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9일 앞둔 지난 7월 9일 경기도 성남시의 모란 5일장. 서울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를 나와 100m 정도 걸어가니 33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 상인들이 펴놓은 수백 개의 파라솔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시장통 가장 오른쪽 길을 따라 쭉 이어진 게 식육견 취급 점포들이었다. 직접 걸어가며 세어보니 점포 수가 30여개쯤 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축 특유의 역한 냄새가 뜨거운 공기와 섞여 폐 속으로 들어왔다. 한 철장에 수십 마리씩 갇혀 있는 개들은 일제히 혓바닥을 축 늘어뜨리고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밑에 깔려 있는 개들은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 침을 흘리며 이미 ‘실신’ 상태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한 점포 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철장이 잠시 열리더니 개 한 마리가 점포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개가 급하게 짖는 소리에 이어 사람 비명과 닮은 날카로운 절규 소리가 들리자 밖에 있는 철장 안의 개들도 낮게 따라 짖으며 동요한다. 안으로 끌려갔던 개는 잠시 후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굳어진 상태로 머리에 검은 봉지가 씌워져 들려나왔다. 이 죽은 개는 개 철장 위에 다리를 위로 하고 거꾸로 놓여졌다. 철장 뒤 점포 앞에는 여러 개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식육견 50% 유통 모란시장에서는

성남 모란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식육견의 50%가 유통되는 최대 규모의 개 집하장이다.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개들을 소비자나 개고기를 파는 식당 주인들이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손님이 원하면 바로 전기장치로 도살해 판매한다. 개인 점포 말고도, 모란시장 내에는 도살 시설이 갖춰져 있는 소위 ‘계류장’만 7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란시장의 식육견 유통 상인들은 국내에서 거래되는 식육견 가격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란시장을 제외하면, 전라 지역은 식육견 경매장이, 경상·충청 지역은 재래시장이 주로 시세를 좌우한다. 동물자유연대(대표 조희경)가 내놓은 ‘한국개고기에 대한 고찰과 개고기 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성남 모란시장 외에도 서울 청량리시장, 황학동 중앙시장에 소규모로 식육견을 키우며 도살·판매하는 업체가 있다. 서울 영등포시장에서는 이미 도살된 개를 진열해 놓고 지육을 판다. 인천 계양동과 산곡동 일대의 ‘개 농장 단지’에도 10여개 업소에서 소규모로 개를 키우며 도살·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식용으로 도축하고 판매하는 것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무법이다. 현행 축산법 제2조에 개가 가축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가축의 가공·판매에 관련된 축산물 위생관리법 제2조에는 소, 닭, 돼지 등의 식용 동물 13종류만을 인정할 뿐 개는 제외되어 있다. 개의 도축·유통·판매에 대해 국가에서 관리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다.

개고기는 우리나라의 전통 식품이지만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바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이승만 정부는 미 군정의 압박에 못 이겨 ‘개장국’이라는 고유의 명칭을 ‘보신탕’으로 바꾸었고, 박정희 정부는 법적으로 규정한 식품 목록에서 아예 개를 빼버렸다. 88올림픽을 앞둔 전두환 정부는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해 도심 대로변 보신탕집 영업을 제한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 비난 서한이 날아들었고, 이때부터 동물보호단체의 개고기 식용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월드컵 직전 개고기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자 ‘식용개가 따로 있지 애완견을 먹지는 않는다’는 군색한 입장을 발표했다.

개고기 관련법은 뜨거운 감자

법적으로 식용동물 13종에서는 빠져 있지만 엄연히 소비되고 있는 개고기의 법적 지위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방역총괄과의 한 관계자는 “식품위생법에서는 개고기를 음식물로 간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식육견의 유통과 판매는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지만 도축된 개고기는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작년 9월 국회에 제출한 ‘식품위생법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삶은 개고기에서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돼 일부 개고기 식당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식약청은 “식용견을 사서 조리하는 접객업소를 대상으로 수거검사를 했는데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되어 행정처분했다”며 “식품위생법에서는 의약품을 제외한 음식물을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어 도축된 식용견을 식품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청이 식품위생법에 근거해 음식점의 개고기 위생 상태를 단속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서 냉장 시설 없이 좌판에 얼음만 깔아두고 파는 개고기는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더 비위생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식육견과 개고기 유통에 대한 법망은 뚜렷한 적용 기준도 없고 허점투성이인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집계하는 식육견시장에 대한 기본자료가 있을 리 없다. 정부는 개고기 문제만 나오면 동물보호협회부터 외국 언론까지 들고일어나는 현실이 부담스러워 유통 관리와 위생에 문제투성이라는 지적이 줄곧 있어온 개고기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발목까지 오는 방수앞치마를 입고 목장갑을 낀 남자가 작업장에서 나오고 있다.
발목까지 오는 방수앞치마를 입고 목장갑을 낀 남자가 작업장에서 나오고 있다.

