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일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가칭·이하 국민석유준비위)가 한 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1인1주 갖기 인터넷 약정운동’을 시작한 지 6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6시30분경 목표액 1000억원을 돌파했음을 알리는 보도자료였다.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1인1주 갖기 인터넷 약정운동을 시작한 지 6개월여인 12월 29일 저녁 6시30분경 목표액 1000만주, 1000억원을 돌파했다”며 “그동안 ‘불가능할 것이다’는 일부 언론의 왜곡이나 보도 봉쇄에도 불구하고 2012년을 넘기지 않고 목표액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석유회사는 시중 가격보다 20%나 싼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만들겠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일종의 시민운동이다. 국민석유준비위는 회사 설립을 위한 일종의 사전정지작업 단계로 지난해 6월 21일 출범했다. 회사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이태복(63) 전 보건복지부 장관. 그는 기름값, 통신비 등 가정경제에 부담을 주는 5개 품목의 가격을 낮추자며 2007년부터 ‘5대 거품 빼기’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이 중에 기름값이 서민경제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20% 싼 값에 기름을 공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해왔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국민으로부터 돈을 모금해 제5의 정유회사를 만들겠다는 방안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 1월 8일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정유사들은 매년 조 단위 흑자를 내면서, 정부 정책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면서 “국민석유회사를 통해 중진국 수준인 우리나라 형편에 맞게 기름값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제5 정유회사가 원유 공급 루트를 다양화하고, 최신 정제기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기름값을 낮추면 다른 정유회사들이 출고하는 기름값도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1600만명의 차량 소유자들이 1인1주 갖기 운동을 통해 초기 설립자금 1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그리고 지난해 6월 21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1차 목표는 지난해 말까지 1000억원 약정을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내놨을 때 주변에선 비관적 전망을 많이 내놨지만, 결국 금액 약정에 성공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출범까지 수조원 필요

사실 국민석유준비위 측의 방안은 초기 단계부터 많은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먼저 장치산업인 정유산업을 거대 자본이 아닌 국민 모금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됐다. 1000억원 약정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설사 1000억원이란 돈이 마련된다 해도 이는 초기자금일 뿐 실제로 회사가 출범하기 위해 필요한 수조원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정유업계 측의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았다. 국민석유준비위 출범을 알리는 당시 언론 보도에 달린 댓글을 봐도 비관적인 것들이 많았다. 다음은 지난해 7월 13일 머니투데이 ‘국민석유회사, 기름값 20% 내릴까’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이건 그냥 국민의 정유업계에 대한 반감을 역이용한 사기극 같군. 고도화 설비 하나를 증설하는 데만 수조원의 투자금이 필요한데, 그깟 1000억 정도의 자금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정유회사나 조선사, 반도체 회사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지. 즉 적어도 수조원의 투자금이 없으면 아예 꿈도 못 꾸는 사업이란 말이다. 물론 국내 기름값이 비싸서 악에 받쳐 있다는 건 알지만… 뭔가를 추진하려면 좀 현실성 있는 걸 추진해야 하지 않냐? 석유회사 차리는 데 기껏 300억? 1000억?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비전문가인 나도 사기인 걸 알겠다.”

 ⓒ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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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이 멀다

1차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비난 여론이 여전하다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유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업계 측에서는 “휘발유 가격의 절반인 1000원 정도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건드리지 않고 기름값을 현재보다 20% 정도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나 고유가로 인한 여론 악화 등에 편승해 내놓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현재 정유사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과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20% 싼 기름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가 ‘20% 싼 기름’에 대해 부정적인 예상을 하는 근거와 이에 대한 국민석유준비위 측의 반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정유업계 측은 원유 조달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원유는 90%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생산되는 중동산 중질유이지만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원유 가격이나 물류비가 비싼 중동산 중질유 대신 캐나다나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저유황원유를 들여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캐나다산 저유황원유의 대부분은 오일샌드(원유를 포함한 모래)에서 뽑아낸다. 문제는 내륙에 위치한 오일샌드 지역에서 추출한 원유를 서부 해안가로 실어 나를 수송관이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송관 건설 역시 현지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쉽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시베리아산 원유는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지속적인 원유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몰라서 저유황원유를 수입 안 하는 게 아니라 생산량도 적고 국제시장에 따라 수급이 원활치 않다 보니 정유사들이 고도화 설비를 지어 벙커C유에서 휘발유와 나프타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캐나다산 저유황원유의 경우 아직 생산되지 않고 있지만 내후년에는 가능할 전망이고, 시베리아 쪽은 이미 가능한 상황”이라며 “원유 운반 기간 역시 사흘이면 충분해 열흘 넘게 걸리는 중동산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민석유준비위는 정유업계 측이 저유황원유 공급이 일정치 않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4대 대형 정유사들의 대주주가 대부분 세계적 메이저 정유업체들이고, 이들이 주로 중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둘째로 정유회사 설립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정제시설을 짓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정유공장은 그 특성상 유조선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와 석유제품의 저장탱크, 정제 및 탈황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한다. 땅값만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유업계의 예상이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B정유업체 관계자는 “장치산업인 만큼 규모의 경제에 걸맞은 공장 규모도 필요하다”며 “또한 비용도 비용이지만 강화된 환경규제도 넘어야 할 산”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지원·국민연금 투자 추진”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현재 대형 정유사의 공장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고 생산방식도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며 “저유황원유는 촉매제를 사용하면 정제가 간단하기 때문에 대형 공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준비위 측은 또한 “우리는 본사 자체가 공장이 있는 곳에 들어서기 때문에 공장을 유치하는 곳에 막대한 고용효과가 창출된다”며 “이미 파격적인 조건으로 공장 유치를 제안한 지자체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비용 조달 문제다. 업계에서는 정유공장을 지으려면 2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민석유준비위가 모은 1000억원은 정유공장을 짓기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환경영향평가에 최소 1~2년, 공장 건설에 최소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공장 건설뿐만 아니라 회사를 운영할 자금도 빡빡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기존 정유공장 같은 대형 공장을 짓지 않기 때문에 정유업계에서 예상하는 금액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며 “일단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나머지 투자비용은 정부에 정책자금을 요청해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투자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국내 정유 4사가 하루에 정제하는 294만배럴의 3.4% 수준인 하루 10만배럴짜리 정유공장을 지을 계획”이라며 “20% 싼 기름을 내놓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실제 우리 공장이 가동되면 다른 정유회사들로서는 가격 인하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석유야말로 경제민주화 핵심”

국민석유준비위 측은 이러한 여러 가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세운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향후 사회 각계 인사들을 운동에 참여시켜 신뢰도와 대중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민석유준비위 측에 따르면, 김재실 전 산은캐피탈 회장과 윤종웅 전 하이트맥주 최고경영자,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약정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많은 지역 100개를 선정해 주유소 설립도 준비할 예정이다.

이태복 전 장관은 “향후 정부 고위층과 면담에서 정부가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히면, 바로 회사 설립을 위한 주식공모에 들어가 회사 설립을 마치고, 지경부에 설립신고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만이 민생을 살리는 길이므로, 독점 정유 4사의 횡포에 대항할 국민석유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을 보면 정유업계 측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풍기는 반면, 국민석유 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석유회사가 추진하는 20% 싼 기름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수 있을지는 수년이 지나봐야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왜 이런 시도가 생겨났고, 여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응을 하고 있는지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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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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