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만홍레이(바샤닷컴). 저우청젠(메이터스방웨이). 린야오청(더우딩)
(왼쪽부터)만홍레이(바샤닷컴). 저우청젠(메이터스방웨이). 린야오청(더우딩)

“지금 이륙하는데 내일 다시 통화하시죠?”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12월 24일 오후 ‘셀프 선물책’ 사이트 바샤(芭莎)닷컴을 설립한 만홍레이(曼紅蕾·33) CEO가 기자와 연락이 닿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연결된 이 여성 CEO는 “고객사와 만나기 위해 지금 상하이로 이동한다”며 “중추절(仲秋節)만큼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맞아 회사로 주문이 밀려들어 정신이 없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려 하자 다급한 목소리로 “크리스마스 오전에 잠깐 시간이 날 것 같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만홍레이는 기업의 고민거리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셀프 선물책’ 아이디어로 중국 기업의 접대 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사업가다. 그는 2001년부터 외국계 유통체인인 카르푸와 월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유통회사를 운영하다, 큰 이윤이 남는 유통사업을 접고 2005년 본격적인 사이버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설립한 바샤닷컴은 매년 30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오전 10시쯤 다시 연결된 그는 바샤닷컴의 주력 상품인 ‘셀프 선물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선물하고자 하는 사람이 100위안(약 17만원)부터 5000위안(약 86만원)까지 분류된 ‘셀프 선물책’을 구매하고 상대방에게 건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해당 금액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상대방의 몫이죠. 예를 들어 3000위안짜리 선물책 안에는 명품 화장품, 이탈리아산 포도주, 에스테틱 자유이용권 등 16가지 선물 목록이 사진과 함께 정리돼 있어요. 선물을 받은 사람이 이 중 하나를 선택해 바샤닷컴에 주문을 넣으면 물건이 집으로 배달됩니다.”

서로 취향이 다른 개인에게 선물할 일이 잦은 기업들이 만씨의 아이디어를 높이 샀다고 한다. 중국 현지의 개인 기업, 국유 기업, 외국계 기업 할 것 없이 주문이 밀려들었다. 바샤닷컴은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 캐논, 레노버 등 대기업 1000여곳과 계약을 맺었다. 2009년엔 판매액 3000만위안(약 52억원)을 돌파, 창업 당시 10여명에 불과했던 직원 숫자가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매년 중추절, 춘절(春節) 등 명절이 오면 기업 한 곳에서 많게는 수만 권 ‘셀프 선물책’ 주문이 들어온다.

내수에서 세계로

19살 나이에 사업에 뛰어든 만은 현재 사업을 키워나가며 미뤘던 학업의 꿈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11년 9월 장강상학원(長江商學院) EMBA(Executive MBA) 과정에 입학했다. 장강상학원은 내로라하는 중국 재계 CEO들이 다니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영대학원이다. 경영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리더들과의 만남은 그에게 또 다른 ‘관시(關係)’를 쌓아줬다. 만은 “중국의 산업지도는 서구에 비해 아직 미성숙 단계”라면서 “바꿔 말하면 아이디어와 패기만 있다면 창업에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것이어서 지금이 더없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말 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세계경제대전망’의 2013년판에서 올 한 해 중국의 산업지도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측했다. 30여년 동안 쉴 새 없이 성장해 온 중국의 내수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세계 소비자들에게 중국 브랜드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데 노력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수년간 지구촌 경제를 이끄는 고도성장을 해온 중국에서는 바깥 세계에서는 잘 모르는 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덩치의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커온 이들 기업은 외부 세계에는 아직 브랜드와 회사명이 생소하지만 이미 소비자 파워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달린다. 특히 중국의 IT기업들은 중국시장에서 다져진 실력을 바탕으로 이제 세계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구촌의 중화권 소비자들만 대상으로 삼아도 중국의 IT기업들은 세계 산업계의 지도를 바꿀 파워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와 e커머스 체인점 티몰(Tmall)을 운영하는 알리바바그룹은 2012년 매출 1조위안(약 172조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와 아마존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알리바바는 이들 사이트 거래에 알리페이(Alipay)라는 결제 서비스를 독자적으로 운영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이 서비스 가입자만 7억명에 이른다.