식육견시장 관련 인구 100만명

우리나라의 식육견시장 규모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식육견 사육인의 영농조합법인 격인 대한육견협회 최영인 사무총장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한 해 동안 최소 200만마리 이상의 식육견이 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개고기를 주 음식으로 파는 보신탕집, 건강원만 해도 전국에 1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식육견을 키우는 농가도 전국적으로 2만여개로, 3000마리에서 5000마리 정도 키우면 대규모 사육 농장으로 친다. 한 마리당 사육에 필요한 최소 면적이 1㎡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규모 사육 농장의 경우 최소 5000㎡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부대시설까지 고려하면 평수로 따져 개 농장 하나가 2000여평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돈으로 환산한 전체 시장 규모도 상당하다. 2006년 정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춘진 의원(고창 부안·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에게 제출한 ‘식용견 위생처리를 위한 정책연구’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국의 식육견시장 규모는 1조4000억원대였다. 현재는 시장 규모가 당시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성남 모란시장의 식육견 유통 상인들은 현재 식육견시장 규모가 3조원이라고 추산했다. 업계에서 가장 큰손으로 알려진 성남 모란시장의 식육견 전문 유통업체 Y축산의 조모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우리 집에서 1년에 소득신고하는 금액만 6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식육견 유통구조에서 가장 아래 단계인 개 사육 농장에서는 30㎏(근수로 따지면 50근에 해당) 이상 식육견 한 마리를 중간 상인에게 넘길 때 대략 20만원 정도를 받는다. 중간 수집 상인은 사육장에서 사들인 식육견 한 마리당 몇백원 정도의 이문을 붙여서 성남 모란시장 등의 대형 상인에게 넘긴다. 수도권의 개 사육 농가 중에는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시장의 대형 상인들과 직접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들 대형 상인은 주로 전국의 보신탕집, 건강원에 도축한 개를 납품한다. 이러한 개 시장 유통구조에는 개소주와 같은 추출물 가공업자까지 관련돼 있다. 개 사육 농가 2만여곳과 유통담당 상인들, 음식점 업주, 관련 가공업자까지 합하면 식육견시장에는 100만명 이상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중국 수입개 유통?

이처럼 식육견시장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큰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관리 기관이 없다 보니 식육견의 공급처를 둘러싸고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당량의 개고기가 중국산 혹은 유기견이라는 소문이다. 모란시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전국 각지 거래처에서만 들여온다”며 이같은 소문을 근거 없는 것으로 일축했다. 물론 이들 상인이 파는 개의 원산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성남 모란시장 내에서 H 건강원을 운영하는 윤모씨는 “개의 원산지를 묻는 건 야채 장수한테 직접 재배해서 키웠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며 질문 자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대한육견협회에서 만난 한 개 사육업자는 “수요에 비해 이미 출하량이 넘치는 상황인데 굳이 그럴(중국에서 수입하거나 유기견을 유통시키는 것)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개 유통 과정에서 공급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개고기 등급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란시장에 가면 시세표에 ‘토종견’과 ‘육견’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오로지 근수뿐이다. 토종견은 20근에서 30근 사이의 무게를 가진 개를 지칭하고, 육견은 무게 50근 이상의 대형견을 의미한다. 50근 이상의 육견은 농장에서 일본 투견종과 누렁이를 종자 교배시킨 잡종이 대부분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고기에 대한 등급이 없고 무게로만 따지니 도축을 해 놓은 상태에서는 식육견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셈이다. 혹 유기견이 섞여 있다고 해도 상인이 ‘아니다’라고 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와 관련 대한육견협회 최영인 사무총장은 “만약 유기견이 개시장에 나오게 된다면 유기견 보호소나 여러 동물을 취급하는 경매장을 통해 유통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에 따르면 보호소로 유기견이 들어올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시켜야 하는데 사체를 소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은밀히 파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도 “(유기견을) 아무 데나 입양 보내거나 혹은 개고기로 되팔아서 이익을 챙기는 보호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음식물 폐기물 먹는 개

