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 같은 직장인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제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오후 5시30분입니다. 그럼 일단 냉장고로 가서 맥주 한 캔을 딱 꺼내요. 식탁에 앉아서 라디오를 틀면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나오는 시간이거든. 음악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집사람이 안주를 만들어줘요. 집사람이 또 요리를 잘해. 그렇게 앉아서 술 마시고 간식 먹으면서 서로 바깥 사람들 온갖 흉 다 보고 그러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지. 술이 어느 정도 되면 그때 밥 먹고 TV 뉴스 보면서 꾸벅꾸벅 졸다 잠드는거야.”

강영조(맨 오른쪽)·김지은 부부는 자신들에게 맞는 주택을 신축하는 대신 부산 사하구 당리동의 32년 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했다. JMY건축사무소 윤재민 대표(맨 왼쪽)·양경철 소장은 이들 부부의 생활습관을 담아 리모델링을 구현했다. ⓒphoto 권효빈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강영조(맨 오른쪽)·김지은 부부는 자신들에게 맞는 주택을 신축하는 대신 부산 사하구 당리동의 32년 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했다. JMY건축사무소 윤재민 대표(맨 왼쪽)·양경철 소장은 이들 부부의 생활습관을 담아 리모델링을 구현했다. ⓒphoto 권효빈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부산 동아대 강영조(55·조경학과) 교수 부부가 사는 법이다. 저녁이면 강영조·김지은(50·주부) 부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했다.

인문학적 건축으로 알려진 ‘광주주택’으로 유명세를 탄 JMY건축사무소 윤재민(41) 대표와 양경철(43) 소장이 귀기울인 부분이었다. 윤 대표와 양 소장은 지난 6월 강 교수가 부산 사하구 당리동의 주택 리모델링을 조심스럽게 의뢰했을 때 이들 부부의 생활방식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집에 강 교수의 부부는 지난 9월 15일 이사해 들어왔다. 이 집의 정수는 주방이다. 주방은 현관을 열고 들어가 직진하면 나온다. 현관에서 가장 짧은 동선상에 있다. 조리공간과 식탁이 한 공간에 나란히 있어 부인이 요리하면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남편과 대화를 끊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 조리공간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부부를 위해 이 집의 인테리어 총괄을 맡은 양 소장이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이다.

양 소장은 “리모델링 전 강 교수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떤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직접 얘기를 들었다”며 “리모델링하기 전 반드시 건축주와 오랜 기간 면담을 한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이 강 교수 부부의 당리동 집을 찾은 지난 9월 19일 집안은 다소 어수선했다. 이사하자마자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 짐 정리가 지연된 탓이었다. 따가운 햇살을 내리받으며 남향 언덕 위에 다소곳이 올라서 있는 이 집은 1980년에 지어진 벽돌집이다. 2002년 새 주인을 맞으며 한 차례 리모델링을 하긴 했지만 집의 기본 골격은 32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철제로 된 바깥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지고 돌계단 끝에 80㎡의 작은 마당이 놓인 전형적인 한국형 단독주택이다.

“노후 생활은 이런 곳에서”

(좌) 리모델링 전 안방의 풍경. (우) 돋움 처리해 수납공간을 만든 안방. ⓒphoto 건축사진전문가 윤중환
(좌) 리모델링 전 안방의 풍경. (우) 돋움 처리해 수납공간을 만든 안방. ⓒphoto 건축사진전문가 윤중환

지난 4월 대지 211.60㎡(64평)에 연면적 182.05㎡(55평)인 이 집을 보는 순간 강 교수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꿈꿔오던 이상적인 집의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임까지 10년 정도 남았는데 ‘집사람하고 나하고 노후의 생활을 어떻게 할 건가’ 고민을 많이 했었다”며 “그때 내린 결론이 ‘적어도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 생각해오던 이상적인 집의 조건은 이랬다. 강 교수가 다니는 부산 사하구 동아대학교와 멀지 않을 것,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역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간단하게 장을 볼 수 있을 것, 도심에서 멀지 않아 조금만 걸어 나가면 지인들과 맥주 한잔 할 수 있을 것.

이 조건들은 그가 20여년 전 일본 도쿄 유학 시절 강 교수 부부의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심 속에서 이들 조건을 충족시키는 집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그러던 중 지난 봄, 지금의 집을 만났다. 강 교수가 내건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입지였다. 당시 매매가는 3억1000만원. 이들 부부가 살고 있던 사하구 아파트의 매매가가 3억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파트와 주택을 맞바꾸는 정도의 계산이었다. 강 교수는 “아파트 가격이면 살 수 있는 도심 속 주택 중 이런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망설이는 부인을 설득했다.

