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유리창을 통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중원·이경아씨 집의 야경.
통유리창을 통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중원·이경아씨 집의 야경.

“저기 윗집 개 산책시킬 시간인데.”

“조금 있으면 외국인 선생님들 지나갈 시간이다.”

말 끝나기 무섭게 집 앞으로 강아지가 지나가고, 조금 있으니 외국인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 안을 보며 눈을 맞추기도 하고 손을 흔들고 지나가기도 한다. 길과 집 사이에 있는 것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온 통유리창.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땅 등 바깥 풍경이 눈높이와 나란히 펼쳐진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아버지는 거실 의자에 앉아 창을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이중원·이경아 부부의 집. 서울 광화문에서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니 ‘24㎞ 20분 후 도착’을 알렸다. 지난 9월 18일 오전 9시께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가 막혀 예상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돌아오는 길은 뻥 뚫려 정확하게 20분이 걸렸다.

삼대가 사는 이 집은 ‘속 보이는 집’이다. 2층 주택의 앞과 뒤 곳곳에 바닥까지 뚫린 통유리창을 통해 속을 다 보여주고 있다. 담도 없다. 주택단지를 만들면서 조례로 담을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 거실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좁은 집 안을 보여주는 대신 넓은 바깥 풍경을 얻었으니 훨씬 남는 장사”라는 것이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건축가는 아들 부부, 건축주는 어머니

바깥 출입이 어려운 아버지를 위해 온 집안에 벽 대신 창을 들였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바깥 출입이 어려운 아버지를 위해 온 집안에 벽 대신 창을 들였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바로 이중원·이경아 부부다. 건축주는 이중원씨의 어머니이자 이경아씨의 시어머니. 1972년생 동갑내기인 부부는 둘 다 성균관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건축학 석사를 취득한 미국건축사이다. 이중원씨는 현재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로 있고, 부인 이경아씨는 ISM 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부부는 결혼을 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1년을 살았다. 부부는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쪽에서 서로 경쟁사인 건축사무소를 다녔다. 이중원씨는 최근 ‘건축으로 본 보스턴 이야기’라는 책도 펴냈다.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 생각이던 부부가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버지 건강 때문이었다. 이중원씨와 누나, 남매 모두 미국에 살다 보니 어머니가 아들에게 ‘SOS’를 쳤다. 다행히 국내 대학들이 한창 실무 중심의 건축학과 교수를 찾던 시기라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2009년 귀국 후 부부는 부모님이 살고 있던 경기도 분당의 68평 아파트로 들어갔다. 아파트 생활은 삼대가 모여 살기는 취약한 구조였다. 평면 구조다 보니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출근 시간이면 유치원 가는 두 아이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세대 간의 생활이 전혀 분리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아파트를 팔아 단독주택을 짓기로 했다. 주택에 사는 것은 어머니의 평생 꿈이기도 했다.

삼대가 살면서 세대 분리는 철저하게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내정(內庭) 풍경.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내정(內庭) 풍경.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판교에 분양한 단독주택 필지 70평을 6억1000만원에 분양받았다. 평당 분양가는 900만원 선. 살고 있던 아파트가 안 팔려 계획보다 진행이 늦어졌다. 게다가 분당지역 아파트 값이 뚝 떨어져 68평 아파트 매매가가 6억여원, 겨우 땅값만 해결할 수 있었다. 공사비는 지하, 1층, 2층 78평(다락방 포함 92평)에 4억9000만원. 평당 530만원꼴이다. 공사비는 땅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설계에 들어갔다. 설계기간은 3개월여. 건축주인 어머니의 뜻을 반영해서 부부가 계속 설계도면을 주고받으면서 문제점을 보완해갔다. 이경아씨는 “혼자서는 짚어낼 수 없는 문제도 ‘크로스 체크’를 하니 잘 보이더라”고 했다. 공사기간 5개월을 거쳐 올 1월 입주, 겨울부터 세 계절을 거쳤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세대 간의 분리였다. 삼대가 함께 사는 데 따른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하자는 것. 1층은 부모님 공간, 2층은 부부와 두 아이의 침실, 3층에 덤으로 얹은 다락방은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철저하게 분리했다. 대신 삼대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지하에 널찍한 서재를 만들고 TV도 볼 수 있게 했다. 지하 한쪽 공간엔 짐이 많은 어머니를 위한 창고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물건 모으는 것이 취미인 어머니의 신혼여행 가방까지 보관돼 있다. 2층에도 조리시설을 설치해, 아침식사는 부부끼리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덕분에 부모님은 출근시간의 소란과 상관없이 1층에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어머니가 책임지는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 네 살인 두 아이가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쯤부터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열린 집, 닫힌 집