2011년 중국 캐주얼 의류 브랜드 메이터스방웨이(Meters bonwe·美特斯 邦威)는 영화 ‘트랜스포머3’의 주인공 샤이아 러버프에게 자사 티셔츠를 입혔다.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할리우드산 영화의 의류 협찬을 통해 중국 토종 의류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알리는 신호탄을 보낸 셈이다. 이미 중국 전역에 4500여곳의 매장을 갖고 있는 메이터스방웨이의 연매출은 100억위안(1조7000억원)에 달한다. 1993년 창업주 저우청젠(周成建)이 방웨이라는 상표를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 등록하면서 탄생한 메이터스방웨이는 2011년 상하이시 세금 납부 2위 업체에 올랐고, 같은 해 기업가치가 14억4600만달러로 평가돼 세계 의류브랜드 10위 안에 중국 기업 최초로 진입하기도 했다.

중국판 유튜브인 여우쿠(優酷·youku) 역시 이미 이 분야의 세계 최대 기업이다. 2012년 3월 경쟁사인 투더우(土豆)를 인수하는 데 성공, 중국의 업계 1위와 2위가 만나 몸집을 불리면서 세계 최대 UCC 그룹으로 거듭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이제 동남아와 일본 시장을 넘보고 있다.

현재 중국에선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이들 대기업의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되는 야심 찬 젊은 기업들도 많다. 가업을 물려받은 ‘푸얼다이(富二代·재벌2세)’나 ‘소황제(小皇帝)’가 아니라 일찌감치 창업시장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젊은 기업가들이 이끈다는 점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부가 대물림되는 세태에 염증을 느낀 중국인이 늘면서 젊고 능력 있는 기업가들의 선전(善戰)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젊은 기업가들이 주목받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왼쪽부터)구융창(여우쿠). 류창둥(360buy). 왕웨이(투더우). 천톈싱즈(펀골프).
(왼쪽부터)구융창(여우쿠). 류창둥(360buy). 왕웨이(투더우). 천톈싱즈(펀골프).

공부는 외국에서 사업은 고국에서

현재 중국 재계에서 부상하는 젊은 CEO들은 어려서부터 서구 문화를 경험했고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패기와 아이디어가 넘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국 경험을 바탕으로 고국에 돌아와 30~40대에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2월 27일 기자와 연락이 닿은 또 한 명의 CEO 린야오청(林耀成·35) 역시 통화를 시도할 때마다 비행기 안에 있었다. 거주지인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 홍콩, 미국을 오간다고 했다. “새해 이후에나 시간이 될 것 같다”던 그는 결국 기자가 보낸 이메일에 일주일이 다 돼서야 답장을 보내왔다. “곧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아이폰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미국 LA에서 태어난 린야오청은 2005년 하버드대 MBA를 졸업하자마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앞서 코넬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나 실리콘밸리에 안착하는 대신 아버지의 나라를 선택했다. 의사인 아버지는 아들도 자신처럼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당초 의대에 들어갔던 린은 그러나 결국 자신의 꿈을 좇아 진로를 바꿨다. 대학 때부터 줄곧 중국에 건너가 배운 것을 응용해보고 싶어했고, 머릿속은 온통 ‘창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2007년 그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문서교류 사이트 더우딩(豆丁·www.DocIn.com)닷컴을 창업했다.

