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미국 NBC ‘투데이쇼’에서 싸이가 출연자들과 함께 ‘말춤’을 추고 있다. ⓒphoto 로이터
지난 9월 14일 미국 NBC ‘투데이쇼’에서 싸이가 출연자들과 함께 ‘말춤’을 추고 있다. ⓒphoto 로이터

요즘 가수 싸이(PSY·본명 박재상·35)가 대세다. 어딜 가도 싸이, 싸이, 온통 싸이 얘기뿐이다. 그런가 하면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마침내 유튜브에서 조회 수 4억을 넘었다. 이제 5억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빌보드 차트도 3주째 2위를 고수, 조만간 1위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국·영국·캐나다 등 40여개국에서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전 세계가 ‘강남스타일’ 열풍에 휩싸인 형국이다. 덕분에 세계적 음악 프로듀서들이 그동안 관심조차 없던 K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모두 ‘강남스타일’ 덕분이다.

‘강남스타일’ 열풍에 일본만 무덤덤

그런데 유별나게 조용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세계 40여개국에서 말춤을 추며 ‘강남스타일’을 외치는데, 유독 일본만은 무덤덤하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로 한국에선 보인다.

국내 인터넷상에서는 이 같은 일본인의 반응에 대해 질투심에 그런다고 비난을 한다. 일견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일본이 그동안 한류(韓流) 소비를 주도해 온 상징적 나라라는 점이다. ‘겨울연가’로 시작한 한국 드라마의 열풍, 그리고 보아의 일본 활동을 계기로 동방신기·빅뱅·소녀시대·카라로 이어지는 K팝과, 이제는 많은 일본인의 ‘지존’이 되어버린 배우 장근석까지, 일본을 빼고는 한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국 연예인들 또한 ‘한류’라는 라벨이 붙기만 하면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여기에 ‘스타’까지 보태져 ‘한류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한·일 양국에서 출연료의 자릿수가 달라진다. 때문에 한국 연예인들은 일본 팬들이 살짝 손짓만 해도 쪼르르 달려가 굴욕적일 만큼 과잉 서비스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열성 팬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본인 팬들도 많다.

이 같은 한류스타와 일본인 팬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상(像)’ 혹은 ‘이미지’가 하나 있다. 그것은 외모상으로 반드시 ‘귀엽다’거나 ‘꽃미남’이거나 혹은 ‘멋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인의 사랑을 받은 전형적 한류스타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배용준·이병헌·장동건·송승헌·권상우·원빈·소지섭·류시원·장근석이 꽃미남에 해당하고, 동방신기·빅뱅·슈퍼주니어는 노래와 함께 ‘귀여운’ 스타군에 속한다. 반면 최지우·이영애·김태희 등의 여배우들은 미모와 함께 ‘멋있다’에 해당되고, 소녀시대·카라는 깜찍한 춤과 함께 쭉 뻗은 각선미로 ‘귀엽다’와 ‘멋있다’ 두 가지 평가를 모두 받고 있다.

일본 한류 팬들의 근간은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 이미지는 바로 ‘꽃미남’ ‘귀여움’ ‘멋있음’으로 귀결된다. 이는 일본 연예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가령 일본 남성 팬들과 10대 소녀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AKB48’ 걸그룹이 있다. 이 걸그룹을 보면 가수인지 떼거리 응원단인지 헷갈린다. 노래는 도저히 프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기본실력에도 못 미치고, 춤 또한 초등학생 수준인지 중학생 수준인지 가늠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대부분이 10대인 그녀들과 악수 한번 하기 위해 샐러리맨들은 몇 개월치의 월급으로 수백 장의 CD와 프로그램 상품을 산다. 악수를 하려면 이들이 내건 옵션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많은 남자 팬들은 그 옵션에 당첨되기 위해 기꺼이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본 남성 팬들이 AKB48 걸그룹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오로지 귀엽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딱 꼬집어 미인이랄 수 있는 멤버도 없다. 그런데도 이들의 인기는 일본열도를 뜨겁게 한다.

이렇듯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스타들의 이미지는 정해져 있다. 미남·미녀이거나, 혹은 귀엽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키라도 커서 ‘몸’을 만들어 몸짱 정도가 돼야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연예시장에 명함도 못 내민다.

우선 일본인, 특히 여성 팬들은 ‘부담’을 주는 외모를 대단히 불편해 한다. 2000년대 초 영화 ‘쉬리’에 이어 ‘공동경비구역 JSA’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두 작품으로 당시 송강호의 인기는 한국 배우로서는 최고였다. 이어서 ‘쉬리’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그 옆에 나란히 섰다. 당시 이들은 일본 매스컴과 팬들로부터 ‘명연기자’라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 소위 말하는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외모’가 아닌 연기로 승부를 거는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이들을 좋아하는 열성 팬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매혹되어 좋아하는 ‘매니아’들이다. 일본인들의 특성상 한번 팬이 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영원한 팬이 되니까.

