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짚으로 집을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를 국내에 전파하고 있는 이웅희씨. 각진 모서리가 없이 둥글둥글한 벽에 구들로 소파 겸 침대를 만들었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볏짚으로 집을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를 국내에 전파하고 있는 이웅희씨. 각진 모서리가 없이 둥글둥글한 벽에 구들로 소파 겸 침대를 만들었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이웅희(51)씨는 사교육의 최전선인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서 15년여 학원을 운영했다. 돈은 제법 벌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내 아이는 학원을 돌리면서 공부 기계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학원도 염증이 났고 삶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40대 초반, 도시의 삶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시골로 내려가서 대안학교를 해볼까?’ 학원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대안교육으로 명성이 있는 발도르프 교사양성대학에 들어갔다. 자신이 대안학교 교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빨리 포기했다. 우연히 볏짚으로 만든 집인 스트로베일하우스(strawbalehouse)가 나온 책을 보게 됐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8개월 만에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트로베일하우스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호주에 3주 과정의 교육이 있었다. 생태문화교육 지원을 해주는 교보문화재단에 제안서를 냈다. 지원자로 선정돼 교육기관이 있는 호주 퀸즐랜드주 에머럴드로 떠났다. 지원 조건은 배워온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위해 강원도 정선의 동강 인근에 첫 스트로베일하우스를 지었다. 사람들에게 스트로베일하우스를 전파하고 가르치며 집을 지어주고 다닌 것이 8년. 드디어 지난해에 자신의 집을 지었다.

스트로베일하우스 마을

거실에서 아치형 통로를 지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거실에서 아치형 통로를 지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적성산 자락 아래. 비탈을 따라 다섯 가구의 집이 모여 있다. ‘스트로베일하우스 마을’이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트로베일하우스의 전진기지다. 그중 한 집이 이웅희씨의 집이자 스트로베일하우스연구회의 교육장이다. 그는 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2층의 황토색 주택은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전원주택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시원한 흙의 기운이 확 느껴졌다. 황토색 바닥이 독특해 보여 물어보니 광목천에 황토염색을 해서 바른 것이라고 했다. 흙 위에 하얀색 페인트칠을 한 벽은 각진 모서리가 없이 기둥이며 곳곳이 곡선으로 둥글둥글했다. 각진 콘크리트 아파트에 익숙한 눈에 아치형의 통로며 곡선 벽이 신기했다. 이런 공간에 살면 성격도 둥글둥글해질 것 같았다.

건면적이 62.8㎡(19평)이라는데 도시의 82.6㎡(25평) 아파트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손님도 많이 오는 탓에 1층엔 방 1개와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거실을 널찍하게 만들었다. 아치형의 통로를 지나 달팽이관 모양의 계단을 올라가면 아이들 방 2개와 화장실이 있고 구석에 동굴처럼 아늑한 서재가 숨어 있다. 여닫이문이 달린 1층 방에 들어가니 2개의 벽면을 끼고 있는 독특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페치카 모양의 직사각형 기둥 옆으로 긴 의자 모양이 벽과 연결돼 있다. 아궁이 불로 공기를 덥혀 순환하게 만든 구들침대 겸 소파.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장작 6개만 넣어도 20시간 가까이 온도가 유지된단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집

이 집의 모든 가구는 현장에서 직접 만들었다. 핸드메이드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부엌. 층고가 높아 집이 한층 넓어보인다.
이 집의 모든 가구는 현장에서 직접 만들었다. 핸드메이드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부엌. 층고가 높아 집이 한층 넓어보인다.

볏짚으로 만든 집이라면서 웬 흙벽 이야기냐고? 스트로베일하우스는 볏짚 위에 황토를 바른 집이다. 압축된 직육면체(49×35×80㎜) 볏짚을 벽돌처럼 쌓아 올리고 볏짚 양쪽에 3~5㎝ 두께로 황토를 바른다. 이때 볏짚을 잘 건조시켜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고 벽에 균열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한 황토배합 비율 등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지붕은 볏짚이 현실적으로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와부터 목조주택용 콜타르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벽을 제외하고는 일반 주택을 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벽이 바로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이씨는 “벽이 습도 조절을 해준다. 겨울에는 건조하지 않게 하고 습도 높은 여름에는 벽이 습기를 빨아들인다. 단열도 잘 돼 한겨울 난방비로 10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스트로베일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건강한 집이라는 것이다. 나만의 건강이 아니라 나중에 집이 자연으로 돌아가니 지구에 피해 안 주고 에너지 적게 쓰니 탄소 배출도 적다. 이보다 친환경적인 집이 없다”고 말했다.

전북 진안군 동향면에 있는 스트로베일하우스 마을.
전북 진안군 동향면에 있는 스트로베일하우스 마을.

