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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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디자인에 접목해 루이비통·샤넬·구찌·프라다 등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 경쟁을 펼치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이건만(51·이건만AnF 대표)씨다. 이씨는 세계 패션·디자인 시장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씨와 함께 한글을 디자인 소재로 활용하는 대표적 한글 디자이너다. 지난 9월 2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근처 한 빌딩 3층에 있는 한글 디자인그룹 ‘이건만AnF’를 찾아 이씨를 만났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이건만씨의 한글 디자인은 해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이씨는 자신의 한글 디자인 문양을 넥타이, 스카프, 지갑, 가방 등 패션소품에 접목하는 ‘한글 상품 디자인화 작업’에 정성을 쏟고 있다.

“한글이 가진 조형미는 서구의 문자 알파벳이나 중국의 한자와 견주어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미적 요소만 보면 이들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도 있습니다.”

그는 “회화와 조형 등 예술은 물론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디자인에서도 한글은 최고의 소재”라며 “완벽한 균형미와 조형미를 가진 언어 중 하나가 한글”이라고 했다.

“알파벳이나 일본 문자는 글자 하나하나를 그냥 일렬로 늘어세운 단순 ‘나열문자’입니다. 중국어의 한자는 종종 사물에서 형상화했다는 점 때문에 조형미와 회화적 요소가 언급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디자인 소재로 한자는 알파벳이나 일본 문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철자 하나하나를 일렬로 세워야만 의미 전달이 가능한 단순 나열문자일 뿐이지요. 시각적·예술적 관점에서 ‘나열’이라는 일정한 조합 규칙을 벗어나면 아름다움을 찾기가 어려운 정형화된 매우 단순한 소재지요.”

한글, 최고의 디자인 소재

이건만은 알파벳과 일본 문자, 그리고 한자와 달리 한글을 완벽한 ‘조합문자’로 설명했다. “한글은 ‘레고 블록’과 같습니다. 글자를 앞뒤로 나열하는 기본적 조합은 물론, 철자와 철자, 글자와 글자를 ‘앞뒤 상하 좌우’ 어느 방향으로건 자유자재로 조합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철자 한두 개만 조합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서너 개 이상의 철자도 자유롭게 조합해 의미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내는 세계 유일의 언어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아름다운 건축물을 연상시킬 만큼 완벽한 균형미와 조형미를 보이는 게 바로 한글입니다.”

이건만은 “한글은 탁월한 균형미와 조형미뿐 아니라, 철자와 글자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조화미와 자연미를 품고 있는 문자”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조화미와 자연미가 한글을 세계 패션과 디자인계에서 명품 재료로 불릴 수 있게 하는 요소라고 했다.

그는 한글의 ‘조화미’를 ‘모노그램’(둘 이상의 문자를 합쳐 하나의 문양으로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설명했다. “루이비통을 한번 보시지요. 알파벳 철자 L과 V를 결합해 고유 문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열 문자라는 특성으로 인해 디자인적 관점에서 알파벳 두 철자를 결합시킨 모노그램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디자인이란 이야기지요. 알파벳 C자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포개 놓은 샤넬의 모노그램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문양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 디자인이지요.”

그는 알파벳과 비교해 디자인 재료로서 한글이 가진 강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글은 알파벳처럼 ‘ㄱ·ㄴ·ㄷ…, ㅏ·ㅑ·ㅓ·ㅕ…’ 등 철자 간 결합은 물론 ‘가·나·다…’ 등 글자 간 결합과 철자와 글자 간 결합도 가능하지요. 이런 결합은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조합과 문양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측 불가능하리만큼 창조적 디자인이 가능한 언어가 바로 한글이란 이야기지요. 더구나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하나의 글자가 완성되는 한글은, 그 자체로 ‘결합과 문양’이라는 모노그램의 특징을 품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문자 그 자체가 가장 자연스러운 하나의 모노그램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한글의 이런 자연미와 조화미가 디자인 소재로서 다른 언어와 비교되는 가장 큰 매력인 거지요.”

세계 패션과 디자인 시장에서 한글은 알파벳은 물론, 일본 문자와 한자에 비해 변방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한글이라는 좋은 재료를 갖고 있음에도, 이것을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상품화와 인프라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개인이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작업”으로 설명했다.

“예술 작품으로서 한글 디자인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과 제품으로서 한글 디자인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한글을 예술의 소재로 활용하는 건 작가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를 각종 제품에 접목해 유용한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거대한 자본이 필요합니다. 상품 개발, 마케팅·홍보는 물론 영업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으로 자본의 힘이 필요한 작업들이지요.”