지난 10월 4일 서울광장에서 공연하는 싸이. ⓒphoto 조선일보
지난 10월 4일 서울광장에서 공연하는 싸이. ⓒphoto 조선일보

한·일관계 경색과는 무관

일부 한국 언론이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강남스타일’이 유독 일본에서 인기가 없는 것은 바로 질투심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일본 미디어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유튜브 조회 수 조작을 했다거나 일본 CF춤을 표절했다고 일방적 비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강남스타일’이 일본에서 히트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진 못한다. 정치적으로 아무리 한·일관계가 경색됐다 해도, 일반 일본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 여행을 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다. 일본인은 좋아하면 일부에서 뭐라 하건 상관없다. 좋은 건 그냥 좋은 것이니까.

다시 말해서 일본인들이 ‘강남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질투심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음악 성향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또한 연예인으로서 싸이의 외모가 일본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결단코 아니다. 실제로 한류스타 중에 싸이 같은 외모를 한 연예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바로 이 같은 갭이 ‘강남스타일’이 일본에서 히트곡이 되지 못한 정확한 이유다.

‘강남스타일’은 대단히 리드미컬하다. 에로틱하기도 하고, 율동적이다. 그런가 하면 중얼중얼 랩을 하다가, 몇 번이고 옵옵을 반복하며 껑충껑충 뛴다. 한마디로 동(動)적이면서 다이내믹한 노래다.

일본 노래 중에는 이처럼 뛰고 흔들며 외치는 노래가 별로 없다. 대부분 감성적으로 부르는 정(靜)적인 노래가 많다. 게다가 일본인의 성향이 고함치듯 내지르는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감정을 응축시켜 머리로 노래를 부른다. 반면 한국인은 감정을 발산시켜 내지르는 노래를 부른다. 일본 노래의 선이 가늘고 길다면, 우리나라 노래는 선이 굵으면서 그 폭이 넓다. 그래서 일본 노래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하고, 한국 노래는 배에서 나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때문에 ‘강남스타일’은 일본인의 음악 성향에 맞지 않아서 인기가 없는 것이지,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듯이 일부러 외면해서 히트하지 못한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기성세대들이 더욱 그렇다. 더구나 ‘강남스타일’은 혼자 부르는 것보다 여럿이 흥겹게 불러야 제맛이 나는 노래다. 그런데 이 스타일 역시 일본인에게는 맞지 않는다. 가라오케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데 익숙한 일본인으로서는 집단으로 부르는 이 노래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일본 10대들 관심 갖기 시작

그렇다고 히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배타적이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문물’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1위가 되고, 싸이가 그야말로 명실공히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 대스타가 된다면, 일본도 그 추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싸이’를 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세로부터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은 일본인도 못 견뎌하니까.

여기에다 일본 10대들이 ‘강남스타일’의 춤을 재미있어 한다는 점도 히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강남스타일’의 일본 유튜브 조회 수는 100만 정도. 1억2500만 인구 중에 100만회는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10대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강남스타일’은 현재 세계적 대세다. 이제 일본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일본인의 성향에 맞지 않아 엉거주춤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일본 젊은이들이 하나둘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 조만간 일본열도에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질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다. 지난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천황에 대한 사과 요구 발언으로,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한국에 대해 적대감을 노출해왔다. 일본 내에서도 공공연하게 한국 노래나 드라마를 자제해야 한다고 정치인이 나서서 혐한(嫌韓)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각 공중파 방송사에는 한국 드라마를 자제하라는 비공개 권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방송사들은 한국 드라마의 일본 내 방영권 계약을 자제하기로 하고 자숙 모드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대세는 대세다. 이미 아사히신문은 ‘통통한 만 35세 한류가수 싸이, 세계에서 빅히트’라는 타이틀로 특집을 게재했고, 산케이신문은 서울발(發)로, ‘한국어로 된 싸이의 노래가 미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고 발신하는 등 메이저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TV 또한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는지, 세계적으로 부는 ‘강남스타일’ 열풍을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제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시간이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한류스타들에 비해 못생기고 뚱뚱하고 귀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이웃집 오빠 혹은 아저씨 같은 정감 있는 ‘강남스타일’로, 재미있게 일본인들을 웃길 수 있는 그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비록 느리고 더디게 그 열풍이 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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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JP뉴스·KR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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