더우딩닷컴은 사이트에 가입한 이용자가 자신이 쓴 소설, 리포트, 전문 서적 등 각종 문서를 올리면 또 다른 이용자가 이를 검색해 다운로드하는 방식(C2C·소비자 간 인터넷 비즈니스)이다. 더우딩 문서의 절반가량은 유료다. 문서를 올리는 사람이 스스로 받고 싶은 금액을 직접 매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공급자 스스로 저작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스마트폰과 애플의 아이패드 등 태블릿PC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더우딩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사이트 문을 연 지 5년 만에 보유 문서 1억8000건을 돌파, 세계에서 가장 큰 문서 교류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린과 같은 젊은 기업가들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IT 분야를 놓고 볼 때 중국에서의 창업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저들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인지도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부터가 문제다. 신생 기업은 당신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데 급급할 것이고, 큰 기업들은 영향력을 누르려고 애쓴다. 그 접점을 넘어야 세계에서 가장 많은 네티즌 수를 가진 중국 사이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회장직도 내려놓고 다시 시작

이용자들이 동영상을 직접 제작·편집해 올리는 UCC 사이트 여우쿠의 구융창(古永锵·46) 창업자 겸 CEO도 해외파다. 구는 토목엔지니어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14살 때 호주로 건너가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대에서 경제학을 배웠고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거쳤다. 현지에서 15년 동안 여러 투자 회사, 네트워크 회사를 경험한 뒤 중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5년 동안 중국 포털사이트 소후닷컴의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현지 감각을 익혔다. 구의 여우쿠는 2009년엔 매출액 1억위안(약 172억원)을 돌파했고, 2010년 12월 중국 동종 업계 최초로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해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무려 161%로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9년엔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아이리서치(iResearch)로부터 ‘가장 경쟁력 있는 인터넷 TV 사이트’ 1위에 꼽혔다. 현재 총 회원 수는 2억6684만명에 달한다.

기자에서 사업가로 과감한 변신

단번에 창업에 성공한 젊은 유학파 출신과 대비되는 토종 사업가들도 있다. 여러 차례의 실패를 딛고 자수성가한 사업가들로, 전자상거래 사이트 360buy닷컴 류창둥(劉强東·38) CEO가 대표적이다. 류는 2012년 미 포춘지 중문판이 뽑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hot)한 기업인 25명’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 명문대인 인민(人民)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류는 대학 때 첫 창업의 쓴맛을 봤다. 대학 3학년 때 아버지에게 “식당을 차려보겠다”며 20만위안(약 3400만원)을 빌린 게 시작이었다. 경험이 전무한 류의 식당은 불과 몇 달 만에 문을 닫았다. 밀린 월급과 임대료 등을 떠안고 류는 금세 빚더미에 앉았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조직생활을 통해 그는 체계적이지 못했던 지난날의 경영 방식을 반성했다. 2년 뒤 빚을 청산한 류는 첫 창업자금의 16분의 1인 1만2000위안(약 200만원)을 들고 다시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춘(中關村)에 전자기기 상점을 냈다. 하지만 당시 중국 전역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퍼졌고, 류의 매장엔 파리만 날렸다.

‘어차피 망할 거라면….’ 류는 매장에 있는 제품을 인터넷에 올려 판매해보기로 했다. 2005년 360buy닷컴을 열고 매장가보다 20% 저렴하게 전자기기를 팔기 시작했다. 고객이 오전 11시 이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중국 주요 지역에선 당일 오후 6시 전에 물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밤 사이 들어온 주문은 이튿날 오전 9시까지 배달을 원칙으로 했다. 중국 특유의 ‘만만디(慢慢的)’ 습관을 거꾸로 한 류의 경영방식으로 360buy닷컴은 2011년 거래액 309억6000만위안(약 5조3200억원)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선전하는 류의 야심과 업적을 빗대 ‘중국 정보기술(IT) 업계의 마오쩌둥’이라 부른다.