“몰래 꿍쳐둔 비자금 탈탈 털었어”

현관에 들어서면 집 안쪽으로 보이는 주방 공간. 낡은 벽지 대신 강렬한 색으로 채색해 깔끔함을 살렸다.
현관에 들어서면 집 안쪽으로 보이는 주방 공간. 낡은 벽지 대신 강렬한 색으로 채색해 깔끔함을 살렸다.

“내가 이 집 사고 리모델링까지 하느라 있는 돈 다 썼어. 마누라 몰래 꿍쳐둔 비자금까지 탈탈 털어 썼어. 근데 아파트가 안 나가. 내가 그래서 지금 은행 잔고가 없어~.” 강 교수는 걸죽한 부산 사투리로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지금도 주택을 사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을 할 때도 결국 돈이 문제였다. 원래 리모델링 계획은 주방을 트고 화장실 공간을 하나 더 만들고 2층 단열재를 보강하는 것이었다. 초기 예산은 3500만원.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두고 내부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주력했다. 오래된 기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하고 낡은 느낌을 주는 실내 계단 장식과 조명등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바꿨다.

이 집을 리모델링하는 데 공식적으로 들어간 비용은 1억원. 강 교수는 “비공식적인 비용은 윤 대표가 다른 의뢰인들한테 욕먹을까봐 비밀”이라면서도 “공식적인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고 귀띔했다. 강 교수가 윤 대표와 얽힌 인맥들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라며 웃었다.

당리동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실내의 한쪽 면을 장악한 짙은 주황색 벽이 눈에 띈다. 현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주방. 오래된 집에 깔끔함을 더하기 위해 벽지 대신 미술관이나 공공건물에서 잘 사용하는 도색을 했다. 양 소장은 “색감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원래 주택의 일부였던 황갈색의 마감재와 계단을 세련되게 정리하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50㎝ 높이로 올라선 마루를 향하니 정면 한가득 푸른빛이 도는 회색 벽면이 걸려 있었다. 돋움 처리된 벽면 뒤로 간접조명이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마루 왼편 남쪽을 향해 시원하게 뚫린 베란다 창문과 조화를 이뤄 시원한 조망을 이뤘다. 집안 구석구석은 군더더기 없는 직선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집엔 강 교수 부부만을 위해 숨겨진 공간이 하나 있다. 호텔 리조트 등에서 볼 수 있는 파우더룸이다. 욕실 옆에 딸린 이 공간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부인 김지은씨를 위한 공간이다.

호텔 같은 파우더룸이 서비스로

간접조명과 돋움 벽으로 마무리한 마루.
간접조명과 돋움 벽으로 마무리한 마루.

이 부분은 이번 리모델링으로 새로 창조된 공간이다. 건물의 북쪽 부분, 지금은 다이닝룸이 된 공간과 파우더룸이 된 공간은 원래 부엌과 방 두 개로 이뤄져 있었다. 리모델링 시공사는 세대주의 특성에 맞게 이 공간을 하나의 큰 주방과 안방, 작고 비밀스러운 파우더룸으로 재분할했다. 강 교수는 “리모델링 설계도를 본 순간 ‘이거 최고네’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층 동남쪽에 자리한 안방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파우더룸은 안방 한가운데 들어가기까지는 그 존재를 알기 쉽지 않다.

“리모델링의 재미가 쏠쏠했어요. 양 소장님과 조명을 같이 보러 가서 제가 나름대로 선택하고 화장실 타일도 고르고. 생각해보면 건축가가 준 옵션 안에서 제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재미가 있었죠.”(김지은)

“우리가 윤 대표, 양 소장한테 낚인 거라니까~. 저 사람들이 스킬이 있어.”(강영조)

“아휴 전 이번에 공사하느라 얼마나 재밌었다고요.”(윤재민)

당리동 집 소파에 나란히 앉은 강 교수 부부와 윤 대표·양 소장 사이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기자가 끼어들 틈 없이 쉬지 않고 집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집 한번 지으면 건물주와 시공주가 원수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건물주와 시공주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찾아 끝없이 고민한 덕분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세대주의 요구와 땅이 보유한 가치, 그리고 시공자의 감각이 어우러진 집의 재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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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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