그는 이 대목에서 현재 ‘한글 디자인 상품화 작업에 투자하거나, 한글 브랜드를 키우는 자본이 없음’을 말했다.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 입장에선 ‘한글을 활용한 브랜드나 디자인을 키우는 것’보다, 서구 언어로 디자인된 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들여와 파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서구 언어로 된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팔면 마케팅이나 홍보 비용은 물론 제품 개발비조차 들이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히 한국 시장에서만 팔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지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브랜드를 우리 기업이 한국이 아닌 일본이나 중국에서 팔 수 있겠습니까. 우리 것이 아니니 절대 팔 수 없습니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더 넓은 시장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건만은 ‘한글에 대한 투자’에 대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제대로 된 ‘한국 브랜드’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이는 좁은 내수시장을 넘어 넓디넓은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글 디자인만 13년

디자이너 이건만이 한글과 연을 맺은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이건만은 38살까지 (겸임)교수 생활과 함께 개인전 6회와 그룹전 200여회를 열며 고집스럽게 작품 활동을 했던 순수예술가였다. 홍익대 미대 입학 후 30대 후반까지 18년을 그저 좋은 작가, 좋은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던 이가 이건만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면 훌륭한 작가도 되고, 자연스럽게 모교에서 교수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세상일이 마음처럼 안 되더군요. 꿈에 그리던 모교에서 교수는 됐지만 늘 겸임교수란 꼬리표가 따라다니더군요. 이를 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겸임교수 생활은 작품 활동은 고사하고 경제적 문제조차 해결하기 힘들었다. 결국 1999년 고집했던 작가의 삶을 포기했다.

“2000년에 제 작업 도구를 다 팔아버렸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할 줄 아는 게 미술과 디자인뿐이라 여기에 승부를 걸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상업디자인을 하게 된 거지요.”

이 선택이 그를 한글 디자이너로 살게 한 시작이 됐다. “석사와 유학 시절 연구 주제가 ‘문화’였습니다. 이것을 모티브로 한 첫 디자인은 한글이 아니라 ‘색동 넥타이’였습니다. 별 반응이 없었지요. 그런데 일이 풀리려고 그랬는지 중앙박물관에 있던 선배가 작업실에 놀러왔어요. 그때 콘셉트 개념으로 만들었던 한글 문양을 입혀 놓은 천을 그 선배가 본 겁니다. 선배가 ‘우리하고 이걸로 이벤트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간단한 넥타이’를 만들어 보라더군요. 그 넥타이를 중앙박물관에 한국문화상품으로 전시를 해줬지요.”

그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한 그의 디자인에 특히 외국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신기했지요. 이전까지 18년 동안 그룹전 200회, 개인전 6회를 해서 번 돈이 50만원이 채 안 됐어요. 근데 중앙박물관에선 단지 넥타이 반응이 좋다며 디자인비로만 100만원이 넘는 돈을 주는 게 아닙니까. 그뿐 아니라 제 한글 넥타이를 ‘한국문화특별전’에도 전시하겠다며 다른 샘플까지 요청하는 겁니다. 전시만 하지 말고 한번 팔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해왔어요.”

그는 ‘이건만’이란 이름으로 팔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수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때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넥타이와 가방, 지갑에 한글 디자인을 입힌 제품을 들고 백화점 담당직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내국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반응이 있겠다’며 백화점 대신 신라와 롯데면세점에서 입점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덕분에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제 한글 디자인이 먼저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면세점에서부터 그의 디자인이 팔리기 시작하며 해외 패션 브랜드 관계자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이건만’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한글 디자인은 해외 패션업계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한국적 디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글 상품 도쿄에 진출하다

이건만씨에게 디자인 소재로 한글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은 ‘한국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한글은 많은 설명 없이도, 단 한 번의 시각 이미지만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한글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2월 이건만은 일본 도쿄 토브백화점에 자신의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한글 디자인을 들고 일본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이다. 한국 패션 브랜드가 일본의 백화점에 입점한 것은 대기업 브랜드들도 하지 못한 일로, 그가 최초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먼저 진출했다면 더 큰돈을 벌 수도, 더 많은 이들에게 한글 디자인을 소개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한글 디자인의 첫 해외시장 진출은 꼭 일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0~90년 전 우리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 못하게 했던 이들이 바로 일본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의 땅 한가운데 우리글, 우리 문화가 담긴 한글 디자인 제품을 올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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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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