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박철수 교수의 ‘아파트와 바꾼 집’. ⓒphoto 건축전문사진가 박영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박철수 교수의 ‘아파트와 바꾼 집’. ⓒphoto 건축전문사진가 박영채

아파트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안전과 편리’를 좇아 아파트 단지 안에 초고층의 성을 쌓고 땅으로부터 멀어졌던 사람들이 땅을 찾아 집 짓기 대열에 나서고 있다. 세금 감면 등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온갖 당근책에도 불구하고 온나라부동산정보 자료에 따르면 8월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건수는 2398건. 지난해 같은 달 4931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파트와 관련된 각종 지표들이 내리막을 걷는 것과 반비례해서 서점가 진열대에는 내 집 짓기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아파트는 한 광고 문구처럼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 되고 있다.

최근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책을 펴낸 박철수 교수(53·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 건축학부)는 주간조선과 만나 “아파트는 접지(接地·땅과의 연결)가 최악이다. 거실 넓히겠다고 베란다도 없앴다. 하늘로 자꾸 올라가다 보니 땅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땅을 밟고 사는 것을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그 고민의 끝에 최근의 집 짓기 열풍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0년대 이후 확산된 ‘담요문화’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시외로 나가 야외테이블에서 담요 덮고 앉아서 차 마시는 문화가 생겼다. 카페든 어디든 테라스를 만들기 시작하고 아파트 꼭대기층에 펜트하우스가 유행이 됐다. 조망 때문이 아니다. 고층 아파트에 ‘공중의 정원’을 만들어서 슬리퍼 신고 바닥을 밟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타운하우스 열풍도 아파트 탈출 러시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박 교수는 “아파트 단지의 편리함은 그대로 누리면서 땅을 밟고 싶은 욕구를 돈으로 해결해준 ‘기형아’가 바로 타운하우스이다. 한때 용인 죽전 인근에 20억원씩 하는 타운하우스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중산층 월급쟁이들에겐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타운하우스를 건너뛰어서 바로 단독주택으로 넘어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20여년간 아파트 생활을 하고, 대학에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를 가르치는 ‘아파트 전문가’인 박 교수도 지난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아파트와 바꾼 집을 짓고 2년째 접지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박 교수는 소형 전세 아파트로 시작해서 평형 늘리기를 통해 중계동에 40평대 아파트를 마련했다. 박 교수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집 짓기에 덜컥 나선 것은 20년 지기인 박인석 교수(명지대 건축학부) 덕분이었다. 미리 땅을 봐두고는 “아파트 값이면 해결된다”고 설득하는 박인석 교수의 꼬임에 넘어가 막연히 생각했던 주택의 꿈이 현실이 됐다. 두 사람이 아파트를 처분하고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살구나무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집을 지은 과정을 ‘아파트와 바꾼 집’(동녘)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집 짓기의 과정은 욕심과 비용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저울질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이 지은 작품 주택의 경우 평당 공사비는 650만~750만원 선, 집장수들의 집은 평당 250만~350만원 선이다. 박 교수가 건축가에게 제시한 조건은 평당 450만원에 품격을 갖춘 집. 박 교수가 337.59㎡(102.09평)의 땅에 연면적 263.29㎡(79.65평)의 집을 짓는 데 든 비용은 총 9억원이었다.

박 교수는 허술한 다가구주택과 고급 단독주택으로 양극화된 주택시장의 현실에서 아파트 대신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는 주택이 없다고 했다. 박 교수의 집 짓기는 그런 고민에 대해 대안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2동에서 40평대의 아파트에 사는 이안나(47)씨는 최근 주택을 찾아 나섰다가 포기했다. 이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멀리 갈 수는 없고 가락동 주변에서 주택 전세를 알아봤는데 아예 주택을 짓거나 사서 고치면 모를까 지어진 주택에서 살려고 봤더니 방범도 걱정되고 불편한 점이 많더라”면서 “획일화된 아파트 삶이 싫어서 땅 밟고 살고 싶은데 꿈을 잠시 미뤄뒀다. 8년 후쯤 남편이 은퇴하면 전원주택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다. 주변에도 정년퇴임한 사람들 중에 고향 근처에 땅을 사서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중심의 주거문화에 반대하는 박철수 교수.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아파트 단지’ 중심의 주거문화에 반대하는 박철수 교수.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이씨의 경우처럼 호시탐탐 땅으로의 탈출을 원하지만 아파트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모든 문제는 정부의 ‘단지화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단지는 개인들이 비용을 내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한다. 단독주택은 가로등도 설치해줘야 하고 경로당도 만들어줘야 하고 인프라를 정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아진다. 지난 50년 동안 정부는 인허가권 들고 아파트 단지를 부추기면서 좋은 집을 짓는 데 투자를 안 한 것이다.”

‘타운하우스’ ‘연립주택단지’ ‘블록형단독주택’ 역시 단지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 ‘실버하우징’ ‘싱글하우징’ ‘원룸’ 등도 사회를 통합하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을 범주로 나눠 마케팅의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란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아파트의 죄는 인구구조나 삶의 변화에 따른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다. 경쟁상대가 없으니 변할 생각을 안 했다. 좋은 주택들이 많이 지어져야 아파트도 변하고 잘못된 주거문화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지구에 최초의 단지 형태로 도화아파트를 건설한 것이 1961년. 그동안 도시는 ‘아파트 단지’라는 섬들만 모여 있는 곳이 됐다. 아파트 반세기, 편안함만을 좇아 규격화된 공간에 맞춰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간조선은 획일화된 주거문화를 탈출, 다양한 주택을 마련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부모와 함께 사는 주택’ ‘도심 속 다가구 주택으로 재테크까지’ ‘집 짓기 대신 주택리모델링’ ‘친환경 주택’ 등 4가지를 통해 내게 맞는 주택마련 방법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내 예산으로 어느 지역에 땅과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지 수도권 부동산 정보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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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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