너무 이른 성공 가정사에 발목 잡히기도

‘제2의 류창둥’을 꿈꾸며 태동하는 중국 사이버시장의 열기는 젊은 CEO들의 행보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1년 7월 베이징에서 제1회 중국 인터넷상거래 리더십 회의가 열렸다. 중국의 유명 인터넷 포럼 사이트 톄셰왕(铁血网)의 장레이(蔣磊), 하오러마이(好樂買)의 리수빈(李樹斌) 등 중국 인기 커뮤니티와 전자상거래 사이트 CEO들이 모여 중국 사이버시장의 미래를 논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리더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단순히 인터넷 커뮤니티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을 분석해 상거래와 접목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이트 간 협력체제를 구축해 힘을 실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패기와 혁신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국의 젊은 창업가들을 우뚝 서게 했지만 ‘지나친’ 열정으로 벌써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젊은 창업가들도 있다. UCC 업체인 투더우의 창업자이자 유학파 출신인 왕웨이(王微·39)는 평소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중국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렸다. 폐공장을 개조해 사무실로 활용했고, ‘노 타이’ 근무를 지향했으며, 사무실 벽엔 그라피티(graffiti)를 그려넣는 등 업무에 활력을 강조했다. 창업 이듬해엔 상하이TV 유명 아나운서였던 양레이(楊蕾)와 결혼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투더우는 그러나 창업주인 왕웨이의 결혼생활이 1년도 되지 않아 파국을 맞으면서 빙하기에 접어든다.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투더우는 2010년 11월 양레이가 투더우의 지분 38%를 요구하면서 긴 법정 분쟁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결국 2011년 3월 여우쿠에 인수합병됐다. 투더우 창업주의 ‘가정사’는 중국의 많은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남게 됐다.

중국의 ‘젊은 혁신 기업’들을 민첩한 남성 CEO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면 여성 CEO들의 선전은 고급 스포츠 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취미로만 끝날 수도 있었던 레저산업에 사교(社交)의 기능을 더해 ‘대박’을 낸 여성 CEO 천톈싱즈(陳天星子) 창업주가 그 예다.

‘빠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로 펀(泛·Fun)골프 사이트를 창업한 천은 중국 골프계에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업계 ‘최연소 미녀 CEO’로 꼽힌다. “중국의 기업 소유주들이 천톈싱즈와 라운딩 한 번 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라고 업계 관계자들이 말할 정도다.

1999년 아나운서와 언론인 양성 대학인 중국전매(傳媒)대 방송학과에 입학한 그는 타고난 미모와 감각으로 졸업 후 곧바로 중국 국영 CCTV 사회부 기자로 입사했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3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버지니아대 다든(Darden)스쿨 MBA 과정에 입학했다. 미 현지에서 AP통신의 중화권 프로그램 기자로 경력을 쌓은 그는 졸업 후 귀국, 방송으로 복귀할 것이란 주변의 예상을 깨고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중국에 불어닥친 ‘럭셔리 바람’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골프였다. 천톈싱즈가 창업할 때만 해도 중국에서 골프는 1차 레저에 불과했다. 천은 골프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고민했다. 매일 아침마다 베이징에 있는 골프장으로 출근했고, 골프 애호가들과 함께 라운딩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는 곧 겨울에 골프장은 폐장하지만, 인터넷 골프 사이트는 폐장이라는 게 없다는 점에 착안, 골프에 대한 모든 것을 상시 제공할 수 있는 ‘펀골프’ 사이트를 열었다.

2008년엔 중국 명문대학 EMBA 7곳을 섭외해 1년에 두 번 골프대회를 주최하는 사업권을 따냈다.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장강상학원 등 중국 내 유명 EMBA에 재학 중인 현직 기업인들이 팀을 짜 경기에 출전했다. 기업인들이 출전하자 명품 브랜드, VIP클럽, 부동산 개발상들이 앞다투어 “대회를 스폰서하겠다”고 나섰다. 홈페이지에 실리는 광고, 골프잡지 발행, 티칭프로 소개, 골프투어, 사교모임, 골프용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다각화했고, 골프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사교문화가 수익으로 이어졌다.

매년 봄·가을 두 번 열리는 이 대회는 올해로 12회째를 맞았다. 현재 천은 펀골프를 중국의 400개 골프 관련 홈페이지 중 가장 많은 접속자 수, 가장 영향력 있는 골프 사이트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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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디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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