘 살았을까 싶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명의전화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종철 신경정신과 원장은 “40대는 인생의 고비이다. 특히 유자녀들에게는 부모가 자살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부모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서 잠복된 상처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처 치유의 첫걸음은 침묵 깨는 것

자살 유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이 건강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깨는 것이 상처 치유의 첫걸음이다. 진실을 숨기는 순간 트라우마가 된다”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최근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됐다. 미국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너무 이른 작별’(궁리출판사)이다. 저자 칼라 파인 역시 남편의 자살을 경험했다. 1989년 성공한 내과 의사였던 남편은 마흔네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진료실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발견됐다.

‘도대체 그는 왜, 무엇 때문에’, 끝없는 의문과 죄책감, 분노, 고립감을 겪으면서 저자가 처음 시도한 것은 ‘침묵으로부터 벗어나기’였다. 남편 자살 한 달 만에 자살 유가족 지원모임에 참석한다. 저자는 그곳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유족들과 함께 남편의 죽음을 말하고, 마음껏 슬퍼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우리 이야기가 잊히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면서 “자살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자살에 대한 오명 때문에 어두운 장막 뒤로 가려지고, 수치심 때문에 침묵 속에 묻힌다.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자살한 아내, 회사 창문으로 뛰어내린 형,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죽은 엄마 등 생각하기조차 싫은 경험들을 서로 나누고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결코 이상한 사람도 홀로 남겨진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라고 밝히고 있다.

‘너무 이른 작별’을 번역한 김운하씨는 주간조선에 “유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자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 왜 자살을 해서는 안 되는지, 존재의 정당성이 나온다. 미국은 자살 유가족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다양한 치유모임이 활성화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유가족이란 존재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선진국은 개인적인 자살이 많은 반면 한국은 비정규직, 독거노인 자살 등 사회적 자살이 많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자살자와 유가족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고 자살률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자조모임 나오세요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자살 유가족에 대한 존재를 잊고 있었다. 아니 외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들도 최근 들어서야 자살 고위험군인 유가족이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자살 예방의 중요한 부분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올해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 2020년 10만명당 자살률 18명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 유가족 지원을 위한 구체적 정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현재 유가족 지원과 관련해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자살예방센터와 한국생명의전화이다.

한국생명의전화는 2010년 5월부터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면서 희망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매주 한 번씩, 총 7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조모임 지원을 맡고 있는 최경미 주임은 “회당 평균 5~8명이 나온다. 사실 유가족들이 모임에 나오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명의전화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모임에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수면장애 등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바늘로 수백 군데를 찌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를 많이 받는다. 부인과 두 딸을 자살로 잃은 남편이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도 나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처음 모임에 참석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외과적 상처도 치료할 때 아프듯이 처음 상처를 드러낼 때는 더 아프게 마련이다. 단계별 과정 중에서 ‘고인 떠나 보내기’도 중요하다. “도대체, 왜?”와 같이 자살의 이유에 집착하는 대신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도록 한다. ‘왜 죽었는지’보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하고 ‘부끄러운 죽음’이 아닌 ‘자랑스러운 삶’으로 고인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현재 자조모임은 자살 유가족 출신 상담사(‘촉진자’라고 불림) 1호인 박인순씨가 이끌고 있다. 최경미 주임은 “같은 아픔을 가진 유가족이 이야기할 때 훨씬 효과가 크다. 일본의 경우도 유가족들이 활동을 하면서 자살률을 낮추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유족들 관리가 자살 예방의 중심

서울시자살예방센터(블루터치 핫라인 1577-0199)에서도 유가족 지원 자조모임인 ‘자작나무(자살유족의 작은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를 운영하고 있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 열린다. 자작나무를 이끌고 있는 최민정 사회복지사는 “2007년에 모임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참가자가 없어 유명무실했다. 지난해부터 지원자들이 조금씩 늘어 지금은 매달 5~8명씩 참석한다. 유가족들이 자신의 말을 하고 들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느낀다. 그동안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린다. 참여한 사람 중에는 10년, 15년 전에 아픔을 겪은 사람들도 있다. 제대로 애도를 못했기 때문에 상처가 깊고 오래가는 것이다. 밖으로 표현해야 치유가 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유족들을 상담하다 보면 자살 위험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유족들 관리가 돼야 자살 예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두 곳 모두 유가족들의 참여를 아쉬워했다. 강은호 교수는 “자살 유가족들이 병원에 상담받으러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처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만 ‘더 나아지는 것’이 고인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좋자고 치료받나’와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자살률 1위의 오명은 개인이 아닌 사회공동체의 책임이다. 자살자 뒤에는 비정규직 문제·독거노인·학교폭력 등 수많은 사회문제가 숨어 있다. 또 그 뒤에는 차마 울지도 못하는 유가족이 있다. 고통을 봉인한 채 괴로워하는 자살 유가족을 돌아보는 것이 곧 자살예방 대책이다. 그들이 침묵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애도의 장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편견을 깨고 그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황은순 차장 /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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