볏짚이니 화재에 취약하지 않을까. 이씨는 “외국에서 용광로 실험을 했는데 화재에 가장 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볏짚을 흙으로 감싼 것은 80분 후에 불이 붙은 반면 목조주택은 80분 만에 전소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어준 집에서 한번은 화재가 났다고 한다. “주말 주택용이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너무 세게 지피다 보니 아궁이가 벌어지면서 볏짚을 태웠다고 전화가 왔다. 위에서 물을 부으라고 가르쳐줬다. 3~4일 후에 다시 전화가 와 연기가 계속 난다고 해 달려가 뜯어 보니 그 기간 동안 2m가량 볏짚이 타 있더라. 그만큼 화재에 강하다.”

건축비가 궁금했다. 볏짚이며 흙만 있으면 되니 일반 건축비보다 훨씬 싸겠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62.8㎡(19평) 규모의 집이면 볏짚은 5t 트럭 한 대분(100만원 선)이면 되지만 외벽이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정도밖에 안 된다. 벽을 제외하고는 집 짓는 방식이 똑같기 때문에 특별히 건축비가 싼 것은 아니란다. 그는 “3.3㎡당 350만~600만원까지 편차가 크다. 이런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건강하게 지으려고 하다 보니 자재도 비싼 것 쓰고 단열에도 신경 쓰다 보면 건축비가 훌쩍 올라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1, 2층 총 125㎡(약 38평)인 이 집의 건축비는 1억1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자신의 노동력과 품앗이로 지어 인건비가 안 들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격은 아니다. 보통은 이 정도 규모면 1억5000만원(평당 400만원 선)이 든다고 한다.

카페 회원 4만3500명

(위쪽부터) 바닥 난방공사. 볏짚으로 벽돌 쌓듯 내부벽 공사. 볏짚 다듬기. 쥐막이 망 공사. 미장작업.
(위쪽부터) 바닥 난방공사. 볏짚으로 벽돌 쌓듯 내부벽 공사. 볏짚 다듬기. 쥐막이 망 공사. 미장작업.

그가 지금까지 나서서 지어준 집은 60여채. 그한테 배워서 나간 사람들이 독립해서 지은 집까지 전국에 스트로베일하우스는 200여채 정도 된다고 했다.

볏짚으로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스트로베일하우스 건축연구회(http://cafe.naver.com/strawbalehouse)에 가입하면 된다. 일단 그곳에서 ‘눈팅’으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집 짓기 정보를 공유한다. 집 짓기를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현장교육에 도전한다. 교육과정은 1박2일 단기반부터 주말반, 전문가반 등으로 나뉜다. 교육비는 먹고 자고 교재비 포함해서 하루에 10만원 정도. 교육은 실제로 집을 짓고 있는 현장에 찾아가 집 짓기 과정을 보고 품앗이도 하면서 직접 참여해보는 것이다. 교육은 집을 짓는 현장이 생기면 한 달여 전에 카페에 공지를 올리고 참가자를 받는다. 인원은 20명 선. 오는 10월 20일부터 경기도 시흥에서 주말마다 4주 일정의 교육이 시작된다. 현재 카페의 회원은 4만3500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생태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연구회에서는 요청을 하면 시공도 직접 해준다. 그가 전체 감독을 하고 3개 팀이 운영되고 있다. 단 집 짓기 위한 자격 조건이 있다. 반드시 연구회의 교육을 단기코스라도 참가해야 한다. ‘생태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코드를 맞추는 절차인 셈이다. 집 규모에 따라 한 팀이 맡기도 하고 2~3개 팀이 동원되기도 한다. 골조 쌓기부터 가구 제작,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을 맡아서 하고 있다. 10월부터는 부천에서 4가구가 한꺼번에 시공을 의뢰해 몇 달은 그곳에 매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느리게 살기

처음 호주에서 배워온 기술이 기초가 됐지만 ‘스트로베일하우스’ 기술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환경에 맞추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고 책을 뒤적이며 우리에게 맞는 공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2007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라는 책을 펴냈지만 그 이후로도 신공법을 많이 개발,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그는 “책만 보고 혼자서 지은 사람도 있고 인터넷서 잘못된 정보를 습득하기도 한다. 건축은 종합 정보다. 체계적인 지식이 없으면 판단을 잘못한다. 그래서 집 짓고 싶다면 한 번이라도 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공에 나서는 건 가능한 한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 지어달라는 사람이 많아지면 돈은 벌겠지만 너무 바빠지는 것은 ‘절대 사절’이다. 느리게 살고 싶어 삶을 바꿨는데 그 삶을 거스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우연히 책에서 본 집 한 채가 그의 삶을 학원 원장에서 생태건축가로 바꿨다. 그는 노동과 오락과 생계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삶이 최고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삶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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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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