성남 모란시장 입구에서 가장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30여개의 식육견 취급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photo 김지은
성남 모란시장 입구에서 가장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30여개의 식육견 취급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photo 김지은

개의 위생 관리 실태도 매번 불거지는 문제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개들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먹는다. 그런데 이 잔반이 개가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양호한 상태인지 역시 확인하기 힘들다. 또 개 사육 관련법이 없어 정부에서 개 사육 농장에 대해서는 방역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는 점도 개 사육장의 위생 상태를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제주도 ‘악마 개장수’ 사진은 식육견의 유통 관리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식육견 사육자들은 개 먹이나 유통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육견협회의 최영인 사무총장은 “사육장 주위에 학교나 급식소, 대단위 공장의 큰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폐기물을 수거하시는 분들이 개 농장에도 좀 준다”며 “우리나라 소, 돼지 도축장이나 도계장에서 나오는 동물의 머리, 발, 내장 같은 걸 다 개가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은 “당일에 발생된 잔반을 바로 개들에게 먹이기 때문에 위생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전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폐기물 중 약 40%를 개가 소화하는 실정을 조명해 달라는 입장이다.

도축 단계에서의 위생 상태는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개 도축은 시장의 허름한 계류장이나 야산의 무허가 건물 같은 곳에서이루어진다. 한 마리당 도축비는 1만~2만원 선. 도축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컨테이너 안에서 망치와 전기봉, 불꽃 버너, 고압 호스 등을 사용해 정해진 법적 절차 없이 진행된다. 220V 전압에 연결된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해 개를 기절시킨 후 5분 이내에 털을 다 뽑아낸다. 지난 7월 9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야산에서 개 혈관에 물을 넣어 무게를 늘리는 수법으로 불법 도살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육견협회 “개고기 합법화 해달라”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동물협회의 개고기 반대 퍼포먼스가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최근 서울 곳곳에서 ‘개고기는 없어져야 할 악습입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든 사람들의 1인 시위를 볼 수 있었다. 초복이었던 지난 7월 18일에는 동물사랑실천협회와 한국동물보호연합,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등의 남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몸에 페인트칠을 하고 강아지와 함께 대형 태극기 위에 앉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동물협회연대 측은 “국민 정서를 감안하고 문화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하루빨리 ‘개 식용 금지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협회 회원들은 반려동물인 개를 먹는다는 사실 자체의 윤리적 타당성을 문제 삼는다.

개고기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 역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년 6월 모란시장에서 계획되었던 ‘개고기 축제’는 동물협회의 거센 반발로 결국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 지난 6월에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개고기 파스타’를 출시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아 이틀 만에 판매를 중지하고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레스토랑 대표는 공식 블로그 게시판에 “지금까지 저희가 진행해 오던 개고기에 관련된 모든 메뉴를 없애겠다. 또한 앞으로도 개고기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동포들이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개고기 라면’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족 사회에서 즐겨 먹는 인스턴트 개고기 봉지라면의 수프를 진짜 개고기로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내 동물애호가들의 빈축을 샀다.

개 사육업자들은 여론을 의식해 개고기 문제를 무작정 덮어버리고 감추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최영인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은 “젊은 친구들이 (개고기 사업을) 신규로 시작하지는 않기 때문에 세월이 가면 개 관련 사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음식으로 먹고 있으니까 축산물로 인정을 하고 정상적인 관리 유통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협회는 국회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는 등 개고기 합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표심을 의식해 개고기 합법화 관련 입법 발의를 꺼리고 있다. 이와 관련, 성남 모란시장의 식육견 유통업체인 Y축산 대표 조모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식약청에서 개고기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우려고 나를 찾아왔었다”며 “정부에서도 개시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보고 우리 쪽에서도 개시장에 대한 자료를 준비했었는데 그때 마침 광우병 파동이 터지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한쪽에서는 개고기 합법화를, 또 다른 쪽에서는 개 식용 전면 금지를 원하고 있는 현실에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개고기 합법화 문제는 워낙 민감해서 접근하기 어렵다”며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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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인턴기자·서강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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