지하실에 만든 서재. 세대 간 분리가 철저한 집에서 삼대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지하실에 만든 서재. 세대 간 분리가 철저한 집에서 삼대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다음은 창이었다. 부부가 모두 창을 좋아하는 데다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담이 없는 대신 성 같은 콘크리트 벽으로 또 다른 담을 만드는 것은 주택에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새로운 주택의 형태를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를 만들고 싶었다. 집안의 모든 창을 바닥까지 시원하게 내렸다. 창이 많다 보니 문제는 단열. “내장재에서 비용을 줄이고 창에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북쪽은 3중창으로 만들었어요. 겨울엔 해의 각도가 30도까지 내려와 집안 깊숙이까지 햇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녁 7, 8시까지 난방을 안 해도 27도까지 유지됩니다. 대신 여름엔 해의 각도가 70도로 들어와서 생각보다 덥지 않습니다.”

단독주택에서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관리비이다. 가장 큰 부담은 냉난방비. 이 집의 겨울 난방비는 50만원, 여름에 한창 에어컨 틀 때 전기료가 20만원 선이었다고 한다. 한겨울과 여름을 제외하고는 전기, 가스, 수도료로 2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보안시스템에 월 10만원이 더 들긴 하지만 아파트 살 때 평균 관리비 60만~70만원에 비하면 오히려 적다.

집의 전체 구조는 ‘ㄷ’자형. 가운데 데크를 깔고 내정(內庭)을 만들었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창을 통해 내정이 보인다. 층고가 높은 곳은 3m에 이르는 데다 창 밖의 내정까지 시선이 확장돼 바닥면적 115㎡(35평)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건축주인 어머니의 주문은 넓은 주방. 벽면을 최대한 활용해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있다.

(좌) 카페 같은 거실. 바닥까지 뚫린 통유리창을 통해 눈높이와 나란히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우) 집안과 내정이 창으로 통해 있어 시각적으로 공간확장 효과가 있다.
(좌) 카페 같은 거실. 바닥까지 뚫린 통유리창을 통해 눈높이와 나란히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우) 집안과 내정이 창으로 통해 있어 시각적으로 공간확장 효과가 있다.

집이 변하면 사람이 변한다

이중원씨가 이 집에 이사와서 아이들이 먼저 변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살 땐 뽀로로나 코코몽만 보고 있던 아이들이 창 앞에 턱 괴고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거나 집 주변을 돌아다니더라고요. 자연이나 곤충들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뒷산에 진달래가 많이 피었다면서 제 손을 끌고 가 꽃을 따와서 할머니와 화전을 부쳐서 학교에 가져간 적도 있습니다. 방아깨비를 잡아 갔다가 스타가 됐다며 얼마나 신나했는지 모릅니다.”

이경아씨는 무엇보다 건축주인 어머니가 이 집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평수 넓은 아파트는 층고가 낮아 햇빛이 깊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어두웠어요. 집안에만 계시는 아버님이 어두운 곳에서 우울하게 지내시는 게 가슴 아팠는데 햇볕 잘 들고 밝은 곳에서 바깥 구경도 하시니 더 없이 좋은 거죠.”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는 쇼윈도 같은 집이 신기해 창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가 하면 아예 벨을 누르고 구경 좀 하겠다고 밀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경아씨는 “이 집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것 같아요. 밖이 보여 너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밖에서 다 보이는데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죠.”

구경 온 사람 중에 “이 집처럼 지어 달라”고 설계를 의뢰한 사람도 있었다. 골목골목 산책을 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이중원씨는 기회가 되면 자신의 집과 같은 실험주택을 많이 짓고 싶다고 했다. “이 집보다 작은 평수라면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으로도 가능합니다. 165㎡(50평) 정도의 땅을 사고 땅콩집을 지어 한 채는 자신이 살고 한 채는 전세를 준다면 공사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땅값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이 바뀌면 삶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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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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